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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반수노조 동의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더라도 개별 노동자 동의가 없다면 적용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집단 동의를 받아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취업규칙이 변경된 경우에도 근로기준법이 규정한 '근로조건 자유결정의 원칙'은 지켜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다.

5일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에 따르면 대법원(주심 안철상 대법관)은 지난달 14일 지방공기업 ㈜문경레저타운 1급 직원 김아무개씨가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및 퇴직금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 2003년 연봉계약을 체결하고 입사한 김씨는 2014년 5월 면직됐다가 같은해 8월 복직했다. 그사이 회사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기 위해 과반수노조의 동의를 얻어 취업규칙을 변경했다. 정년이 2년 미만 남은 노동자에게는 기준연봉의 60%, 1년 미만 남은 근로자에게는 40%를 지급하는 내용이다. 김씨는 임금피크제에 동의할 수 없다며 덜 받은 임금과 퇴직금 1억1천400만원을 달라며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대법원은 근로조건 자유결정의 원칙을 강조했다. 근기법 4조(근로조건의 결정)는 "근로조건은 근로자와 사용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개별 노사합의 형식을 빌려 종속적 위치에 있는 노동자에게 최소기준에 미달하는 열악한 노동환경을 강요하는 것을 막기 위해 여러 장치를 두고 있다. 취업규칙에 미달하는 근로계약은 무효로 한다는 조항(97조)이 그렇다. 대법원은 "97조를 거꾸로 해석하면 취업규칙보다 유리한 근로계약은 유효하고 취업규칙에 우선 적용한다는 것"이라며 "취업규칙이 집단동의를 받아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변경된 경우에도 그보다 유리한 근로조건을 정한 기존 근로계약은 유효하고 노동자의 개별동의가 없는 한 취업규칙보다 유리한 근로계약 내용이 우선 적용된다"고 판시했다. 취업규칙(불이익변경)과 유리한 근로계약 사이의 관계를 밝힌 첫 판결이다.

김기덕 변호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는 "사용자가 제정·변경 권한을 갖는 취업규칙보다 유리한 근로계약 기준은 변경할 수 없으며 우선 적용된다는 법리를 구체적으로 밝힌 판결"이라며 "취업규칙을 노동조건 기준으로 삼아 온 노동현장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정부와 노동계는 이번 판결이 미치는 파급력에 주목하고 있다. 일반화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는 분위기다. 노동계 관계자는 "이번 사례는 취업규칙과 개별 근로계약이 상이한 사례인데 대부분 사업장은 근로계약 세부내용을 정하지 않고 취업규칙에 위임하는 경우가 많아 판결 영향이 제한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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