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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위하여

기사승인 2019.12.10  08: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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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예규칙’ 취업규칙 넘어서기

   
▲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새삼스런 날이었다. 지난 목요일, 갑자기 묻고 말했다. 지난달 14일에 선고됐으니 20일이 지난 소식이었다. 묵은 소식이 뉴스라니,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임금피크제 도입했어도 근로자에 유리한 기존계약이 우선”(KBS·연합뉴스·MBN), “임금피크제 도입했어도 동의 안 받은 근로자에겐 무효”(SBS·YTN·서울경제), “불리한 임금피크제, 동의 안 하면 무효”(조선일보·뉴시스), “취업규칙 변경 통한 임금피크제 도입 … 노조가 동의해도 근로자가 거부하면 무효”(동아일보), “노조 동의 얻어도 개별 동의 없으면 임금피크제보다 기존 계약이 우선”(경향신문), “집단동의 불리한 취업규칙, 개별동의 없으면 유리한 근로계약 우선 적용”, “과반수노조 동의로 임금피크제 도입해도 개별동의 없으면 적용 안 돼”(매일노동뉴스), “노사합의 했어도 근로자가 거부하면 무효 … 임피 불복 줄소송 예고”(한국경제), “취업규칙 효력 무력화, 임금피크제만 문제 아니다”(한국경제).

사건 당사자인 원고 김○○씨도 이런 관심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소송대리인인 나도 그랬다. 뒤늦은 대법원 판결 소식을 쏟아 내는 언론 보도에 ‘무슨 일인가’ 했다.

2. 이 나라 언론이 뽑아낸 기사 제목을 읽어 보면 관심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어떤 언론사가 대법원 판결 취지를 제대로 파악해서 보도했는지는 제목만으로는 알지 못해도, 적어도 무엇이 엠바고를 걸어 두고 지난 5일에 일제히 뉴스로 쏟아내게 한 것인지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어떤 이해에 관심을 갖고 보도한 것인지도 알 수가 있었다. 노동자를 위한 판결에 노골적으로 사용자 자본의 이해를 드러내며 불편하게 쓴 기사까지, 비록 보도의 결은 달라도 그 관심은 같았다. 노조 동의 받고 도입한 임금피크제가 무력화될 수 있다는 데 있었다. 정년연장에 관한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의 2016년 시행을 앞두고 많은 사업장에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특히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대대적으로 노조와 근로자들을 압박해 그 동의를 받았다. 그랬던 것인데,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처럼 근로자가 이를 거부한다면? 대한민국에서 임금피크제는 거의 대부분 기존 임금이 삭감되는 방식으로 도입됐다. 기존 임금을 유지하는 임금‘피크’도 아니고 임금‘삭감’ 방식을 임금피크제라며 사업장마다 임금 등에 관한 회사 제 규정을 통해 도입한 것이라서, 그것도 거의 대부분 사업장에서는 정년연장을 해 주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법대로 정년을 60세로 하는 것이라서 자신의 임금과 고용에 관한 권리를 아는 노동자라면 자유로운 의사로 개별 동의를 해 줄 까닭이 없다. 사용자가 그 대신에 다른 뭔가를 준다면 몰라도. 그래서 관심인 것이다. 과반수노조 혹은 근로자 과반수 동의로 도입한 임금피크제를 적용하는데 문경레저타운 김○○씨처럼 이 나라 노동자들이 행동한다면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노동자가 권리를 자각하고서 자유롭게 행동하는 일이 문제인 것이다.

3. 판결이 선고되고 나서 사무실에 문의전화가 걸려 왔고 일부는 찾아와 상담을 하기도 했다. 공기업·은행 그리고 대학 등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었는데, 노조나 근로자 과반수가 동의해서 임금피크제·성과연봉제가 도입된 경우였다. 언론은 대부분 임금피크제에 관한 것으로 보도했어도 어떻게 판결문을 입수해서 읽었는지 부산의 모 대학 교수들은 성과연봉제 도입에 관해 사무실에 찾아와 상담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 사건에선 임금피크제 적용이 문제가 됐다. 문경레저타운 임금피크제는 정년을 2년 앞두고 임금을 삭감하는 것이었다. 이에 관한 회사 규정을 마련해 도입했다. 당연히 기존 임금에 관한 회사 규정을 변경하는 것일 테니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임이 분명한데, 조합원이 아닌 자신의 의사는 묻지 않고 과반수노조 동의만으로 한 것이라서 부당하다며 원고 김○○은 나를 찾아왔다. 그는 1급 직원으로서 조합원에서 배제된 자신에 대한 취업규칙 변경절차로서 위법하다고 주장해 줄 것을 요청하며 이에 관한 자료를 준비해 가져왔던 것인데, 그것으로는 법원이 청구를 받아 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나는 개별 동의 없이 근로계약상 임금을 삭감하는 취업규칙을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을 주되게 주장하기로 했다. 수원지법에서 진행한 항소심까지 이런 주장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는 것은 그 판결문을 읽어 보면 알 수 있다. 대법원에 제출할 상고이유서를 작성하면서 그 하급심 판결의 이유가 주장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부당함이라는 것을 토로해야 했다. 만약 하급심에서 그 주장을 꼼꼼히 살펴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는 판결을 했더라면, 아마도 오늘처럼 대법원 판결이 선고돼 보도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오히려 그 판결에 고맙다 해야 하나. 어쨌거나 이렇게 임금피크제가 문제가 된 사건이었는데, 그 법리는 임금피크제에 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성과연봉제 도입에 관해서도 상담하겠다고 찾아왔던 것이다. 신고한 취업규칙을 포함해 사업장 제 규정을 통해 기존 임금 등 근로조건을 불리하게 변경한 경우라면 이번 대법원 판결의 법리가 적용될 수 있다. 그 변경에 과반수노조나 근로자 과반수 동의를 받고서 했더라도 근로계약상 조건에 미달하는 것이라면 개별적으로 근로자가 그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에는 불리하게 변경된 것을 적용할 수 없는 것이라고 이번에 대법원은 판례 법리로 밝혔다. 이는 다들 임금피크제에 관심을 두고 보도했지만, 한국경제 등 일부 언론사는 임금·고용·기타 근로조건 모두에 이번 대법원 판결 법리가 적용될 수가 있는 것이라며 심각하게 기사를 써서 보도했는데 제대로 파악한 것이다. 비록 사용자 자본의 이해에서 작성한 것이지만 사태는 제대로 봤다.

4. 사람은 이 세상에 자유로이 태어났다. 그저 하는 말이 아니다. 인민을 내세워 행세하기 위해 권력자가 하는 말만은 아니다. 이 세상의 법전은 자유의 인간을 전제로 한다. 그 자유는 계약과 법(국가권력)에 의해서만 빼앗을 수 있다. 즉 계약을 대표하는 자신의 자유로운 의사와 법, 즉 국가권력의 강제에 의해서만 제한할 수 있다고 선언하고서 근대 이후 이 세상은 지금까지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러니 아무리 사용자에 복종해서 일해야 하는 노동자라도, 법이 아니라면 그가 사람인 한 자신의 의사에 의해서만 자신이 일할 조건이 정해져야 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이 나라에서 노동자는 근로계약을 체결하고서 근로자가 되기만 하면 그렇지 않았다. 근로계약을 체결하기만 하면 노예가 됐다. 우리 사업장에선 사용자가 정하는 대로 해야 하는, 자유 없이 복종하는 노예로서 살아야 했다. 모든 것은 근로기준법이 그 작성 및 변경 권한을 사용자에게 부여한 취업규칙을 통해서였다. 사용자는 근로계약을 체결하면서 구체적인 내용은 회사 제 규정에 의한다고 써 놓기만 하면 됐다. 이렇게 우리 노동자는 너무 쉽게 노예가 됐다. 취업규칙은 노동자를 노예로 전락시켰다. 그것을 통해 사용자는 사업장에서 왕으로 군림했다. 회사 제 규정, 즉 취업규칙은 사업장의 법으로 군림했다. 내가 노동자들을 상담하면서 안타까웠던 것은 우리 노동자들이 근로계약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에서 근로계약에 명시하도록 한 사항조차도 자신이 직접 서명한 근로계약에 포함하지 않은 채 회사 제 규정에서 정하는 대로 했다. 상담을 하던 나는 그가 주장할 근로계약상 임금 등이 무엇인지부터 찾아 헤매야 했다. 이건 이번 대법원 판결의 법리를 우리 노동자 권리를 위해 얼마나 확장할 수 있는지를 좌우하는 일이기도 하다. 도대체가 자유가 무엇인지조차도 모르는 ‘근로자’로 살아왔으니 권리를 주장하려 해도 자신에게 무슨 권리가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것이다. 자유가 없으면 권리도 없다. 이 세상에 자유만 가지고 태어나서 사람이 근로자로 전락한다는 말은 온전히 진실이 아니다. 빵 때문에 자유를 버리고 근로자가 됐다는 말은 올바르지 않다. 공장·농장 등 사업장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노동자는 사용자가 정해 주는 대로 일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말을 의심해야 한다. 노동자에게 복종은 숙명이란 말로 들어서는 안 된다. 이 나라에서 노동자는 자유가 없어 근로계약 내용인 임금 등 근로조건을 사용자가 정한 대로 따르는 근로자가 돼 있다.

5. 날마다 계약 자유를 통해 확대재생산되는, 이 자유의 세상에서 노동자가 노예, 즉 자유 없는 근로자로 전락했다면, 그건 그 노동자만 탓할 일이 아니다.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에 관해 학설하는 이 나라 노동법학자가 온전히 노동자의 자유를 연구해 밝히지 않아서고, 변호사 등 노동자를 대리하는 자가 법정 등에서 제대로 그 자유를 주장하지 않아서고, 법원이 그 자유를 올바로 판결하지 않아서다. 이번 판결을 두고서 “노사관계 기본원칙”을 훼손한 것인 양, 노동계조차도 환영하지 않는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도 있었다.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있어 과반수노조나 근로자 과반수 동의를 거치도록 한 근로기준법 94조(규칙의 작성, 변경 절차)는 사업장의 법으로 취업규칙에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라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이번 판결은 바로 이러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어야 한다. 그렇기에 나는 대법원 판결문에서 “근로기준법 94조가 정하는 집단적 동의는 취업규칙의 유효한 변경을 위한 요건에 불과하므로, 취업규칙이 집단적 동의를 받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된 경우에도 근로기준법 4조(근로조건의 결정)가 정하는 근로조건 자유결정의 원칙은 여전히 지켜져야 한다”고 판시한 부분을 중시해서 읽는다. 노동운동은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위한 노동자 자신의 운동이다.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빼앗는 취업규칙을, 그 변경에 동의했다고 해서 사업장의 법으로 용인해서는 안 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김기덕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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