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영신 변호사(원곡 법률사무소)

경기도 여주시 외곽에 있는 한 농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임금체불 사건을 대리하게 됐다. 진정인 조사에 참여했는데, 담당 근로감독관 입에서 예상치 못했던 생경한 질문이 나왔다.

“원래 농촌에서는 새참을 먹잖아요. 사장님이 새참은 안 줬어요? 원래 다 모여서 새참 같이 먹으면서 일하잖아.” 식대 공제와 관련한 사항을 확인하기 위한 질문이었지만, 어제 전원일기라도 보고 오셨나, 농촌 이주노동자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질문에 말문이 막혀 버렸다.

필자가 대리한 이주노동자는 깻잎·상추 등의 채소를 재배하는 농장에서 일했다. 농장주는 깻잎 20장이 들어가는 봉지를 50개 넣은 1박스를 하루에 17개씩 채우라고 지시했다. 못 채우면 박스당 4천원의 임금을 까겠다고 엄포했다. 이주노동자는 그렇게 하루에 1만7천장의 깻잎을 땄다. 필자는 아직도 ‘1만7천’이라는 숫자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점심과 저녁 시간은 각 30분씩. 논밭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 있는 비닐하우스까지 걸어가 직접 밥을 해 먹어야 했다. 식사 시간은 너무 짧고, 변변한 조리도구도 없고. 대충 먹기 일쑤였다. 영양 상태가 좋을 리 없다. 뭐라도 제대로 먹으려면 번화가까지 나가야 하는데, 누군가 데려다주지 않는다면 나갈 길이 막막했다.

농업은 근로시간 특례규정에 따라 거의 무제한 근로가 가능한 업종이다. 하루에 10시간씩, 한 달에 딱 두 번 쉬고 일했다. 여름에는 너무 더워 비닐하우스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들었지만, 하우스 바깥으로 숨을 내뱉어 가며 일했다. 농약을 치는 날에는 농약이 바람에 날아가 버린다며, 하우스 비닐을 걷어 내지 않은 채 일하게 했다. 그런 날은 머리가 너무 아팠다고 한다.

그런데 하루 10시간 근로시간 중 8시간만큼 임금만 줬다. 농장주는 “여기 농장들 다 그래! 원래 그래!”라고 했다. 10시간 일했으니 10시간 임금 달라고 했더니 당장 나가란다. 밤중에 여기서 나가면 잘 데가 없다고 하니, 찜질방이든 호텔이든 어디든 가서 자라고, 당장 기숙사(비닐하우스)에서 나가란다. 논밭 한가운데서, 가로등마저 띄엄띄엄 있는 그 어두운 농촌에서. 한 시간에 한 대 지나가는 버스도 끊긴 한밤중에. 한국말도 제대로 못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그래서 임금체불 등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농장주를 고소했고, 힘든 과정을 거쳐 송치의견으로 기소됐다. 검찰이 약식기소했다. 농장주는 바로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우리는 체불임금에 대해 민사소송도 제기했다. 농장주는 변호사를 선임해 형사사건과 민사사건을 대리하게 했다.

그런데 또 고민이 생겼다. 민사소송에서 이긴다 한들, 농장주가 체불임금을 줄까. 강제집행이 가능할까. 분명 “돈 없다”고 “배 째라”고 할 텐데. 소액체당금이라도 받을 수 있을지 찾아보니 임금채권보장법에서는 농업이면서 법인이 아니고, 상시 근로자가 5명 미만인 경우에는 체당금 지급 사업장에서 제외된다고 한다. 딱 그 경우에 해당하는데, 혹시나 해서 이주노동자 고용주가 가입해야 하는 체불임금 보증보험을 알아봤다. 받을 수 있는 금액 상한선이 200만원이라고 한다. 체불임금이 1천700만원인데!

지난해 이주노동자 임금체불액이 972억원이라고 한다.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전체 사업장에서 연간 6천여건의 불법이 적발됐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이상하다. 고용허가제는 대한민국 정부가 인력을 구하지 못한 국내 사업장에 외국인을 합법적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허가해 주는 제도다. 사용자가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허가해 주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가 고용알선을 넘어서 실질적으로 고용주가 된 것이나 다름없다. 즉 국가가 이주노동자를 고용한 것이다. 현재 추세가 이어진다면 2027년에는 이주노동자가 국내 인구의 10%인 500만명을 넘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봤다. 미등록 이주노동자까지 합하면 더 많을 것이다.

국가는 그 많은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해 놓고 972억원에 달하는 임금을 체불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2년간 고용허가가 취소된 사업장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국가가 고용했다면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 불법을 묵인하고 솜방망이 처벌만 일삼는 국가가 악덕사업주와 뭐가 다르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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