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쿠팡지부

“무더운 여름 초콜릿 드시고 행복하게 보내세요.”

물건을 택배로 주문했는데 이런 손 편지와 함께 초콜릿이 딸려 왔다. 전자상거래기업 쿠팡이 2014년부터 했던 ‘감성배송’의 한 사례다. 쿠팡은 쿠팡맨이 손수 작성하고 그린 글과 그림을 담아 배송했고 고객의 마음을 흔들었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빠르게 퍼져 나간 감성배송 인증샷은 쿠팡은 물론 쿠팡맨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갖게 했다. 브랜드 이미지는 여전히 좋다. 최근 한국소비자원이 상위 6개 오픈마켓(온라인장터) 사업자 서비스 이용경험자 1천200명을 조사한 결과 쿠팡은 종합만족도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쿠팡은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으면 채용 2년 뒤에는 정규직으로 전환해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쿠팡맨은 특수고용직인 CJ대한통운·로젠택배 노동자와 달리 근로기준법 울타리 안에서 보호를 받는다. 이런 호평을 기반으로 쿠팡은 급성장 중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쿠팡맨 상황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지난 4년 동안 임금은 동결됐고 1인당 처리해야 하는 물량은 배로 늘었다. <매일노동뉴스>가 최근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쿠팡지부 도움을 받아 쿠팡맨 7명을 만났다. 지부 조합원은 2명이었다.

2016년 대비 두 배로 증가한 물량

쿠팡맨들은 “근로계약서에 보장된 휴게시간을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물량이 많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업무강도는 분명히 높아지고 있는 듯하다. 택배산업 변화 양상과 택배기사들의 노동조건을 분석하는 연구를 수행 중인 박종식 창원대 사회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 진단도 다르지 않다. 박종식 전임연구원은 “한 지역의 쿠팡맨은 2016년 하루 평균 70가구를 할당받아서 배송을 했는데, 2019년에는 하루 평균 130가구 정도로 배송물량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며 “지난 3년 동안 하루에 방문해야만 하는 가구수가 거의 2배에 육박할 정도로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배송물량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수도권을 보면 쿠팡맨들에게는 하루 평균 150가구가량이 할당된다. 많게는 180가구에 물품을 배송한다는 증언도 있다. 가구당 주문 물품이 10개여도 1가구로 계산된다. 노동자들은 150가구를 주문 물량으로 환원하면 250건 정도라고 했다. 택배업계 1위 회사인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의 하루 처리물량이 235개로 알려진 것을 고려하면 결코 노동강도가 낮지 않다.

더군다나 쿠팡맨 배송권역은 다른 택배회사 택배노동자 1인이 처리하는 배송권역보다 넓다. 주문자가 분산돼 있다는 뜻인데 그만큼 배송 시간이 많이 걸린다. 택배업계 관계자는 “쿠팡맨 노동강도가 결코 낮다고 보기 어렵다”며 “인프라가 잘 구축된 CJ대한통운 같은 택배사보다 캠프가 배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쿠팡은 물류 거점지역에 50여개 캠프를 운영하고 있다. 물류창고에서 고객이 주문한 상품을 실은 간선차가 캠프에 도착하면 헬퍼(helper)가 분류작업을 하고 쿠팡맨은 배송 차량에 물건을 직접 싣는다.
 

▲ 밤늦도록 불 켜진 쿠팡인천5캠프의 모습.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쿠팡지부

“점심 챙겨 먹고 일하면 바보 돼요”

쿠팡맨들은 쿠팡 사내 메신저인 ‘팀즈’와 인센티브를 경쟁을 부추기는 시스템으로 지목한다. 캠프를 관리하는 캠프리더(CL)는 30분 혹은 한 시간마다 배송현황을 팀즈에 공유한다. 누가 얼마나 더 배송했고, 덜 배송했는지 공개한다.

“휴식시간 한 시간을 쓰는 순간 이상한 사람이 된다고 해요. 대부분 캠프가 그럴 겁니다. 다른 사람하고 물량이 30~40가구씩 차이가 나면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죠.”

쿠팡인천5캠프를 시작으로 캠프 10곳을 돌며 쿠팡맨 얘기를 듣고 있다는 정진영(27) 지부 조직부장의 설명이다. 지부가 8월14일부터 2주 동안 쿠팡맨 288명(정규직 119명·비정규직 169명)의 휴게시간(점심시간 1시간)을 조사해 보니 “휴게시간을 매일 사용한다”는 쿠팡맨은 35%(101명)에 불과했다.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32%, 91명)거나 “1주일에 한두 번 사용한다”(26%, 77명)는 쿠팡맨이 절반을 넘었다.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일하는 웨이브1(Wave1·야간조)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경기도 한 캠프 야간조로 일하는 문진원(가명)씨는 “일단 물량이 주어지면 당연히 버거워도 다 처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휴게시간도 사용하지 못한 채 일하게 된다”며 “관리자들은 ‘할 수 있다’ ‘다 이만큼은 한다’며 140~150가구씩 밀어붙이는데 이래도 되느냐”고 토로했다. 같은 조사에 따르면 야간조 근무자 100명 중 휴게시간을 매일 사용한다고 답한 이는 25명에 불과했다. 47명은 휴게시간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고, 24명은 한두 번 사용한다고 답했다. 야간조의 휴게시간 미사용자 비중이 훨씬 높은 것이다.

“동료를 돕는다?=동료와 경쟁한다”

쿠팡이 노동강도를 높이는 방법은 교묘하다. 쿠팡맨 지원제도가 대표적이다. 먼저 배송을 완료한 동료가 배송물량이 아직 남아 있는 동료의 물건 배달을 도와주는 제도다. “동료를 도와 퇴근을 돕는다”는 말로 포장한다. 지원하는 쿠팡맨은 건당 700원의 인센티브를 받는다. 그런데 지원받는 쿠팡맨은 걱정이 많다. 월급제라 더 적은 물량을 배달한다고 월급이 줄지는 않지만 낮은 인사고과를 받을까 걱정하고, 비정규직은 정규직 전환이 되지 않을까 봐, 정규직은 레벨업(승급)이 되지 않을까 봐 우려한다. 동료가 곧 경쟁자가 되니 밥도 먹지 않고 물량을 ‘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쿠팡맨은 레벨이 오를수록 급여가 오른다. 레벨은 쿠팡맨(레벨 1~3)·시니어쿠팡맨(레벨 4~6)·프로쿠팡맨(레벨7~8)·마스터(레벨 9)로 나뉜다. 쿠팡맨은 분기마다 생산성·안전·고객경험·조직문화 등의 지표에 따라 ‘잡포인트’로 불리는 점수를 받는다. 잡포인트는 레벨 승급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레벨 3에는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혼재돼 있다.

캠프리더(CL)는 매달 쿠팡맨이 수령해 간 인센티브 금액을 기준으로 순위를 매겨 경쟁을 부추긴다. 결국 도태되지 않으려면 더 열심히 물량을 채워야 한다. 일을 시작한 지 8개월 됐다는 계약직 쿠팡맨 김용식(가명)씨는 “분명 시간을 주고 기다려 주면 할 수 있는데도 아직 업무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의 물량을 빼앗아 가게 해 경쟁을 부추긴다”고 비판했다.

이렇게 시작된 무한경쟁은 조기 출근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웨이브2(Wave2·주간조) 쿠팡맨의 근무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지만 상차작업을 일찍 끝내려 1시간30분 혹은 1시간 일찍 출근한다.

지부는 “CL은 자신이 담당하는 캠프 배송물량이 많을수록 인센티브를 더 받는 구조라 쿠팡맨에게 빠른 출차와 배송 완료를 독려한다”며 “공식 출차시간은 출근 뒤 30분 후인 10시30분인데, 10시 출근해 상차를 30분 만에 끝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새벽배송·개별포장, 새로운 실험에 쿠팡맨 신음

지난해 적자가 1조970억원으로 2017년 6천388억 대비 두 배 이상 늘면서 쿠팡은 물류비를 줄이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싱귤레이션(Singulation)’과 새벽배송의 일종인 ‘트루돈(True Dawn)’이다. 갑자기 바뀐 제도에 노동자들은 우려를 제기한다.

경기도 한 캠프에서 일하는 이남영(가명)씨는 “싱귤레이션 좀 없앴으면 좋겠다”며 “아파트 하나 갈 때마다 (고객의 주문 상품이 담긴) 봉투를 30개씩 들고 올라가니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쿠팡은 직접 매입한 상품을 물류창고에 모아 놓고, 주문이 들어오면 합포장해 배달하는 시스템을 운용해 왔다. 문제는 이 같은 방식이 A고객이 주문한 상품이 ㄱ물류창고와 ㄴ물류창고에 흩어져 있을 때 물류비용을 증대시킨다는 점이다. 쿠팡은 물류비용을 줄이기 위해 합포장 과정을 생략하고 각각의 물류창고에서 바로 물건을 캠프로 이동시키는 방법을 고안했다. 배송절차를 한 차례 단축했지만 쿠팡맨이 할 일은 더 늘어났다. 주문자는 한 명인데, 택배 상자는 곳곳에 흩어져 있는 꼴이기 때문이다. 쿠팡맨은 개별포장된 상품 중 하나라도 누락되지 않게 하나씩 모두 세고 배송하기를 반복한다.

일부 캠프 야간조에서는 최근 트루돈 시스템을 도입했다. 새벽배송의 일종이다. 기존 야간조 쿠팡맨은 오후 10시 출근해 다음날 오전 8시 퇴근했는데 트루돈 시스템이 도입되면 캠프로 출근해 싣고 나온 90~100가구의 물량을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3시30분까지 처리한 뒤, 다시 캠프에 들러 당일 새벽에 배송해야 할 신선상품을 차에 싣고 나온다.

문진원(가명)씨는 “오후 10시까지 캠프로 출근해 물건을 차량에 싣고 출발하면 대개 같은날 10시40분~11시에 배송을 시작한다”며 “쉬지 않고 배달해도 8시간이 필요한데 그사이 한 시간의 이동시간이 들어가면 140가구 물량을 이전처럼 배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 쿠팡지부가 19일 오후 2차 정기회의를 마친 뒤 대전역 인근에 모여 사측에 교섭을 요구하는 모습.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쿠팡지부

목표물량 설정과 인력 보강 시급

지부는 “쿠팡이 휴게시간을 단순히 강제하는 방식을 넘어서 휴게시간을 보장할 수 있는 목표물량을 설정하고 인력을 충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쿠팡맨 근로계약서에는“휴게시간은 식사시간을 포함해 1시간으로 한다”고 규정돼 있다. 웨이브1의 경우 휴게시간은 새벽 2~3시·웨이브2의 경우 정오~오후 1시다. 하지만 “단 간주근로로 회사의 업무사정·직종·업무특성·계절 등에 따라 본인이 휴게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을 붙였다. 지부는 “본인이 휴게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는 표현은 자율성을 가장한 것으로 휴게시간 미사용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시간 내 처리하기 어려운 물량을 주고, 휴게시간을 이용하라는 것을 휴게시간 미사용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라는 의미다. 지부는 지난 4월 쿠팡을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울동부지청에 고발했다. 미사용 휴게시간을 근로시간으로 인정하고 연장·야간근로수당을 지급하라고 했다. 해당 사건은 조사 중이다.

지부는 “쿠팡과 임금·단체협상을 진행 중이지만 쿠팡이 불성실한 태도로 교섭에 임하면서 교섭이 진척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0월 시작된 단체협약·임금교섭은 30차례까지 진행됐지만 노사는 단체협약 한 조항에도 합의하지 못했다. 지부는 “4년간 임금인상이 없는 것은 실질임금 하락"이며 “쿠팡맨 개개인에게 실적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경제성장률·물가인상률 반영 임금 인상 △야간 목표물량 주간 대비 하향 조정 등을 사측에 요구하고 있다. 노조는 고용노동부에 교섭해태 혐의로 사측을 고발했다.

쿠팡 관계자는 “현재 기준 쿠팡맨은 올해 1천명 이상 증가하는 등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며 “특히 잡레벨이라는 객관적인 평가제도를 통해 쿠팡맨 개인적인 성장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택배기사와 달리 100% 직접 고용과 연차, 4대 보험 등을 기본으로 하는 쿠팡맨 제도는 재직 중인 쿠팡맨들의 업무부담을 낮추고 만족도를 높이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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