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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로 본 2019년] 전향적 노동판례에 기업 울고 노동자 웃었다

기사승인 2019.12.30  08: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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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쪽으로 한껏 기울어졌던 법원 판결의 무게 추가 조금씩 수평을 찾아가고 있는 걸까.

올해도 각급 법원에서 다양한 노동판결이 쏟아졌다. 그런데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노조할 권리와 근로자성 인정·불법파견·부당해고·부당노동행위를 다룬 노동사건에서 보수적인 색채가 짙었던 이전과 달리 전향적인 판례가 많았다.

특히 노동권 사각지대에 놓였던 특수고용 노동자들에게 노조를 결성하고 사용자와 교섭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판결이 이어졌다. 원청 사용자성을 폭넓게 인정한 판결도 적지 않았다. 노조파괴 등 부당노동행위를 한 사용자에게 경종을 울린 의미 있는 판결이 여럿 나왔다.

재계는 “기업을 옥죄는 친노동 판결”이라며 불만스런 표정이다. 반면 국민 여론에 역행하는 법원의 숱한 ‘친재벌 판결문’을 받고 가슴을 쳤던 노동계는 숨통이 트인 것 같다는 반응이다.

제조업에서 비제조업으로 넓어진 불법파견 인정범위

재계가 긴장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과거 제조업 직접공정에 한정했던 불법파견 인정범위가 제조업·비제조업 가리지 않고 전 분야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완성차 공장의 경우 컨베이어 시스템 직간접 생산공정 여부를 따지던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법원은 사실상 모든 하청노동자의 업무가 불법파견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8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수출용 차량을 야적장으로 탁송하는 하청업체 노동자를 불법파견으로 인정한 1심 판결이 내려졌다. 법원은 기아자동차 지게차 수리 노동자, 현대차 남양연구소 시험차량 드라이버, 남양연구소 사내하청 팀장급 관리자도 원청이 직접고용해야 하는 불법파견 노동자로 봤다.

현대모비스가 도급을 준 수출포장업체에서 품질검사를 하던 비정규 노동자를 현대모비스 정규직으로 봐야 한다는 10월 서울중앙지법 판결도 업계 관심을 모았다. 사내협력업체가 아닌 제3의 공장에서 업무를 했더라도 원청과 하나의 작업집단을 구성해 공동작업을 했다면 파견관계에 해당한다고 본 첫 판결이다.

법원의 불법파견 인정범위는 비제조업으로 확대되고 있다. 1월 중견 대형마트 세이브존을 운영하는 세이브존아이앤씨 대표가 매장근무 노동자들을 불법으로 파견받은 혐의로 법원에서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11월에는 신사업을 추진하며 자회사 직원을 조직적으로 전출받아 사용한 SK텔레콤의 불법파견을 인정한 서울고등법원 판결도 있었다.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의 불법파견을 인정(원청 근로자지위 인정)한 대법원 판결과 더불어 서비스·공공·IT 전반으로 불법파견을 인정하는 판례가 쌓이고 있다.

노사관계 달군 뜨거운 감자 ‘근로자성 인정’

노사관계를 달군 이슈는 또 있다. 바로 근로자성 인정 문제다. 특수고용 노동자를 중심으로 근로기준법 또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근로자인지 아닌지를 가리는 법적 다툼이 치열했다.

대법원은 4월 “우정사업본부와 도급계약을 맺은 재택위탁 집배원들은 우정사업본부 노동자”라는 취지의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들이 종속적 관계에서 우정사업본부 지휘·감독 아래 있었다고 판단했다. 서울행정법원은 9월 지방자치단체와 위탁계약을 맺은 상수도 계량기 검침원을 지자체가 고용한 노동자로 인정했다. 1~2년 단위 위탁계약을 맺었어도 지자체가 업무를 지시·감독했다면 지자체 고용 노동자라는 판결이었다. 사찰에 기거하며 청소와 정리를 돕는 처사(불교신자)도 정해진 근무를 하며 월급을 받았다면 근기법상 근로자로 봐야 한다는 11월 서울행정법원의 판결도 눈길을 끌었다.

‘아이돌봄 서비스’ 기관에 소속된 아이돌보미들의 근기법상 근로자성 인정 여부는 1심과 2심의 판단이 달랐다. 광주고법은 6월 아이돌보미 근로자성을 인정한 1심을 뒤집었다. 아이돌보미들이 기관에 출퇴근할 의무가 없고, 근로제공이 이용자 집에서 이뤄지는 탓에 사용종속성이 떨어진다고 봤다. 플랫폼 노동 등 다양해진 근로형태를 감안하지 않고 노동자 권리를 좁게 해석한 판결이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대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릴지 주목된다.

노조법상 근로자성 인정범위는 점점 확대되는 추세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고 사용자와 교섭을 할 수 있도록 노동권을 인정하는 판례 경향이 뚜렷하다. 대법원은 2월 철도역사 매점운영자들을 노조법상 근로자로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1·2심 재판부는 매점운영자를 코레일관광개발과 용역계약을 맺은 독립사업자로 보고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 대목에서 떠올려야 할 판례가 있다. 이른바 ‘학습지교사 판결’로 불리는 지난해 대법원 판결이다. 대법원은 노조법상 근로자성을 따질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판단기준으로 소득의존성과 계약내용 일방성, 해당 사업자를 통해서만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지 여부, 지속성·전속성, 지휘·감독관계, 노무제공 대가성 등 6가지를 제시했다.

대법원은 이 판단기준에 따라 매점운영자들이 노조법상 근로자가 맞다고 판단했다. 코레일유통이 업무내용과 업무시간·판매가격 등 용역계약의 주요 내용을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있다는 점, 노무제공 대가로 물품 판매대금의 일정비율로 산정된 용역비가 지급된 점을 고려할 때 매점운영자들이 코레일유통과 경제적·조직적 종속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6월에도 현대·기아자동차 판매대리점과 판매위탁계약을 체결한 판매직원(카마스터)과 관련해 6가지 판단기준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노조법상 근로자가 맞다는 확정판결을 했다. 11월 대리운전기사와 택배기사를 각각 노조법상 근로자로 인정한 부산지법과 서울행정법원 판결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사용자 ‘부당노동행위 철퇴 판결’ 잇따라 

올해 법원은 사용자 부당노동행위에 엄격한 태도를 견지했다.

7월 대법원은 창조컨설팅 자문에 따라 금속노조 발레오만도지회를 와해하려 한 혐의로 기소된 강기봉 발레오전장시스템스코리아 대표에게 징역 8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9월에는 회삿돈 13억원을 들여 창조컨설팅에 노조파괴를 자문한 혐의로 기소된 유시영 유성기업 회장이 징역형을 선고받고 구속됐다. 노조파괴 컨설팅 비용에 배임 혐의를 적용한 첫 사례였다. 대법원은 8월 기업에 노조파괴 컨설팅을 제공한 창조컨설팅 심종두 전 대표와 김주목 전 전무의 실형을 확정했다. 어디에선가 제2의 창조컨설팅을 꿈꾸는 노무법인·법무법인뿐만 아니라 거액을 들여 노조파괴 컨설팅업체의 문을 두드리고 있을 수많은 사업주들에게 경종을 울렸다.

화룡점정은 온갖 불법으로 점철된 삼성 ‘무노조 경영’의 실체를 드러낸 두 건의 판결이다. 12월13일 삼성에버랜드 노조와해 재판, 17일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재판이다.

두 건의 재판에서 전·현직 삼성 임원들이 줄줄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삼성 2인자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과 강경훈 부사장은 구속을 면치 못했다.

11월14일 노사합의로 취업규칙을 바꿔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더라도 개별 근로자 동의가 없다면 이를 적용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사용자가 제정·변경 권한을 갖는 취업규칙보다 유리한 근로계약 기준은 변경할 수 없으며 우선 적용된다는 취지의 판결이다. 임금피크제에 불만을 갖고 있는 노동자들이 무더기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육체노동자 가동연한을 기존 60세에서 65세로 상향한 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노동현장에서 정년연장 논의로 가는 지름길이 될 전망이다.

배혜정 bhj@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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