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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피크제의 운명

기사승인 2020.01.07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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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얼마 되지 않았다. 지난 연말이었다. 사무실에 회사 인사노무담당자가 찾아와 상담을 했다. 자문노조인 한 국책은행노조에서 사측과 급히 교섭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라며 연락이 왔다. 노측만 대리한 ‘전통’의 우리 법률사무소인데 아무리 자문노조 요청이라고 해도 받아 줄 수 없다고 노조측만 오라고 전달했는데도 노조 수석부위원장이 사측 담당자를 대동하고 상담을 왔다. “임금피크제 기준 등을 바꾸는 협상을 노사가 진행해 왔다”며, 어떠한 방식으로 합의를 해야 하는지 물었다. 최근 대법원이 선고한 임금피크제 판결과 관련해 어떻게 합의를 해야 장차 조합원의 권리 주장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을 것인지에 관해서 사측과 협상을 담당하고 있는 수석부위원장은 궁금했던 것이고, 노조측과 원만한 협상을 바라는 사측 담당자도 이를 알고 싶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 사업장만은 아니었다. “노조 동의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더라도 근로자가 동의하지 않았다면 그보다 유리한 근로계약이 적용된다”고 지방공기업인 문경레저타운사건에서 대법원이 판결한 직후부터 임금피크제를 두고서 많은 사업장에서 연락이 왔다. 노조와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사측 담당자, 심지어 사측을 자문하는 변호사로부터도 문의전화를 받았다. 대법원 판결 사건처럼 주장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할 수 있는지를 물었고, 어떻게 해야 달리 취급될 수 있는지를 알고 싶다는 것이었으니, 진지하게 혹은 건성으로 내 맘대로 대답을 해 줬다. 어쨌거나 이렇게 오늘, 이 나라 사업장들에서 노든 사든 임금피크제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묻고 있다.

2. 10%라고요? 내 귀를 못 믿어 이렇게 물었다. 임금피크제가 적용돼 종전에 받던 임금 10%만 지급받는다는 것이니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연봉이 1억원인 경우 연봉 1천만원을 지급받게 된다니 이런 수준으로 임금이 삭감되는 임금피크제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는 대답에 다시 놀라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물었다. “정년을 65세까지 연장하고서 그 정년을 1년 앞둔 64세에 지급받는 임금 수준이냐”고 말이다.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이 정한 대로 정년을 60세로 하면서 이런 수준의 임금 삭감은 말이 되지 않는 것이기에 나는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저 60세 정년일 뿐이었다. 그 정년을 3년 앞두고 순차적으로 임금을 삭감해서 마지막 해에는 10%만 지급받는다는 것이니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날 나는 그렇게 알고서 상담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최저임금법 위반이 문제가 돼서 노사가 근무시간 조정을 검토하고 있다는 말에 그럴 수밖에 없을 거라고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3. 2013년 박근혜 정권 아래서 개정된 고령자고용법은 근로자의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하도록 하고, 그 미만으로 정한 경우는 60세로 정한 것으로 보도록 규정해 2016년부터 시행하고 있다(19조). 이 법률은 노사는 임금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19조의2), 위와 같이 법이 정한 60세 정년을 두고서는 가만히 있어도 간주되는 것이라서 노조가 임금이 삭감되는 임금피크제 등을 사용자와 합의해 조합원, 노동자의 임금 등 권리를 저하시킬 일이 아니다. 당시, 즉 2016년에 60세 정년연장에 관한 법률 시행을 앞두고서 나는 노조가 아무 짓도 하지 않으면 된다고 칼럼에 쓰고 교육을 했다. 그 무렵 고용노동부가 앞장서 권력이 사용자를 위해 임금피크제 도입 등을 지원했다. 이에 따라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대대적으로 임금이 삭감되는 임금피크제가 도입됐다. 그런데 대법원 판결 사안의 문경레저타운에서처럼 거의 대부분의 경우는 노조가 합의해 줬다. 기관 평가 등 경영평가성과급 지급의 불이익을 비롯해서 그 변명은 다양했다. 90%까지 삭감해 10%만 지급하는 데 합의해 준 이 노조조차도 그래야 했었다는 변명은 있었다. 하지만 그 변명이 무엇이라도 노조가 노동자의 임금권리를 삭감하는 데 합의해 줬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노조가 합의해 주지 않았더라면, 단 1%도 삭감되지 않았을 노동자의 임금이 임금피크제 도입 합의로 삭감됐던 것이니, 사실 이 나라에서 노조는 임금피크제를 두고서 할 말이 없다.

4. 어디 임금피크제만이겠는가. 1일 8시간, 1주 40시간의 법정근로시간 범위 내에서 정해야 할 소정근로시간에 관해서 보면, 그저 그 법정근로시간을 그대로 소정근로시간으로 단체협약에서 정하고 있을 뿐이고, 법정근로시간보다 단축된 소정근로시간을 정한 것을 찾아볼 수가 없다. 각종 복리후생 명목으로 합의해 주고 임금으로 취급하지 않도록 해 사용자가 평균임금에 포함하지 않도록 해 줘서 노동자에게서 퇴직금·휴업수당 등을 빼앗았다. 그리고 소정근로에 대한 대가 임금이 아닌 것처럼 합의해 주고 사용자가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도록 해 노동자에게서 잔업·특근 등 법정수당을 빼앗았다. 사용자만을 두고서 하는 말이 아니다. 우리의 노조를 두고서 하는 말이다. 수십년간 노조에 있는 사업장의 노동자가 퇴직금·휴업수당·연장근로수당·휴일근로수당·연차휴가수당 등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했다며 소송으로 청구했던 사건들은 비록 사용자를 상대로 부당하다고 주장한 것이지만, 그 주장을 파고 들어가 보면 노조의 행위를 비난하는 것일 수밖에 없었다. 말이 ‘동의’고 ‘합의’지 노조가 사용자에게 해 준 동의 내지 합의는 그에 따라 자신의 권리를 삭감당한 조합원, 노동자에게는 ‘협잡’의 다른 말이다. 노동자 권리로만 본다면, 이 나라에서 노동의 역사는 노조가 동의해 주고 노사합의를 해서 빼앗기게 된 임금 등 권리를 노동자들이 찾아왔던 것이라고 써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그러니 그러한 권리 주장이 기록된 판결문을 읽는 일은, 노조가 했던 일과 해야 했던 일을 읽는 것이기도 하다.

5. 공공운수노조를 비롯해 많은 노조들이 임금피크제 폐지를 외치고 있다. 그 도입은 사측이 만든 임금피크제에 동의해 주거나 합의해 주는 것으로 쉽게 된 것인데, 그 폐지는 노조가 요구해도 되지 않으니 오늘도 외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가 사측이 듣지 않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파업 등 투쟁을 통해서만 폐지에 이를 수 있는데, 그것이 어렵다. 과연 폐지를 관철할 정도의 투쟁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에 찬 노조가 얼마나 될 것인가. 그래서일 것이다. 노조가 동의하고 합의해 준 임금피크제가 무효라면, 굳이 어렵게 폐지투쟁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니 이번 문경레저타운 대법원 판결에 관심이 높은 것이다. 이에 대해 ‘이번 판결이 노조의 교섭을 약화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닌가’라며 다른 관심을 드러낸 노조는 아직 보지 못했다. 이렇게 끄적거리다 보니 과거 통상임금을 비롯해 노동자 권리에 관해 했던 말이 떠오르고 그 말을 내가 다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결국 나는 이 나라에서는 노조가 쟁취해 체결하는 협약은 이미 법원이 판결로 선언한 노동자 권리를 확인하는 정도일 거라고 낙담하고 만다.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타령으로 살아온 20여년 동안 나는 이렇게 낙담만 쌓아 왔던 것인데, 오늘 다시 낙담하고 있다.

6. 하지만 대법원 판결이 선고되고서 지금까지 1개월간 상담을 해 오면서, 그저 노동자가 노조가 동의하고 합의해 준 임금피크제가 무효라고 주장하는 것만으로 해당 사업장에서 임금피크제를 폐지로 몰아넣을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임금피크제를 폐지로 결정짓는 일은 자신의 임금권리를 결정할 자유의 존재와 그 행사를 전제로 한다. 이는 노조를 통해서, 노조를 이용해서 집단적으로 요구해서 한다면 보다 수월할 수 있다. 단순히 사용자에게 임금피크제 거부 의사표시를 하더라도 노조가 취합해서 하도록 한다면 당사자가 개별적으로 하는 것보단 훨씬 수월할 것이 분명하다. 노조가 자신이 임금피크제 적용대상 노동자들에게 어제 한 일을 ‘사과’하는 것이기도 하다. 돌이켜 보면 이는 이 나라에서 임금피크제에 동의하고 합의해 준 것에 대해서는 분명히 하고 갈 일이다. 법이 정한 정년 60세로 하면서 해 준 것이니 말이다. 만약 법보다 상회하는 수준, 예를 들어 65세로 하면서 임금을 동결하는 정도였다면 그렇지 않았을 것이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다. 노동자 권리 앞에서 나아가야 하는 것이 노조다. 그 뒤를 쫓아가서는 안 된다.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한 대한민국헌법과 노동법은 분명히 노조를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임금피크제의 운명을 결정짓는 일, 노조가 할 일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김기덕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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