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기무사령부(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가 2014년 세월호참사 발생 후 수개월간 유가족 개인정보는 물론이고 TV 시청내용까지 파악하는 등 전방위적 사찰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은 불법사찰 정보를 기무사령관으로부터 35차례 대면보고를 받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도 간접적으로 보고된 것으로 파악된다.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박근혜 정부의 이 같은 불법사찰 내용을 폭로하고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비롯한 당시 청와대·국방부 관계자 71명에 대한 검찰 수사를 요청한다는 방침이다.

기무사 2014년 6개월간 보고 건수만 627건

특별조사위가 8일 오전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기무사가 세월호 유가족에 대해 조직적으로 불법사찰을 공모했다고 밝혔다.

특별조사위에 따르면 군 첩보 및 군 관련 첩보를 수집·처리해야 할 기무사가 수사 대상이 아닌 민간인에 대한 정보 수집을 광범위하게 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 등은 2014년 4월18일부터 같은해 9월3일까지 35회에 걸친 대면보고를 통해 기무사가 불법적으로 수집한 정보를 보고받고 언론대응에 활용했다. 세월호 유가족의 휴대전화와 통장사본·인터넷 물품 구매내역·포털사이트 활동 내역 등 개인정보뿐만 아니라 실종자 가족이 머물던 진도실내체육관도 사찰했다.

특별조사위는 당시 청와대와 국방부 관계자들의 명시적 지시 여부와 관련해 “현 단계에서는 직접적인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면서도 민간인 사찰 결과 등 보고가 지속적으로 이뤄진 데다 청와대 대변인 발언 등에서 관련 정보를 활용한 정황을 볼 때 청와대의 명시적 지시가 있었을 것으로 판단했다.

기무사 지도부는 진도를 담당하는 610부대와 안산 310부대에 ‘세월호 유가족 분위기, 소란행위 등 특이 언동·사생활·정치적 성향’을 파악하도록 지시했다. 2014년 4월16일부터 예하부대(610부대·310부대)에서 받은 보고 건수만 627건이다.

‘기무사령부와 예하부대 간 주요 지시·보고’를 보면 사령부는 유가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질 수 있는 정보수집을 지시했고 예하부대는 지시에 맞는 정보를 보고했다. 예를 들면 ‘유가족의 무리한 요구나 TV 시청내용·야간 음주 실태·신경질을 내는 사례 등 진도실내체육관 동정 확인’ 지시에, “유가족 외부단체와 연계 반정부 활동 지속”이라거나 “구강청결제 대신 죽염 요구” “노사모 출신 등의 정치 성향, 페이스북 대통령 비난” 같은 내용을 보고했다. 미수습자 가족을 강경파와 온건파로 분류해 보고하기도 했다.

박근혜 청와대 기무사 사찰 보고에 ‘만족’

청와대는 기무사 보고에 크게 만족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별조사위가 확보한 기무사 보고자료에 따르면 김관진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기무사 보고를 받고 “최고의 부대”라고 평가했다. “세월호(와) 관련(해) 다들 부담스러워 보고를 안 하는데 이렇게 보고해 줘 고맙다”고 말하기도 했다. ‘기무사 중요보고 결과’ 자료를 보면 세월호 동향 보고와 관련해 “(김기춘) 비서실장께서 아주 만족해하신 듯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특별조사위는 “기무사가 수집한 사찰 정보는 청와대의 유가족에 대한 부정적 여론 형성과 진상규명 방해 등에 이용됐을 개연성이 있고, 실제 유가족과 가족대책위원회는 각종 허위사실 유포 등으로 ‘무리한 요구를 하는 집단’ ‘빨갱이, 좌파’ 등 갖은 비방과 모욕의 대상이 됐다”며 “사찰과 이러한 피해 사이의 명확한 연관관계 규명을 위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특별조사위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김장수·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을 포함한 청와대·국방부 관계자 5명과 기무사 관계자 66명 등 71명에 대해 직권남용과 권리행사방해·업무방해 혐의로 검찰에 수사를 요청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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