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11월5일 ‘간접고용 노동자 노동인권 증진을 위한 제도개선 권고’를 발표했다.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도급 금지 유해·위험 작업 범위 확대 △위장도급 근절 △사내하청 노동자 노동 3권 보장을 위한 제도개선을 하라고 권고했다. 노동부는 20일까지 답변을 내놓아야 하지만 아직 뚜렷한 움직임이 없다. 노동·시민·사회단체가 노동부에 권고 이행을 촉구하는 글을 보내왔다. 6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 박준선 공공운수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

2018년 12월11일 새벽 우리는 공공기관인 발전소에서 일하는 한 청년 비정규 노동자의 억울한 죽음과 마주했다. 분진으로 앞을 분간하기 어려운 석탄 이송 컨베이어벨트 작업장의 모습은 모든 이들을 분노하게 했다. 특히 그곳이 국가가 운영하는 공기업 발전소였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이었다. 고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은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부개정되도록 했고 ‘위험의 외주화’는 더 이상 안 된다는 사회적 인식을 확산시켰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간접고용 노동자 노동인권 증진을 위한 제도개선 권고’에서 첫 번째는 “위험의 외주화로부터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라고 적시돼 있다. 고 김용균 노동자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한국 사회의 반성이다.

‘반성·진단’ 있지만 미봉책일 뿐

고 김용균 노동자가 목숨을 잃자 문재인 대통령은 위험의 외주화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근의 산업재해 사망사고가 청년·비정규 노동자에게 집중된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유해·위험 업무의 도급금지는 일부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업무로 한정해 태안 화력발전소 김용균과 구의역 김군, 무수히 많은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는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은 도급금지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28년 만에 전부개정됐다고 하나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은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이라는 조롱을 받고 있다.

고 김용균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2018년에는 공공기관 안전에 문제가 있음이 드러난 해였다. 10월7일 대한송유관공사 고양저장고 화재, 11월24일 KT 아현국사 화재, 12월4일 한국지역난방공사 백석역 열수송관 파열사고, 12월8일 KTX 강릉선 탈선사고, 12월10일 태안 화력발전소 고 김용균 노동자 사망사고 등 공공부문에서 민영화와 외주화로 인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송유관공사와 KT는 민영화가 불러온 사고이며, 지역난방공사·태안 화력발전소에서 벌어진 사고의 업무는 모두 외주화됐다. 2016년 구의역 김군 사고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문제 역시 정부는 잘 알고 있었다. 2018년 6월5일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을 제출했다. 제출 배경으로는 경영효율성에 치중한 나머지 공공성이 위축됐고 과도한 비정규직 사용과 위험의 외주화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또 다른 간접고용인 자회사 속출, 인력충원 외면 등으로 인해 여전히 한국의 공공부문은 위험을 안고 운영되고 있다. 요란했지만 자본의 이해에 굴복하고 자신의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 버린 것이다.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은 인권

일하다 죽지 않고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노동자들의 주장은 가장 기본적인 인권의 영역이다. ‘간접고용 노동자 노동인권 증진을 위한 제도개선 권고’의 첫 번째인 위험의 외주화 근절은 한국 사회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과거 정부의 인권위 권고 무시를 질타하며 인권위 위상을 높이고 각급 기관이 권고를 무시하거나 무늬만 수용하는 행태를 근절하라고 지시했다. 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법상 도급금지 확대, 생명·안전업무의 직접고용, 산재에 대한 원·하청 통합관리로 위험을 외부로 떠넘기는 외주화 유발요인 근절 권고를 수용해야 한다. 이는 인권위 권고 이전에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과 산재사망 절반 감축처럼 문재인 대통령이 스스로 약속했던 것이기도 하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