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예상대로 연초부터 노동자들의 임금체계 문제가 크게 부각되고 있다. 주초부터 고용노동부에서는 ‘직무·능력 중심의 공정한 임금체계 확산 지원’을 발표했다. 형식은 권고 정도지만 노동현장은 그 이상이다. 그리고 대법원(2019. 12. 24. 선고 2015다254873 판결)의 임금체계에 대한 연이은 판단도 큰 관심을 끌고 있다. “계약직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노동자들에게도 정규직처럼 기본금·상여금·근속수당 등을 지급하라”고 판단했다. 정부와 법원의 태도로 볼 때 앞으로 노동조건의 핵심이라 할 임금체계 변화가 예상된다.

정부 계획이나 법원 판결은 ‘동일가치노동에 대한 동일일금을 지급하라’는 원칙에서 시작한다. 정부는 ‘직무·능력 중심 임금체계’는 임금격차 및 양극화 완화와 세대 간 임금의 공정성 확보 등을 위한 불가피한 시대적 흐름이라고 평가하면서, 비슷한 일을 하더라도 호봉 때문에 임금격차가 크거나 서로 다른 일을 하는데 호봉이 같다는 이유로 비슷한 임금을 받은 등 ‘동일노동 동일임금’ 취지에 반하거나 임금의 공정성 문제를 초래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에서도 ‘차별금지 원칙’을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대상범위를 확대해 오고 있다. 이러한 원칙은 이번에 파기환송된 판결뿐만 아니라, 근로기준법(6조)상 차별이 금지된 사회적 신분에는 고용형태도 포함된다는 판단에서도 계속 확인되고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하급심 지법에서는 정규직과 무기계약직 사이의 차별은 사회적 신분에 의한 차별이라고 했고, 대법원에서는 전업 시간강사와 비전업 시간강사를 구분해 임금 등을 차등 처우한 것은 사회적 신분에 의한 차별을 금지한 근로기준법 위반이라고 판결하기도 했다.

정부와 법원의 입장은 헌법가치로서 존중돼야 한다. 다만 법원이 내린 개별 판단을 언론기사처럼 이미 일반화된 법리인 양 받아들이기는 아직 이르다. ‘직무·능력 중심의 공정한 임금체계 확산 지원’을 발표한 정부에 대해서는 우려를 넘어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먼저 “공정한 임금체계로의 변화는 노사 간의 소통에서부터 시작한다”며 “기업의 임금체계는 정부나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 간 충분한 협의와 소통을 통해 노동자들이 수용 가능한 대안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하면서도 스스로 이러한 원칙을 어겼다. 노동자들과는 그 어떤 ‘충분한 협의와 소통’을 구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외부적 환경은 분명 임금체계의 급속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점점 더 힘을 얻을 것이다. 많은 노동자들이 이 원칙에는 동의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노동현장은 직무급제를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직무급제 논의 이전에 이를 도입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전체 노동이 기업 전체 수익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자본과 노동 사이 배분의 정의는 어디쯤인지 등에 관한 분석과 사회적 합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우리에게는 제대로 된 토론조차 해 본 적이 없다. “준비 없는 직무급제는 임금삭감의 매우 유효한 수단이 될 것”이라고 노동계 선배가 충고한다. 노사관계 전문가는 “직무급제는 비전형 노동에 대한 충분하고 정상적인 보상이 가능한 시장에서나 가능하다”며 우리가 쉬 받아들일 수 있는 제도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정부 발표를 보면서 5년 전, 10년 전이 떠오른다. 각 정부마다 다양한 임금정책 제안이 있었다. 대졸초임 삭감부터 성과연봉제까지. 각 임금체계마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모두 실패했다. 우리는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다. 정부 주장이 사실이 아니었고, 노동자들에게 그 어떤 동의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의롭지 않았다.

우리나라 노동현장에 호봉제가 여전히 큰 근간을 이루고 있는 역사적 배경과 호봉제의 장단점은 이미 충분히 연구됐다. 그게 우리 현실이다. 우리의 사정을 인정하면서, 노동자들에게 “노동에 대한 정의로운 평가와 보상을 위한 제도적 틀을 튼튼히 하자”는 제안이 우선이다. 앞서 말한 노동과 자본의 정의로운 분배가 그 시작이고, 튼튼한 사회안전망 구축도 그런 제도적 틀에 포함돼야 한다. 그 다음이 임금체계에 관한 논의가 돼야 한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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