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민주노총이 4·15 총선을 앞두고 잰걸음을 하고 있다. 김명환(55·사진) 민주노총 위원장은 “남은 임기 1년 동안 진보정치 복원을 위한 마중물이 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말 이례적으로 정치위원장을 맡았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멀게는 민주노동당 분당, 가깝게는 통합진보당 해산 이후 흩어진 진보정당들이 경쟁하는 속에서 선거 때마다 혼란을 겪었다. 민주노총은 2012년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철회한 후 정치방침을 정하지 못했다. 조합원들은 지방선거·총선·대선에서 자유투표를 한 지 오래다. 최근 민주노총이 독자정당을 창당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 것은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다.

지난 22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김명환 위원장은 이른바 ‘민주노총당’으로 불리는 독자정당 추진에 대해 선을 그었다. 대신 “7~8년간 멈춰 있던 현장에서 노동정치·진보정치를 복원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설연휴가 끝나는 대로 민주노총과 다섯 정당(정의당·민중당·노동당·녹색당·사회변혁노동자당)이 한자리에 모이는 ‘진보정당 연석간담회’를 마련해 연합정치를 제안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하고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 3권을 보장하는 것을 골자로 한 ‘전태일법’ 입법화와 ‘각 당 개방형 비례대표 선거인단 참여’로 진보정당과의 연결고리를 찾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1노총 지위보다 조직률에 착목해야”

- 민주노총이 1노총이 됐다. 달라진 위상을 느끼나.
“크게 의식하지 않고 있다. 우리가 1노총이라고 주장하고 싶지도 않다. 지금은 노조 조직률에 착목해야 할 때다. 9%대까지 떨어졌던 노조 조직률이 15년 만에 11%대로 올라섰다. 우리 사회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걸 보여 주는 지표라고 생각한다. 물론 안을 들여다보면 30명 미만 사업장 조직률이 0.1%에 불과하다. 그래서 30명 미만 작은 사업장 조직화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 보수진영 공격에도 양적 성장을 이룬 배경을 설명한다면.
“민주노총이 그동안 보여 준 자주성과 민주성, 연대하는 모습이 노동자들에게 ‘저쪽(민주노총) 가면 좀 더 낫다더라’ 하는 믿음과 신뢰를 준 게 아닌가 싶다. 12년 전부터 전략조직화 사업계획을 세워 인적·물적 투자를 한 결과이기도 하다. 촛불항쟁 이후 ‘누구나 노조(활동을) 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

- 임기가 1년 남았다. 출마 당시 계획했던 것들을 얼마나 이뤘나.
“박하게 본다면, 제대로 한 게 뭐가 있냐는 생각도 든다. 2년을 꾸역꾸역 시간만 메꾼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외부에서는 민주노총이 1노총 지위를 확보했고 부동의 100만 조합원이 됐다며 축하한다. 그러나 해결해야 할 핵심과제는 그대로 남아 있다. 10년 전 세웠던 산별전략을 다시 만드는 일은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200만 조직화를 위한 가이드라인이나 비전을 주지도 못했다. 노정·노사정 교섭 테이블을 만들기 위해 총연맹이 한발 더 나갔어야 했는데, 부족했다.”
 

▲ 정기훈 기자

“경사노위, 도로 노사정위 회귀 안타까워”

- 사회적 대화 복원에 공을 들였지만 민주노총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는 무산됐다. 민주노총이 경사노위 참여 여부를 놓고 논쟁하는 사이 사회적 대화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지난 과정을 평가해 달라.
“결과적으로 1기 경사노위는 실패했다. 이전 보수정부 노사정위원회로 회귀했다. 실제 탄력근로제 논의 과정에서 경사노위가 정부 정책을 관철시키는 기구가 됐고, 합의를 만들어 내려는 조급성을 보였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저대변층(경사노위 노동계 계층별대표)이 정책에 반한다는 이유로 바깥으로 밀려난 것이다. 경사노위를 처음 만들 때 취지와 방향에서 벗어났다. 민주노총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에서 안타깝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 여부에 집중돼 있다. 분명한 말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경사노위에 참여하려면 2월 정기대의원대회에 안건으로 올려야 한다. 시간적·물리적 여건이 되지 않는다.”

- 사회적 대화를 중시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경사노위 말고 다른 대안이 있나.
“일단 노정협의 모양새를 만들려고 한다. 대표적으로는 지난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투쟁의 성과인 공공부문 공무직위원회가 있다. 당시 정부는 노정협의 기구처럼 얘기했는데, 실상 관료들 손으로 가는 순간 의견청취기구 수준으로 떨어진다. 노정협의의 실질적 내용과 완성도를 갖출 수 있도록 우리도 노력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부에 달려 있다. 공무직위가 관료들에 의해 흔히 말하는 소원수리·의견청취기구로 전락하는 순간 파행은 불 보듯 뻔하다. 노동자들은 또 극한투쟁을 할 수밖에 없다. 처음 공무직위를 만든 취지와 내용이 훼손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 정세균 국무총리가 사회갈등 해결을 위한 새로운 협치모델인 ‘목요대화’를 운영하겠다고 밝혔는데.
“아직 (총리실에서) 연락 온 것은 없다. 제안이 오면 적극 검토해 보겠다.”
 

▲ 정기훈 기자

울림 없는 대통령의 ‘노동존중 사회’

-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노동존중 사회’를 언급했다. 어떻게 봤나.
“뭐랄까 울림이 없었다. 노동존중 사회를 하겠다는 게 울림이 있으려면 지난 시기에 대한 평가가 있어야 한다. 소득주도 성장에 기반한 최저임금 인상은 포기했고, 노동시간단축은 탄력근로제만 계속 되뇌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은 자회사 문제로 충돌이 있고, 민간위탁 문제에 대해서는 대안이 없다. 대통령이 말하는 ‘노동존중’이 공허하게 느껴진다. 나 혼자만의 느낌은 아닌 것 같다.”

- 올해도 최저임금 제도 개편과 공공부문 자회사 설립 논란, 노동법 개정 이슈가 이어질 텐데, 어떻게 대응할 생각인가.
“지난해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문제였다면 올해는 주휴수당 문제가 대두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산입범위보다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개악이다. 주휴수당 폐지 등 추가 개악을 저지하는 게 올해 최저임금 투쟁의 핵심 의제가 될 것이다. 최저임금 1만원 투쟁의 성과는 계승하되 새로운 담론을 개발해야 한다. 단순히 정부가 자영업·소상공인·중소기업을 지원하는 프레임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최저임금 인상 부담금에 대해 대기업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겠다. 재벌 대기업이 소유한 보유금에 세금을 부과하거나 불법적으로 발생한 이익을 환수할 수 있도록 법·제도적인 문제를 제기해 최저임금 인상 재원을 마련하는 투쟁을 할 것이다. 민주노총 투쟁의 골간을 관통하는 것은 비정규직 문제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민간부문으로 확대 적용하는 것과 간접고용 노동자의 단체교섭을 보장하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올해 전태일 열사 50주기에 맞춰 민주노총이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노동 3권을 주고 5명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는 내용의 ‘전태일법’ 입법을 진보정당들과 추진하는 이유다.”

- 정부가 추진하는 상생형 지역일자리를 어떻게 보나. 지역별로 참여하는 단위가 있는가 하면, 보이콧하는 곳도 있다. 민주노총이 지역일자리 창출에 무관심하다는 비판이 있다.
“자꾸 민주노총이 일자리 창출에 무관심하다고 하는데, 지난해 제가 가장 많이 참석한 회의가 일자리위원회였다.

지역일자리 창출을 위한 거버넌스에 적극 참여해 논의하겠다는 것이 민주노총 입장이다. 그런데 상생형 지역일자리 정책이 산업정책에 대한 고려 없이 묻지마 자동차산업 유치나 임금 삭감·노동 배제·노동 양보를 강요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대기업 투자 여부만 집중적으로 부각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 상생형 지역일자리에 정부 재정이 투입된다면 세금을 낸 국민의 목소리와 그곳에서 일할 주체인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해야 하지 않겠나. 상생형 일자리의 ‘상’이 ‘윗 상(上)’자가 아닌 ‘서로 상(相)’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 정기훈 기자

“진보정당들과 연합정치 모색하겠다”

- 4·15 총선을 앞두고 민주노총의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오죽하면 내가 직접 정치위원장을 맡았겠나.”

-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5개 진보정당을 순회했다. 무엇을 하려는 건가.
“진보정당들이 흩어진 상태에서 멈춰져 있다. 이렇게 7~8년이 지났다. 그러는 동안 현장에서 노동정치와 진보정치를 복원하려는 시도를 하지 못했다. 흩어져 있는 진보정당을 모아 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당 분열’이라는 말을 쓰고 싶지 않다. ‘진보정치의 다원화’라고 표현하고 싶다. 당의 지향성과 방향성에 차이가 있더라도 그 차이를 인정하자는 취지다. 그런데 지난 수십 년 동안 첫째도 단결, 둘째도 단결해 자신의 정치·사회적 지위를 높여 왔던 현장 조합원들은 다원화한 진보정치를 받아들이기 힘들다. 진보정치는 왜 단결할 수 없나, 의아한 것이다. 실제 민주노총 조합원 중 자신이 지지하는 특정정당이 있는 사람은 채 5%도 안 된다. 나머지 95%는 대리정치·위임정치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 기저에 흐르는 게 냉소주의다. 현장의 냉소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열려진 공간에 조합원들의 참여를 끊임없이 유도하고, 진보정당들과 공동의 사업을 만들어 보려고 한다. 연합정치를 해 보자는 것이다. 조합원들에게는 정의당이든 민중당이든 노동당이든 진보정당 비례대표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선거인단으로 참여하자고 제안할 생각이다. 각 진보정당에는 불평등·양극화 해소를 위해 사회적 시스템을 바꾸고 의제화하는 데 함께하겠다고 한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여 달라고 제안할 것이다. 4·15 총선에서는 민주노총과 진보정당들이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조합원들에게 보여 줘야 한다. 설연휴가 끝나는 대로 민주노총과 다섯 정당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진보정당 연석간담회’를 마련해 연합정치를 제안할 계획이다. 그럼 민주노총은 무엇을 할 것이냐. 정당들만 쳐다보고 있진 않겠다. 2월 대의원대회에서 중앙·지역·가맹조직이 함께 상시적 정치실천단을 꾸리는 내용의 사업계획을 제출하겠다. 진보정당 당적을 가진 조합원들과 당적은 없지만 정치사업에 관심 있는 조합원들을 모아 선거시기는 물론이고 일상적으로 민주노총 중심의 정치활동을 해 보자는 것이다.”

- 정의당만 봐도 당원들의 성향이 매우 다양해졌다. 신입당원들이 대거 입당했다. 민주노총의 제안을 진보정당 당원들이 받아들일까.
“진보정당과 민주노총을 완전히 일치시킬 순 없다. 그렇지만 진보정당들도 노동의 정체성이란 게 있지 않나. 영원히 각자의 길을 가겠다고 하진 않을 것이다. 진보정당 당원들이 민주노총의 제안을 존중해 주리라 믿는다.”

- 진보정치 통합이 가능하다고 보나.
“거꾸로 물어보고 싶다. 그럼 이 상태를 그대로 놔두자는 것인가? 진보정당들의 다원화한 상태를 인정하지만 현장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정서와 충돌하는 현 상황을 그대로 둘 수는 없다. 차기 대선은 2022년 3월 초에 치러진다. 거슬러 올라가면 2021년 7~8월 초가 대선 예비후보 등록기간이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없다. 소위 말하는 중앙권력 교체기가 2021년 하반기부터 시작된다. 대선이 끝나면 곧바로 지방선거다. 정치 일정을 보면 그때까지 이 상태를 유지할 거냐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4·15 총선에서 뭔가 불씨를 살리고 확장시켜야 한다. 물론 ‘그냥 놔두자’거나 ‘이대로 가자’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그냥 놔둔 상태를 인정하더라도 정치적 냉소주의에 빠진 조합원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려면 대안이 있어야 한다. 다소 추상적이고 공허할 수 있지만 그 대안을 연합정치로 보고 있다.”

- 한국노총 신임 지도부가 선출됐는데.
“김동명 위원장과 이동호 사무총장의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선거 과정에서 노정관계 재정립과 강력한 대정부 투쟁을 선포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그간 걸어온 역사적 뿌리, 조직문화, 활동 기풍, 정치방침이 많이 다르다. 여러 대목에서 입장차이가 나는 것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큰 틀에서 강력한 대정부 투쟁을 기조로 한 집행부가 당선된 만큼 공동의 목표를 향해 협력할 것은 협력해야 한다고 본다. 조속한 시일 안에 만나 불평등·양극화 해소를 위한 노동의 역할, 대정부 공동투쟁, 총선 포함 공동 대응방안을 논의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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