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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치가 있다면 당장 멈춰라

기사승인 2020.02.06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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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한국마사회노조·한국마사회업무지원직노조·한국마사회경마직노조 명의로 경마 팬들에게 올린 호소문을 읽었다. “공정한 승부를 해치는 경마제도 개악을 막아 주십시오”라는 제목에서부터 숨이 막힐 것 같아 천천히 숨을 쉬어 가며 읽는다. 2005년 부산경남경마공원 개장 이래 모두 7명의 기수와 말관리사가 목숨을 끊었다. 문중원 기수가 마사회의 비리와 부정 지시를 거부할 수 없는 기수의 처지를 폭로한 세 장의 유서를 남기고 사망한 후 이런 죽음이 또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런데 세 노조 명의로 작성된 이 호소문은, 기수들의 상급단체인 공공운수노조가 제출한 제도개선안에 반대하기 위해 작성된 것이다.

이들은 호소문에서 “경마에서 경쟁성을 없애자는 주장에 동의하는가”를 묻는다. 이들이 문제 삼고 있는 ‘경쟁성을 없애는 조치’란 문중원 기수를 죽음에 이르게 한 현실을 바꾸는 조치들이다. 문중원 기수는 조교사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말을 타지 못해 생계가 위태로웠고, 높은 이들에게 잘 보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마사대부도 받지 못했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기수의 기본 생계를 보장하고, 말을 탈 기회를 임의로 박탈하지 않도록 기승기회를 고루 배정하며, 마사대부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자고 했다. 이것은 생계불안정 때문에 비리에 노출되기 쉽고,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수 없는 기수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요구이며, 경마의 공정성을 위한 요구다.

이들은 ‘경마의 경쟁성이 완화되면 기수들이 최선을 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고액연봉의 안정적 직장인이라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자기 고백이라도 하는 것일까? 처지를 어렵게 만들어 생존을 걸고 경쟁하게 만드는 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낳고 비리의 토양이 될 뿐이다. 마사회 비리를 폭로한 문중원 기수의 유서가 그것을 증언하고 있지 않은가.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는 것은 선수로서 자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경마기수들은 자기 몸무게의 10배에 이르는 말을 조종하기 위해 오랜 시간 훈련한다. 말을 사랑하고 승리했을 때의 환희를 즐기기에 최선을 다한다. 정말로 기수들이 최선을 다하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기수들을 존중하라.

나는 이들이 공공기관의 노동자라는 데에 절망감을 느낀다. 매출을 위해 공공성을 저버리고, 권한만 가진 채 책임을 지지 않는 마사회의 모습과 너무 닮아서다. 2000년대 이후 마사회 회장은 각종 비리와 뺑소니 교통사고·배임·임기 중 비영리 겸직 활동·국정농단 관여 등으로 문제가 됐다. 마사회는 연 7조8천억원의 매출을 올리는데 사회공헌사업이나 말산업 발전에는 매출의 2%도 투여하지 않는다. 화상경마장에 반대하는 이들을 억누르려고 돈으로 반대세력을 동원하고 여론조작도 했다. 워커힐 화상경마장에 해외전문도박단이 들어온 것을 알면서도 매출을 위해 눈감았다. 2018년 국정감사에서는 5년간 성희롱과 일터 괴롭힘으로 88명이 징계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2019년에는 베팅이 엄격하게 금지된 마사회 직원 1천여명이 불법베팅으로 감사를 받기도 했다. 이런 조직에서 스포츠 정신과 공정성을 말한다.

이들은 경마 팬들을 대상으로 제도개선에 반대하는 서명을 받는다고 했다. 공공기관인 마사회는 경마를 도박이 아니라 건전한 레저스포츠로 만들 책임이 있다. 사행산업통합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경마의 도박중독 유병률은 내국인 카지노(54.8%)에 이어 두 번째(41.4%)로 높다. 마사회는 도박에 경도되려는 이들을 자제시키고 경마 관계인들이 품위를 지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마사회 직원들로 구성된 노동조합이 나서 경마 팬들을 상대로 제도개선에 반대하고 무한경쟁을 유지하는 서명을 받겠다고 하니, 도대체 이것이 공공기관 직원들이 할 일인가. 이들이 과연 사행성 산업을 관리할 자격이 있는가.

문중원 기수의 죽음 이후 동료 기수들은 더 이상 과거처럼 움츠리고 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기수들은 열심히 훈련하고 훌륭한 스포츠 선수로서 기량을 마음껏 발휘하기 위해서라도 기본적 삶이 보장돼야 하며, 부정한 지시가 있을 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말을 타는 기수들은 노동자로도 인정받지 못해 권리 바깥에 놓여 있는데, 직접 말을 타지도 않는 이들이 ‘진짜 경마인’이라고 주장하며 기수들의 요구를 짓밟는다. 자신의 죽음으로 마사회 비리를 고발한 문중원 기수의 시신이 아직도 서울 광화문 거리에 모셔져 있고, 유가족은 피눈물을 흘리며 싸우고 있는데, 그들은 지금의 적폐구조를 그대로 두라고 경마 팬들을 선동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염치가 남아 있다면 이런 짓을 당장 멈춰라.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김혜진 labortoday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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