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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와 현대 사이 어디쯤에 카트만두가 있다

기사승인 2020.02.14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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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재훈 여행작가

1월의 카트만두는 우리의 한가을 날씨와 비슷하다. 볕에 나가면 따시고, 그늘로 들어가면 패딩을 찾게 된다. 비라도 오면 한기가 스멀스멀 밀려들어 오한이 들기도 한다. 카트만두의 숙소는 주로들 여행자 거리인 ‘타멜 거리’ 쪽에 잡게 된다. 숙소와 식당, 기념품 가게, 환전소가 있어 외국 여행자들을 모으고 있는 것이 여느 여행자 거리들과 비슷하다.

숙소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더르바르(더르바르는 궁전이란 뜻이다) 광장을 첫 방문지로 잡았다. 3~4세기 전에 카트만두 계곡을 차지하고 있었던 옛 왕국의 유적이기도 한 이곳 더르바르 광장은 카트만두의 랜드마크이기도 하다. 여행자들에게 랜드마크는 피하고 싶어도 피하기 힘든 뭐 그런 자석 같은 속성이 있는 곳이다. 남들 다 가니까 괜히 가기 싫어지는데, 안 가려니 큰 일 보고 제대로 안 닦은 그런 느낌이 든달까? 여튼 찍어는 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자동차와 오토바이, 릭샤(인력거)와 사람들이 뒤엉킨 카트만두 시내를 따라 20분 정도 걸어 도착했다. 안타깝게도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것은 고대왕국의 웅장함과 세월 묻은 깊이가 아니라 2015년 네팔을 휩쓸고 갔던 대지진의 흔적이었다. 광장의 유적들은 4년여의 세월이 지났지만 무너지고 쓰러진 채로 광장을 채우고 있었다. 광장을 복원하는 일에 중국이 크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설명이 여기저기 붙어는 있는데 공사는 지지부진한 모습이다. 공사 인부들 모습은 잘 보이지 않고 피리 부는 군인들만 건물 위를 어슬렁대는 걸 보면. 비록 복구되지 못한 광장이지만, 이곳은 신에게 기도를 올리려는 네팔인들로 북적였다. 광장은 상처를 안은 채로 버텨 가며 사람들의 기도를 받아 내고 있었다. 사람들만큼이나 많은 비둘기가 한번 날아오르기라도 하면 그 푸드덕거리는 소리에 오싹해지기도 한다. 더르바르 광장 한 편에는 여신의 환생이라 여겨지는 ‘쿠마리’가 사는 사원이 있다. 단체 관광객들에게 살짝 얼굴을 내밀어 주는 다섯 살도 채 안돼 보이는 쿠마리의 진한 눈 화장이 길게 인상에 남는다.

광장에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아산시장(Asan Traditional Market)을 거쳐 왔다. 서울의 남대문시장 같은 곳인데, 크기로만 따지면 그에 못지않은 곳이다. 여러 갈래의 골목길에 수많은 상점들이 자리 잡고 퍼졌다가 끄트머리의 작은 광장에서 모이는 구조로 돼 있다. 이곳은 한마디로 혼돈 그 자체다. 사람과 릭샤들이야 카트만두 어디를 가도 차고 넘치니 다를 게 없지만, 건물과 골목 사이사이를 거미줄처럼 잇고 있는 뒤엉키고 뭉쳐진 전선들이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몇 곱절 더해 준다. 사람들을 피하느라 바로 앞과 바닥만 보고 걷다가 잠시 위를 올려다보면 좁은 골목길 양쪽의 건물 사이에 누에고치 집처럼 뭉쳐지고, 거미줄처럼 이어지고, 엿가락처럼 늘어진 수십 줄의 전선들이 언제라도 머리를 덮칠 것 같은 느낌까지 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장에 들어선 지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구경은 뒷전으로 밀렸고, 여기서 얼른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어느새 낯선 시장 골목에서 누군가의 추격을 피해 사람들 틈을 이리저리 비집고 도망치는 액션 어드벤처 영화 속 도망자가 된 느낌이 들어 버린 것. 이곳 사람들에게는 그저 평온한 일상이었을 뿐일 그 거리를 소심한 여행객은 이렇게 다른 눈으로 보게 된다.

포카라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카트만두. 하루 전날 비가 와서 그런지 바닥이 축축했다. 이곳 전체가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비 온 뒤 카트만두는 수돗물 색깔부터가 다르다. 물을 틀었더니 누리끼리한 황토물이 수도꼭지를 타고 흐른다. 제법 괜찮은 호텔에서도 이런 정도인 걸 보면 이 도시의 상수도는 땅속 여기저기서 지하수와 아무렇지도 않게 섞이는 모양이다.

카트만두를 떠나기 전날 박타푸르에 들렀다. 이곳 역시 구르카 왕국에 멸망당하기 전까지 존재했던 고대왕국의 또 다른 터전이기도 하다. 시내에 있는 더르바르 광장보다 조금 더 예스러운 정취가 잘 남아 있고, 조금 덜 붐비는 터라 카트만두의 혼돈에 살짝 지친 여행자라면 이곳에서 한나절이나 하루쯤 쉬어 가는 것도 좋은 선택일 것 같다. 광장을 뒤돌아 나가다 보면 제법 넓은 공터를 만나게 된다. 사람들이 도자기 광장이라는 이름을 붙여 놓은 이 공터에는 수천 개의 도자기가 햇빛을 받으며 말라 가고 있었다. 도자기 사이로 지나다니며 도자기를 돌려놓는 이들의 모습도 보이고, 다른 쪽에서는 적당히 마른 도자기에 유약을 바르는 이들의 모습도 보인다. 주변 건물들로 시선을 돌려 보니 못 보고 지나칠 뻔했던 것들이 보인다. 좁은 작업장 안에서 부지런히 물레를 돌려 도자기를 빚는 중년의 도공부터 골목 한쪽에 자리를 잡고 황토를 물에 개어 가며 도자기 흙을 만들어 내는 마르고 질긴 근육만 남은 팔을 쉬지 않고 돌리는 늙은 도공까지. 어쩌면 이들이야말로 고대왕국들보다 더 오랜 시간 이곳을 지켜왔을 이 광장의 진짜 주인일 지도 모른다.

잠시도 경적을 멈추지 않는 릭샤와 오토바이가 햇빛 아래 느긋하게 말라 가는 도자기와 함께 살아가는 곳이 바로 카트만두이고, 여행자들은 그 사이 어디쯤을 맥락 없이 떠돌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여행작가 (ecocjh@naver.com)

최재훈 labortoday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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