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배달노동자가 맥도날드 매장에서 배달 물건을 가지고 나서고 있다. 정기훈 기자
“월·화·수·목 저녁근무를 신청하면 이 중 하루나 이틀은 스케줄을 강제로 줄이는 경우가 생겨요. 동의를 안 하면 다음주 근무를 전부 못하게 돼요. 내가 원하는 시간이 아니라고 해도 웬만하면 동의할 수밖에 없죠.”

맥도날드 라이더로 5년 넘게 일한 김석구(가명)씨가 불만을 토로했다. 최근 사측은 주 4일 오후근무를 하던 김씨에게 3월부터는 오전근무를 하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원래 저녁근무를 하기로 하고 들어왔던 사람한테 오전에 일하게 될 수도 있다고 하는 게 말이 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씨는 그나마 나은 사정에 속한다. 장기근속자로 할 말은 할 수 있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맥도날드 노동자는 취업규칙과 근로계약서에 따라 짜인 '고무줄 노동시간'에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맥도날드 취업규칙에는 노동자에게 동의를 얻지 않고도 소정근로시간과 근무일 변경을 통보할 수 있도록 명시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16일 <매일노동뉴스>가 정의당 비정규 노동상담 창구 비상구를 통해 올해 1월 개정된 맥도날드 취업규칙을 입수해 살펴봤다.

취업규칙에 근무일·근무시간 통보로 조정 가능

맥도날드 취업규칙 월급제(37조)·시급제(32조) 조항에는 “회사는 업무상 필요에 따라 직원의 근무일, 근무시간, 시업 및 종업시간 및 휴게시간을 변경하거나 교대근무를 명할 수 있으며, 이 경우 회사는 가능한 사전에 직원에게 통보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크루(매장관리·고객응대·조리)와 라이더 근로계약서에도 “근로형태의 특성상 및 당사자 간의 사정에 따라 협의를 통해 소정근로시간이 변경될 수 있으며, 변경된 소정근로시간은 매주 성실한 협의과정을 거쳐 새롭게 작성하는 ‘근무스케줄’에 기재된 근무시간에 따릅니다”는 문구가 있다. 직원의 동의를 받지 않고, 사측의 통보만으로 근무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비상구 관계자는 “노사가 근로계약을 체결할 경우 소정근로시간을 정하도록 한 것은 노동자가 노동시간을 사전에 예측하도록 해 일상생활과 조화를 꾀하기 위함”이라며 “개별적인 노동조건 변경은 사용자가 노동자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맥도날드 취업규칙은 근로기준법과 고용노동부 지침에 어긋난다. 근로기준법 17조1항에는 근로계약 체결 후에 임금이나 소정근로시간, 휴일, 연차유급휴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타 근로조건을 변경하는 경우 근로계약서에 변경된 내용을 명시해야 한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겨 있다. 어기면 벌금형을 부과한다. 노동부 ‘단시간근로자의 초과근로 관련 지침’도 “근로계약을 체결한 후에 사용자와 근로자는 명시적이고 확정적인 합의에 따라 근로시간 등 근로조건을 변경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노동조건을 변경하려면 ‘협의’가 아닌 ‘합의’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사측이 통보나 협의로 근로조건을 변경할 수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최강연 공인노무사(비상구)는 “맥도날드 근로계약서는 소정근로시간 변경을 노동자와 사용자 간 ‘협의’할 수 있다고 했지만, 근로기준법과 고용노동부 지침은 노동자와 사용자의 ‘합의’를 변경 요건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맥도날드 조정권 행사, 노동자에게 퇴사압력”

맥도날드의 근무일·근무시간 조정권한은 때로 어떤 노동자에는 퇴사를 압력하는 수단으로 쓰인다. 김석구씨는 “(노동자는) 원하는 요일·시간 협의를 맥도날드에서 일하는 장점으로 알고 들어오지만 그러기는 쉽지 않다”며 “직원이 근무시간을 맞춰 주지 않는다고 매니저에게 문제를 제기하면 매니저가 소정근로시간을 줄이거나, 노동자가 맞출 수 없는 요일에 근무하도록 강요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그 뒤에는 ‘합의’를 가장한 스케줄 신청 시스템이 있다. 노동자는 맥도날드 직원 전용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자신이 원하는 근무 스케줄을 입력한다. 해당 매장은 영업상황을 고려해 노동자가 입력한 스케줄을 조정해 역제안한다. 매장이 제안한 스케줄을 확인하고, 노동자가 ‘확정’ 버튼을 누르면 스케줄이 정해진다. 문제는 신청한 근무시간과 달리 배정되더라도 거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노동자가 역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근무 스케줄에 동의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돼 근무를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신정웅 알바노조 위원장은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알바노동자는 매니저에게 의사표현을 하기 어렵다”며 “알바노동자가 확정 버튼을 누르도록 한 것을 동의 과정으로 볼 수 있지만, 시스템상 거부권은 없다”고 비판했다.

최강연 노무사는 “맥도날드는 위법하거나 부당한 취업규칙을 수정하고 노동부는 맥도날드와 같은 청년 알바노동자 다수고용 사업장을 중심으로 근로감독을 강화해 기초고용질서를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맥도날드 관계자는 “현재 레스토랑 직원들(시급제)의 동의하에 근무일 및 근로시간을 정하고 있다”며 “그에 대한 변경이 필요한 경우 또한 같다”고 설명했다. 또 “직원의 동의 없이 회사가 일방적으로 근무일 또는 근로시간을 정하거나 변경하는 경우는 없으나, 취업규칙 또는 근로계약서상 오해의 소지가 있는 문구가 있다면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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