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듀폰코리아 울산노조가 지난 14일 오전 서울 테헤란로에 위치한 듀폰코리아 본사 앞에서 상경투쟁 집회를 열고 ‘불공정한 성과평가 제도 폐지’를 촉구했다. 한국노총
인조대리석을 만드는 듀폰코리아 울산공장 노동자의 파업이 17일로 63일째에 접어들며 장기화하고 있다. 2018년 노조를 설립한 뒤 2년 가까이 34차례 이상 임금·단체교섭을 했지만 노사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극한대립을 이어 가고 있다. ‘인간존중’을 기업이념으로 삼고 세계인의 존경을 받으며 200년 이상 역사를 가진 기업, 듀폰의 울산공장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진급자 미리 정해 놓고 짜 맞추기 성과평가?

듀폰코리아는 생산직 노동자에게 성과평가(IPP)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매년 개인별 목표를 제출하고 평가를 매겨 3개 등급으로 나눈다. 상대평가로 고평가자(20%), 중간평가자(60%), 저평가자(20%)로 배분한다. 등급에 따라 1~3호봉 차이가 발생하며, 성과금도 달라진다. 또 3년간의 평가점수를 종합해 진급 여부를 결정한다. 호봉제지만 성과평가 결과에 따라 임금이 오르락내리락하는 형태다.

문제는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일하는 생산직 노동자의 성과를 공정하게 평가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정철웅 듀폰코리아 울산노조 위원장은 “회사 규정에 따른 시상 유무나 영어능력, 직위 경험이 점수로 환산되기도 하지만 차지하는 비중은 적다”며 “매년 개인별 목표를 작성해서 제출하면 그것을 가지고 평가를 하는데 평가기준도 모르는 깜깜이로 진행된다”고 말했다. 개인별 목표는 주로 ‘회사 생산성 향상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하겠다’ ‘작업혁신을 위해 어떤 계획을 세우겠다’는 내용과 함께 ‘자기계발을 위한 계획’을 담아야 한다. 정 위원장은 “계량화된 평가기준이 없고 주관적으로 이뤄지다 보니 평가자인 중간관리자의 친분에 따라 평가등급이 정해지고 진급이 결정되는 비정상적인 구조”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듀폰코리아 울산공장은 진급자를 사전에 정해 놓고 평가를 했다는 ‘약정평가’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5명의 노동자에게 1년에 한 번씩 돌아가며 높은 평가등급을 주고 진급을 약정한 것이다. 노조는 미국 듀폰 본사에 이런 사실을 알렸고, 지난해 9월 글로벌 듀폰 조사관이 나와 경위를 따지기도 했다.

노조는 “중간관리자 친분에 좌우되는 불공정한 성과평가 제도가 직장갑질 형태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한다. 회사 회식 때 관리자가 재떨이에 술을 따라 먹으라고 강요하거나 업무시간 중 관리자가 잔디밭에 잡초를 뽑으라고 시키는 등 갑질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관리자가 부당한 요구를 해도 평가점수를 잘 받기 위해서는 숨죽이고 있을 수밖에 없는 문화가 직장갑질을 부추기고 있다는 주장이 뒤따랐다.

‘성과평가 제도는 인사경영권’만 외치는 사측

노조는 성과평가 제도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개선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사측이 철저히 비공개에 부치고 있는 급여테이블과 성과평가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평가기준을 공정하게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측은 평가제도는 인사경영권에 해당한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파업이 장기화하는 배경이다.

생산직을 대상으로 한 성과평가제도는 2016년 박근혜 정부 당시 성과연봉제 방침 영향으로 일부 기업에서 도입했지만 확산되지는 못했다. 개인별 성과를 평가하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이문호 워크인연구소 소장은 “사무직이나 관리직과 달리 생산직의 경우 개인별 성과를 측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상당수 기업들은 부서별 혹은 공정별로 생산목표를 정하고 성과를 평가하는 제도를 운영 중”이라며 “무리한 성과평가 제도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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