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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옥이씨는 왜 한국지엠 부평1공장에 손자보를 붙였나

기사승인 2020.02.19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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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레일블레이저 생산공장에 랩가드 공정 없어지자 강제 전환배치

 

   
▲ 금속노조 한국지엠부평비정규직지회

“정말 아파서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회사가 시키는 대로 했는데 제 몸이 못 버팁니다. 다른 사람들 피해 주는 것 같아 미안합니다. 근데 손가락과 손목, 허리가 너무 아픕니다. 할 수 없는 걸 시키면서 못 할 거면 집에 가랍니다. 면담하자면서 40명 작업자 사인 싹 다 받아 오면 원하는 것 해 주겠답니다. 바라는 것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것 시켜 주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랩가드 없어진 거 제 잘못도 아니고 회사가 배려해 줄 수 있을 텐데 그렇게 어려운 부탁입니까?”

지난 13일 한국지엠 부평1공장 범퍼서브장에 볼펜으로 글씨를 눌러쓴 종이 한 장이 붙었다. 자신을 ‘박옥이’라고 소개한 이 노동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시켜 달라”고 호소했다. 박옥이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랩가드 공정 없어지자 여성노동자 범퍼장에 배치

“저는 그냥 계속 일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수화기 건너편에선 나지막한 한숨 소리가 들렸다. 지난 17일 <매일노동뉴스>와 통화에서 박옥이(55)씨는 “아프고 힘들다”면서도 “일을 하고 싶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국지엠 부평공장 2차 하청업체인 아진테크 노동자인 박씨는 2014년 11월5일 입사부터 최근까지 만 5년째 부평1공장에서 생산되는 차량에 랩가드(차량 손상을 막기 위한 필름)를 부착하는 일을 했다. 필름을 잘라 차량에 붙여야 하는 작업이라 빠른 손놀림과 꼼꼼함을 미덕으로 쳤다. 박씨를 비롯해 여성노동자 4명이 해당 공정을 도맡아 했다.

“제가 손이 좀 빠르거든요. 일하는 요령은 있어서 잘한다는 말도 듣고 그랬어요.”

“꼼꼼하다”는 칭찬을 들었던 박씨는 요즘 본의 아니게 ‘민폐’에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다. 남성노동자도 힘들어 하는 범퍼장(범퍼조립 라인)에 배치되면서부터다.

한국지엠이 신차 트레일블레이저에 랩가드를 붙이지 않기로 결정하자, 지난달 말 아진테크는 박씨 등 4명을 범퍼장으로 보냈다. 범퍼자재를 조립한 뒤 배선이나 주행등·센서·에어댐 같은 각종 부품을 범퍼에 부착하는 일이었다.

3명은 “나가겠다”고 했지만, 당장 생계가 급했던 박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부터 박씨의 고난이 시작됐다. 프런트 라인(앞 범퍼)에 배치된 박씨는 작업 하루 만에 앓아누웠다. 154센티미터 작은 체구의 박씨로서는 15~20킬로그램 정도 되는 범퍼를 들어 작업대로 옮기고 그 위에서 부품을 조립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손가락과 손목이 퉁퉁 붓고 허리와 등은 파스로 도배됐다. 작은 키에 까치발을 들어서 일하느라 발목과 무릎관절에도 무리가 갔다.

회사는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고 하면서도 공정을 옮겨 주지는 않았다. 박씨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시켜 달라”고 요구했지만, 회사는 원하는 공정이 있으면 같이 일하는 작업자 40명에게 직접 동의서명을 받아 오라고 했다. 사실상 일을 그만두라는 암묵적인 압박이나 다름없었다.

“회사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도 다른 일은 못 준다고 하니 전 방법이 없는 거예요. 제가 일을 안 하고 싶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몸이 완전히 망가져 버렸는데 어떡해요. 그냥 제풀에 지쳐 나가라고 하는 것 같아요.”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공장을 나간다는 건 박씨에겐 두려운 일이다. 다른 곳에 취직하기도 어렵거니와 다시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직업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를 악물며 20여일을 버틴 박씨는 지난 12일 금속노조 한국지엠부평비정규직지회 문을 두드렸다. 이튿날 생전 처음으로 A4용지에 글을 써서 작업장에 붙였다.

“작업자 능력에 맞게 업무 배치해야”

지회는 “직장내 괴롭힘에 해당한다”는 입장이다. 업무 능력에 맞지 않은 공정에 박씨를 전환배치한 뒤, 본인 스스로 회사를 그만두게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회 관계자는 “회사 사정에 의해 공정이 없어졌다면, 작업자의 능력에 맞게 업무 배치를 해야 할 책임이 회사에 있다”며 “회사는 (박옥이씨에게) 맡길 공정이 없다고 하지만, 검사 공정에 인력충원을 하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과거 2명이 하던 검사 공정을 1명으로 줄였는데, 박씨를 이 공정에 추가 배치하면 품질 향상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회사가 그런 노력을 해보지도 않고 무조건 내보내려고 하는 것은 직장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지회는 19일 오후 노사교섭에서 박씨 문제를 제기하고, 시정되지 않을 경우 현장투쟁을 한다는 방침이다.

배혜정 bhj@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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