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아버지를 지키려고 나와 있습니다. 사인이 이렇게 명확한데 부검이라니요. 납득할 수 없습니다.”

지난 22일 현대중공업 울산공장 LNG선 탱크 내 트러스(작업용 발판 구조물) 작업장에서 일하다 추락사한 물량팀 노동자 고 김태균씨의 가족들이 울산대병원 장례식장 안치실 앞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불의의 사고로 숨진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싶어도, 검찰이 “명확한 사인을 확인해야 한다”며 부검영장 집행을 벼르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이 논란 끝에 “물리적으로 부검을 진행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내놓기는 했지만 “이해할 수 없는 행태”라는 비판이 높다.

아들 김민수씨는 25일 <매일노동뉴스>와의 통화에서 “회사가 안전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추락사한 게 명확한데 왜 망자를 두 번 죽이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원청 입김이 작용하지 않고서야 검찰이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통상적이지 않은’ 검찰의 부검 시도

울산지검이 작업 중 추락해 사망한 현대중공업 물량팀 노동자의 부검을 집행하려고 하면서 유족·노동계와 마찰을 빚고 있다. 울산지검은 지난 23일 법원에서 고인에 대한 부검영장을 발부받았다. 검찰과 경찰은 24일과 25일 오전 두 차례에 걸쳐 고인이 안치된 울산대병원에서 시신 인도를 시도했지만 유족과 금속노조에 막혔다.

유족과 노조는 “추락해 사망했는데 왜 부검이 필요하냐”고 반발하는 반면 검찰은 “(고인이) 술이나 약물복용 가능성이 있다”며 부검을 해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인이 분명한 산업재해사고에, 그것도 유족이 요구하지 않았는데 검찰이 부검을 하겠다고 나서는 경우는 드물다.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박세민 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지금까지 산재사고 경위가 명확한 상황에서 부검이 진행된 것을 본 적이 없다”며 “노동자 개인의 과실이나 건강관리 소홀로 몰아가려는 사업주 주장을 뒷받침해 주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산재 전문가들도 통상적이지 않은 상황으로 봤다. 권동희 공인노무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사인이 분명하지 않거나 유족이 강하게 요구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명백한 외인사에 부검은 하지 않는다”며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그 많은 추락 산재사고를 다 부검하느냐”고 반문했다.

유족 “사망원인 분명한 만큼 부검 원치 않아”

회사 CCTV에 찍힌 추락 당시 영상을 확인한 노조와 유족에 따르면 고인은 트러스 7층 합판 고정작업을 하며 이동하다 고정되지 않은 합판을 밟고 2층 바닥으로 떨어졌다. 고인이 후송된 울산대병원이 작성한 사망진단서에는 ‘추락에 의한 외인사’로 적시돼 있다. 사고 현장을 조사한 울산 동부경찰서도 “사인이 명백해 부검이 필요 없다”는 의견을 검찰에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담당 검사는 그러나 유족에게 “사용자측에서 피해자가 원래 다리가 안 좋았다거나 어지럼증이 있었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사례가 있기 때문에 이를 반박할 증거를 수집해야 한다”며 “유족을 위해서 (부검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들 김씨는 “검사에게 ‘유족이 불리해지더라도 상관없으니 부검영장 집행을 철회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영장이 철회된 사례는 없다며 완강하게 거부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족은 이날 오후 울산지검에 부검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유족은 의견서를 통해 “고인의 사고 및 사망은 회사가 마땅히 해야 할 안전보호 조치를 하지 않아 발생한 것이 명명백백하다”며 “아무런 객관적 사정과 근거도 없이 고인이 음주를 했는지, 약을 먹었는지, 평소 건강 문제 등을 규명하기 위해 부검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고인에 대한 모독이자 유족에게 크나큰 상처”라고 비판했다.

한편 논란이 커지자 울산지검은 노조 법률원에 “물리적으로 부검을 강행하지는 않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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