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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 비정규직들이 홀로 억울하지 않도록

기사승인 2020.02.27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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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페연대 상임활동가

   
▲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페연대 상임활동가

CJB청주방송 이재학 PD는 “억울해 미치겠다”고 유서에 썼다. 이재학 PD는 청주방송에서만 14년간 일했다. 회사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자며 일하던 그를, 동료들은 ‘라꾸라꾸’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한다. 그는 임금을 올려 달라고 말했다는 이유로 청주방송에서 해고됐다. 그의 임금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쳤다. 부당해고 소송에서 당연히 이길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프리랜서’는 노동자가 아니므로 부당해고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판결이 나왔다. 그가 청주방송의 지휘·명령을 받으며 일했다는 것을 누구나 아는데, 회사는 부인했고 법원은 회사의 거짓말을 수용했다. 그는 “모두 알고 있지 않을까? 왜 그런데 부정하고 거짓을 말하나”라고 유서에 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방송사 비정규 노동자들이 억울하다고 말한다. 임금을 상품권으로 받은 것을 제보했다가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도 억울하고, 여성 아나운서만 정규직이 아닌 프리랜서로 채용하는 방송사에 문제제기를 하는 아나운서도 억울하고, 회사 마음대로 변형한 표준계약서에 문제를 제기했다가 해고당한 작가들도 억울하다. 20시간 넘는 촬영으로 몸과 마음을 다친 드라마 스태프도 억울하다. 단지 명칭만 프리랜서일 뿐, 이들이 방송사에서 시키는 대로 일해야 먹고살 수 있는 노동자임을 모두 알고 있다. 그런데 노동자도 아니고 해고도 아니고 산재도 아니라니 노동자들은 다만 억울할 뿐이다.

프리랜서는 자유로운 노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프리랜서는 권리를 갖지 못한 자의 다른 이름이다. 노동자가 프리랜서가 될 때 진정 자유로운 것은 노동자가 아니라 방송사다. 방송사들은 4대 보험을 들어 줘야 하는 의무에서 자유로워지고, 노동자를 함부로 해고해서는 안 된다거나 최저임금 이상을 줘야 한다는 근로기준법·최저임금법의 제한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노동자를 24시간 동안 일을 시켜도 제한을 받지 않는다. 방송사가 자유로워진 만큼 노동자들은 권리에서 멀어졌다. 방송사와 동등한 계약관계가 될 수 없었던 노동자들은 ‘노동자’라는 이름조차 얻지 못했다.

이렇게 프리랜서가 넘치도록 만든 것은 방송사지만, 이런 현실에 눈감거나, 부추긴 것은 정부다. 고용노동부는 ‘진짜 노동자’ 감별사를 자처하며 권리를 선별적으로 부여해 왔다. 문화체육관광부나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사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표준계약서 등 생색내기 정책만 내놓고 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법에 의존하게 된다. 이재학 PD도 그래서 부당해고 소송을 시작했다. 하지만 법원조차도 노동자들이 일하는 현실을 들여다보지 않고, 형식적인 계약관계만 판단해 법의 이름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박탈했다.

여러 법률가, 방송계 활동가들과 함께 ‘방송갑질119’라는 온라인 노동상담소를 운영한 바 있다. 그 속에서 들리는 방송계 노동자들의 억울함은 한계에 달한 듯했다. 성폭력, 부당한 해고, 저임금과 임금체불, 상품권 페이, 상상할 수 없는 장시간 노동, 산재로 인정 못 받는 위험, 온갖 종류의 갑질이 성토됐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온라인을 넘어 현장에서 목소리 내기를 두려워했다. 방송사와 싸우면 이길 수 없다는 패배감도 많았다. 그렇지만 이 현실을 바꾸려는 이들이 하나둘씩 생겨났다. 작가와 방송 스태프들이 노조를 만들었고, 독립 PD들도 노동권 찾기에 나섰다.

이재학 PD도 그렇게 용기를 낸 사람 중 하나였다. 이재학 PD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방송사 프리랜서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겠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안타깝게 스러졌다. 이렇게 용기를 낸 이들이 무너지면 방송계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 그래서 그의 죽음을 그대로 두지 않기 위해서 방송계 노동자들과 단체들, 그리고 충북지역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유가족이 뭉쳐서 ‘CJB청주방송 이재학 PD 사망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명예회복,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투쟁에 나섰다. 이재학 PD의 억울함만이 아니라 지금도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 방송사 비정규 노동자들의 권리 찾기를 위해서다.

누군가를 희생시켜 만든 방송이 공공성을 가질 수는 없다. 이 왜곡된 고용구조를 바꿔야 방송사에도 미래가 있다. 그런데 방송사의 왜곡된 고용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은 대책위만으로는 안 된다. 방송사의 변화는 방송사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당사자의 힘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재학 PD가 용기를 낸 것처럼 더 많은 방송사 비정규 노동자들이 뭉치면 좋겠다. 프리랜서라는 허울을 벗어던지고, 억울한 이들의 공동행동이 이뤄지면 좋겠다. 방송사 비정규직의 노동권을 되찾고 방송을 만드는 주체로 인정되도록, 방송사 비정규직 모두가 목소리를 내면 좋겠다. 더 이상 모두가 홀로 억울하지 않도록.

김혜진 labortoday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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