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와 노회찬재단이 2020년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노동자에게 장미꽃을’이라는 주제로 공동기획을 한다. 사회적으로 호명받지 못한 채 ‘투명인간’으로 머물러 있는 여성노동자들이 ‘이름’과 ‘색깔’을 찾자는 취지다. 고 노회찬 의원은 14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국회 여성노동자에게 장미꽃을 전달했다. 지난해에는 노회찬재단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세계여성의 날 기념주간에 더 많은 여성노동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갖고 다양한 색깔로 피어날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공동기획은 4차례 연속기고와 한 차례 좌담회로 9일까지 이어진다.<편집자>
 

▲ 권수정 서울시의원

“여성이 단두대에도 오를 수 있다면 의정 단상에도 오를 수 있다.”

프랑스혁명 이후 남성에게만 참정권을 주자 여성 참정권을 요구하며 올랭프 드 구즈가 처형 전 남긴 말이다. 1893년 전 세계 최초로 뉴질랜드에서 여성에게 참정권을 허용한 이래 10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오늘날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고 이야기한다. 한발 나아가 여성이 더 대접받는 세상이 됐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과연 그런가?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성별 임금격차 1위 국가라는 오명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성 평균임금은 남성 평균임금의 64%에 불과하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매일 오후 3시부터 무급노동을 하는 셈이다. 여성노동자 중 74%가 채용차별, 성차별을 경험하고 있으며 학교·집·직장과 거리 어디에서도 안전하지 못하다. 이 모든 것들을 조율하고 법과 제도로 구성해야 하는 정치 영역에서 여성의 목소리는 여전히 소수다. 역대 최고라는 20대 국회 여성의원 비율은 17%(51명)다. 16대 국회 때 불과 16명(5.9%)이던 여성의원 비율이 2004년 여성할당제 도입으로 그나마 조금씩 늘어났지만 이마저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남성 중심의 정치문화에서는 결국 당의 상황과 힘의 논리로 많은 일을 결정하기 마련이다. 여성 안전 문제를 다룬 각종 법안들, 버닝썬 등 권력형 성폭력 사건, 불법촬영이나 실생활에서 실질적으로 맞닥뜨리는 위협과 차별 문제는 사소한 문제로 치부되며 뒷전으로 밀려났다. 소수의 여성의원으로서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에는 힘에 부치는 현실이라 더 많은 여성 정치인이 필요하다.

2012년 3월8일 항공승무 노동자들의 바지 유니폼 도입 요구와 외모·복장지침 폐지를 외치며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사소한 문제로 회사 이미지를 실추시킨다는 비난이 있었다. 자율협약 이행 과정에서 일부 노조간부들은 다른 현안이 더 중요하다고 중단을 요구했다. 노동조합위원장으로 2년 넘게 싸우며 국가인권위원회 차별 결정과 권고를 끌어내기까지 지독한 인내의 시간을 보냈다. 누군가에겐 사소해 보이는 문제가 여성노동자인 나에게는 삶을 구성하는 인권과 안전, 노동권의 문제였다. 그때 확실하게 알았다. 결정할 수 있는 자리에 어떤 사명감이 있는 사람이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결과를 말이다.

지난 대선에서도, 지방선거에서도 여성 투표율은 남성보다 높았다. 그런데도 여성들의 삶에서 매우 소중하고 중요한 문제를 지적하고 해결할 수 있는 정치인은 여전히 부족하다. 각종 차별과 불평등 지표를 개선하고, 모든 폭력에서 벗어나 안전하게 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실질적인 법과 제도를 만들라고 평범함 삶을 사는 우리 여성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모든 여성이 함께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변화의 주인공으로 참여하는 정치, 상대적 약자를 우선 배려하는 정치, 차별 없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는, 그런 사명감이 있는 사람들의 정치 참여만큼 소중한 것이 없다.

이제 우리의 일상을 대변할 사람들을 제대로 만들자. 선택하자. 아니, 그 자리에 적극적으로 들어가자.

17~19대 국회 의정활동에서 호주제 폐지와 성 평등 사회, 사회적 정의 실현을 위한 정책활동을 실천했고 20대 총선 때도 스토킹 방지법 제정, 직장내 성희롱 처벌 강화와 최저임금 현실화, 학교급식 의무지원법 제정, ‘위안부’ 한일합의 무효, 공공의료원 지원을 약속하며 여성들의 지지를 받았던 고 노회찬 의원. 성별 임금격차 해소, 여성 대표성 확대 등 정치적·사회적·일상적으로 모든 차별을 금지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했던 그가 112주년 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이해 우리에게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라 감히 상상한다.

“당신이 얼마나 훌륭한지 내가 말해 줄게요. 그대가 바로 정치의 주인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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