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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노동자에게 장미꽃을 ④] 출산력 통제해 여성을 지배하려던 시대는 끝났다

기사승인 2020.03.05  08: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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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정 변호사(노회찬재단 이사)

매일노동뉴스와 노회찬재단이 2020년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노동자에게 장미꽃을’이라는 주제로 공동기획을 한다. 사회적으로 호명받지 못한 채 ‘투명인간’으로 머물러 있는 여성노동자들이 ‘이름’과 ‘색깔’을 찾자는 취지다. 고 노회찬 의원은 14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국회 여성노동자에게 장미꽃을 전달했다. 지난해에는 노회찬재단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세계여성의 날 기념주간에 더 많은 여성노동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갖고 다양한 색깔로 피어날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공동기획은 4차례 연속기고와 한 차례 좌담회로 9일까지 이어진다.<편집자>

 

▲ 김수정 변호사(노회찬재단 이사)

1908년 3월8일 생존권과 참정권을 주장하며 인간다운 삶을 쟁취하고자 싸운 여성들이 있었다. 그리고 2019년 4월11일 대한민국 여성들은 자신들의 삶을 옥죄던 잔혹하고 굴욕적인 족쇄 하나를 벗어던졌다.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하면서 66년 만에 낙태죄가 폐지된 것이다. 나는 낙태죄 위헌소송 청구인의 대리인으로서 낙태죄의 역사적 퇴장을 지켜봤다. 헌법재판소는 태아의 생명과 임신한 여성의 기본권을 대결구도로만 보던 시각을 넘어서서 “임신·출산·육아는 여성의 삶에 근본적이고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문제이므로, 임신한 여성이 일정한 범위 내에서 자신의 몸을 임신상태로 유지해 출산할 것인지 여부에 대해 결정하는 것은 자신의 생활영역을 자율적으로 형성해 나가는 것에 관한 것으로서 인간의 존엄성과 자율성에 터 잡고 있는 것이다. (중략)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임신을 유지 또는 종결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스스로 선택한 인생관·사회관을 바탕으로 자신이 처한 신체적·심리적·사회적·경제적 상황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한 결과를 반영하는 전인적(全人的) 결정”이라고 선언했다. 여성들이 그토록 오랜 세월 외쳤던 바로 그 슬로건이다.

낙태죄 존치를 주장해 온 사람들은 여성들은 성행위를 즐길 뿐 책임지려 하지 않는 문란하고 이기적인 존재로 취급했다. 태아의 생명권을 앞세웠으나, 국가는 실은 태아의 생명이나 임부의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구조절을 위해 낙태를 조절해 왔고 오직 여성의 사정, 여성의 결정에 의한 낙태만을 금지했다. 예상하지 못한 임신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출산을 강요하고, 임신과 출산 이후의 모든 책임은 여성이 감당하도록 한 것이다.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교육기회를 박탈당하고, 노동시장에서 해고 등의 차별과 배제를 경험하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 여성의 보편적 일상이라 할 정도였다. 여성에게 과도한 양육책임이 전가되고 출산한 미혼모는 자녀를 입양 보내거나, 온갖 차별을 감내하며 자녀를 양육해야 하는 현실이었다. 불가피하게 낙태를 한 경우에는 여성만이 형사처벌의 위험을 감수하고, 불법의료에 노출돼 의료사고로 사망하기도 하고,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이처럼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온갖 어려움은 오롯이 여성이 짊어지게 하면서 태어나지 않은 생명의 고귀함만을 앞세우던 위선의 시대는 끝났다. 여성의 출산력을 통제해 여성을 지배하려던 시대가 끝난 것이다. 굴욕적인 시대를 끝낸 우리에게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갈 숙제가 아직 남아 있다. 헌법재판소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하면서 2020년 말까지 새로운 법안을 마련할 것을 주문했는데, 새로 만들어질 법에 대한 말들이 많다. 여전히 태아의 생명권만을 내세우며 여성들이 무분별한 낙태를 할 것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의심과 불안으로 형사처벌로써 여성의 임신과 출산을 통제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더 이상 그 무엇으로도 역사와 시대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다. 이미 세계의 낙태법은 형법이 아닌 여성의 선택과 권리에 기반한 법률, 정책 프로그램으로 규율되고 있다. 여성이 스스로 임신과 출산을 결정할 권리는 이미 국가가 허용하는 것을 넘어서서 국가에 이행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로 인정되고 있는 것이다. 유엔 인권규범의 최고 권위기관인 국제인권조약기구(International Human rights Treaty Bodies)를 포함한 국제인권기구들은 합법적 임신중단에 대한 접근성을 보장하는 것을 여성에 대한 차별 철폐를 위한 국가 의무의 일부라고 선언했다. 특히 1995년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된 4차 세계여성회의는 여성의 재생산적 건강은 만족스럽고 안전한 성생활, 재생산 능력 그리고 그 시기와 방법을 결정할 자유를 포함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여성의 낙태 결정은 국가가 마지못해 임신 몇 주 이내, 혹은 일정한 사유하에서만 합법적으로 허용해 주는 것이 아닌 여성이 국가에 적극적으로 재생산 건강과 선택권·자유권 보장을 요구하는 권리로서 인정돼야 한다는 선언이었다. 따라서 낙태죄 폐지 이후의 새로운 입법은 낙태에 대한 비범죄화를 당연한 전제로 여성의 재생산권을 적극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사회보장제도 도입까지로 나아가는 미래지향적인 것이 돼야 할 것이다. 이것이 112년 전 오늘 빵과 장미를 달라고 요구하던 여성들의 살아 숨 쉬는 현재적 요구다.

김수정 labortoday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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