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플러스 한 매장에 수백 킬로그램의 물품이 담긴 화물운반대가 놓여 있다. 마트노동자는 화물운반대를 운반 기구를 이용해 나르며 물건을 배치·진열한다. <홈플러스지부>
“인력시장에 팔려 다니는 느낌이 들어요. 명시된 스케줄이 있어도 무시하고 그냥 보내는 경우도 많았어요. 문제제기하면 바빠서 그런 걸 어떡하냐는 식이고요.”

함금남(54)씨가 일하던 경기도 시흥 홈플러스 시화점은 2017년 스페셜 매장으로 바뀌었다. 창고형 매장과 대형마트가 결합한 형태여서 스페셜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후 계산, 영업스톡(하역·매입·반출), 농산물, 가공식품, 생활문화(장난감·책), 피킹(온라인 주문 상품을 장바구니에 담는 업무) 등으로 나뉘어 운영되던 6개 부서가 하나로 묶였다. ‘통합부서’라는 ‘공룡부서’의 탄생이었다. 10년 넘게 계산업무를 맡아 일했던 함씨는 수백 킬로그램의 물품이 담긴 화물운반대(팰릿)를 끌고 매장을 순회하며 정해진 위치에 내리고 진열해야 했다.

스케줄에 따라 영업·계산업무까지 하루에 세 번씩 업무가 바뀌었다. 교육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는 “10년 넘게 계산대 업무를 보다 다른 업무를 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데 인수인계해 주는 사람도 마땅치 않았다”며 “직원들에게 나눠 주는 매뉴얼도 없으니, 동료한테 물어물어 배우거나 잘 모르면 그냥 까대기(박스에서 물건 꺼내고 정리하는 일)와 진열만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8일 마트산업노조 홈플러스지부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2017년 스페셜 매장에만 운영했던 통합부서를 지난달 27일 매출 상위 25개 매장을 제외한 전 매장으로 확대했다. 지부는 “충분한 준비 없이 이뤄지는 통합부서 운영 탓에 현장 노동자 노동강도가 높아지고 있다”며 “인수인계 절차를 강화하고 업무 매뉴얼을 마련하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회사는 이에 응하지 않고 있다.

“계산업무 한 시간 전부터 속이 벌렁거려요”

홈플러스 합정점에서 일하는 권혜선씨. 지부 수석부위원장이기도 한 그는 신선가공 분야에서 6년간 일한 베테랑이다. 그런데 최근 여기에 더해 계산대 업무를 새로 맡게 됐다. 피로감은 증폭했다. 권씨는 “한 달 정도 계산대 업무를 맡았지만 할인카드, 포인트 적립 등 여간 복잡하지 않다”며 “하루에 한 번씩은 동료에게 SOS를 친다”고 귀띔했다. 그는 “뒤에 손님이 기다리면 내가 잘못해서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벌렁거린다”며 “어떤 분들은 계산대 들어가기 한 시간 전부터 가슴이 벌렁거린다고 한다”고 증언했다.

김영준 지부 교육선전국장은 “제대로 된 매뉴얼이 없으니 점장도 어떻게 통합부서를 운영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황”이라며 “점장의 스타일에 따라 통합부서가 지점별로 제각각 운영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30분 단위로 짜인 근무표에는 원래 농산·가공·POS(계산)·피킹 등 구체적 내용이 적혀 있어야 하지만 한 지점의 경우 관리·오전 물류 정도로 적혀 운영되는 지점도 있다. 구체적 업무가 근무표에 적시되지 않으면, 직원들의 업무 집중도도 떨어지고 제대로 쉬지도 못한다는 게 노조 주장이다.

노조는 현장 노동자의 의견을 반영해 지난해 12월26일 △통합운영과 부서업무에 대한 명확한 업무 매뉴얼 제작 △통합운영 교육은 SM(섹션 매니저)직급 이상, 업무 인수인계는 책임선임이 담당 △부서 이동시 업무교육과 인수인계를 위한 15분 미팅시간 보장 등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이후 2월6일 통합운영에 관한 노사 간담회를 했지만 회사는 “업무 진행에 필요한 사항은 책임급 이상에서 인수인계되도록 현장을 지원하겠다”면서도 나머지 요구는 수용할 수 없다고 맞섰다.

이와 관련해 홈플러스쪽에 입장을 듣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연락을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노동강도 완화하려면 매뉴얼 마련해야”

통합부서 운영 확대가 곧 인력 구조조정의 신호라는 주장도 나온다.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은 “회사가 신규채용을 하지 않고 노동자를 (회사 마음대로) 여기 보냈다 저기 보냈다 하면 노동자는 적은 인력으로 똑같은 일을 해야 하고 그만두는 결정을 하게 된다”며 “구조조정과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노조에 따르면 회사는 매년 전체 직원 중 5%가 정년퇴직을 하지만 신규인력을 충원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마트 내 보안업무를 맡는 협력업체 직원 1천500명과 계약을 해지하기도 했다. 해당 업무는 직영 직원이 대신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에는 마트마다 한두 명씩 근무하던 전자제품 수리업무를 담당하는 협력업체 직원 50명에게도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최철한 지부 정책국장은 “회사는 이 사람이 하든 저 사람이 하든 하면 되니까 노동자의 노동강도가 똑같다고 이야기한다”며 “하지만 인력을 충원하지 않는 데다 제대로 된 교육도 없이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니 효율이 떨어지고 기존 숙련 노동자의 노동강도가 강화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조혜진 변호사(서비스연맹 법률원)는 “마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경우 오랫동안 동일한 업무를 수행해 온 경우가 많아 큰 중량물을 처리하는 등 기존에 맡던 업무가 아니라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며 “회사가 노조와 충분한 논의 과정을 거친 뒤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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