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를 포함한 이주노동자 5명이 최근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변경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법률과 행정고시가 행복추구권·강제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등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헌법소원 법률 대리인단에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금속노조 법률원·민변 노동위원회가 참여했다.
18일 오후 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이주공동행동)을 포함한 58개 이주·인권단체는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사실을 밝혔다. 이주·인권단체는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 자유를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사용자에게 폭행당한 뒤에야 사업장 변경해 줘”
지난 15일 헌법재판소에 제출된 헌법소원심판청구서와 현장 증언을 종합하면 청구인들은 모두 사업장 이동을 제한하는 고용허가제 탓에 사용자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참고 일할 수밖에 없었다.
2018년 비전문취업(E-9) 비자로 한국에 온 몽골 노동자 B씨는 “지게차 면허가 없는데 사장님은 지게차를 운전하라고 1년 정도 강제 노동을 시켰다”며 “사고가 나면 누가 책임을 질거냐고 물었더니, (사장님은) ‘너 일 안 하면 몽골에 보내겠다. 불법체류자를 만들겠다’고 협박했다”고 증언했다. B씨는 결국 사장에게 폭행을 당한 뒤에야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었다. C씨는 사용자가 지불하기로 약속한 임금보다 40만원 적은 임금을 받았지만, 이런 임금체불이 ‘사업장 변경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이주·인권단체는 사업장 이동 제한 조항과 고시가 △인간의 존엄과 가치와 행복추구권(헌법 10조) △평등권(헌법 11조) △신체의 자유와 강제노역을 받지 않을 권리(헌법 12조1항) △근로의 권리(헌법 32조) △직업 선택의 자유(헌법 15조)를 침해한다고 봤다.
헌법소원을 제기한 조항은 외국인고용법 25조(사업 또는 사업장 변경의 허용) 1항과 4항이다. 외국인고용법 25조1항은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허용하는 경우를 △사용자가 정당한 사유로 근로계약기간 중 근로계약을 해지하려고 할 경우 △휴업·폐업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25조4항은 외국인 근로자가 입국한 뒤 3년 동안 사업장 변경이 원칙적으로 3회 초과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후 연장된 1년10개월의 취업활동 기간 동안은 2회를 초과할 수 없다. 법률 대리인단은 고용노동부 고시 ‘외국인근로자의 책임이 아닌 사업장 변경’ 4조(근로조건 위반)·5조(부당한 처우 등)·5조의2(기숙사의 제공 등)도 위헌 소지가 있다고 봤다. 해당 고시는 이주노동자의 책임이 아닌 사유로 사업장 이동이 가능한 사유를 정하고 있다.
“9년 만에 헌법소원 재청구, 헌법재판소 그때와 달라야”
박영아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는 “이주노동자가 사업장 변경을 하려면 노동부 고시로 정한 ‘외국인근로자의 책임이 아닌 사업장 변경 사유’에 자신이 해당함을 스스로 입증하거나, 사용자의 동의를 받고 또 고용센터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며 “(현행 제도는) 자신의 피해를 입증하지 못하거나 고시를 충족하지 못하는 노동자에게 사직을 포기하게 만들고 인권을 침해받는 조건에서 계속 근무하도록 강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우삼열 아산이주노동자센터 소장은 “2011년 헌법재판소가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일부 제한할 수 있다고 판결하면서 고용허가제는 끊임없이 개악됐다”며 “이주노동자의 고통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헌법재판소가 인권의 기준을 이번에는 제대로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헌법재판소는 2011년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횟수를 3회로 제한한 외국인고용법이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제기된 헌법소원을 기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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