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탁 노회찬재단 사무총장

경기도 재난기본소득을 신청했다.

필자가 사는 자치단체에서 지급하는 지원금 10만원까지 합쳐 20만원이다. 없던 돈이 갑자기 생겼다는 기쁨은 크지 않다. 오히려 빠르게 지역사회에서 이 돈을 써야 한다는 의무감이 더 앞선다. 마치 전쟁에서 실탄을 지급받은 소총수의 기분이라 할까.

재난으로 인한 경제적 위기를 재정수단을 통해 극복하려면 화폐의 여러 가지 기능 중에서도 가장 기본인 교환의 매개수단으로서의 기능이 잘 작동해야 한다. 쌓아 두면 의미가 없다. 재난 지원금을 쓰는 것은 시민들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는 일종의 시민적 의무다. 그러나 그것으로 이 위기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장기적인 경기침체 상태에서 코로나19로 인해 더욱 길어진 어둠의 터널은 그 끝이 어디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안전과 빈곤의 위협 속에서 전 세계가 파멸하지 않기 위해서는 한 나라의 대응만으로는 어림없다. 전 세계 지도자들이 아주 신속하게 뜻을 모으고 공동 대처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전염을 막기 위한 장벽은 세우지만, 위기 해결을 위한 소통은 긴급하고도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

1차 세계대전에 가려져 일반인들의 기억에는 자리 잡지 못했지만, 1918년에서 1920년까지 전 세계를 휩쓸었던 스페인독감은 전체 인류의 2%인 4천300만명의 목숨을 앗아 갔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기록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도 무오년 독감으로 전체 인구의 1.8%인 14만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전 세계 인구 대비 2%를, 75억명이 넘는 지금의 인구수로 따져 보면 무려 1억5천만명이 된다. 그때와는 환경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만큼 스페인독감 대유행이 입힌 타격은 심했다. 경제학자의 추정에 따르면 전염의 영향으로 각 나라 국민총생산의 6%가 빠졌는데, 이를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마이너스 8.4%의 영향과 비교해 봐도 엄청난 경제적 충격이다.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것은 스페인독감 유행은 1918년에서 1920년간 세 차례의 파동을 거쳤다는 점이다. 코로나19가 중국과 아시아에서 시작해 유럽을 거쳐 미국을 강타하고 있다. 그리고 전염의 발화지점이 지금은 진화되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이 한 차례의 순환이 끝이 아닐 수 있다. 여름에는 잠잠해지는 듯하다 가을이나 겨울이 되면 다시 유행하는 상황도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지금 사태는 한 국가의 재난시스템 범위를 넘어선다. 방역시스템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전 지구적 가치사슬이라는 이름으로 세계경제는 하나의 사슬로 엮여 있다. 급작스럽게 자급자족 경제체제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계경제는 비교우위에 따른 수출과 수입이라는 경제교역 정도로 엮여 있는 게 아니다. 생산과 소비에 있어 국경은 이미 의미가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는 나라의 지도자가 보여주는 인식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지금의 경제적 위기는 전 지구적 상황이다. 지금으로서는 긴 터널의 끝에 도달할 수 있는 나라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힘을 합치지 않으면 세계적 불안이 올 것이기 때문에 끝에 도달한 나라도 절대 행복할 수 없다. 전 지구적 공조가 이 위기를 풀어 나가기 위한 핵심이다. 의료장비의 원활한 수급과 방역 노하우 정도가 아니라, 지구적 위기를 인식하고 협력적 경제시스템을 구축하는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지난달 26일 주요 20개국(G20) 지도자들의 화상회의가 있었다. 성명에서는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고 무엇이든 하겠다고 했다. 정작 내용은 거대 국가 지도자들이 전염의 책임이나 따지고 있으니 전 지구인들의 불행이다. 지금이라도 국제적 논의의 흐름을 새롭게 잡아야 한다.

한 가지 더 강조하고 싶은 이야기는 신속함이다. 모든 정부가 재정대책을 내놓고 있다. 통화정책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속함이 따르지 않는다면 재정대책 효과를 제대로 볼 수 없다. 소득 하위 70%에 들어가느니 마느니 따지다 허송세월하면 늦어진 기간만큼 효과는 사라진다. 여기에는 신뢰의 문제가 개입하기 때문이다. 이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일치된 자신감이 중요하다. 정부에 신뢰가 없다면 소비진작 요구를 아무리 해도 먹히지 않는다. 재계 역시 어렵더라도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동자들과 함께 간다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면 억누르고 있는 불만이 터져 나올 것이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는 묘지명이 다시 쓰이지 않기를 바란다.



노회찬재단 사무총장 (htkim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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