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는 택배기사의 수수료 인하 논란이 반복되는 이유가 물류산업 내 기업 경쟁 심화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시장점유율을 확대하기 위해 택배사가 할 수 있는 것은 배송 단가를 낮춰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하는 것인데 ‘원청-대리점(집배점)-택배기사’로 이어지는 다단계 하청구조에서 단가 낮추기는 곧 택배기사 수수료 인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택배사 출혈경쟁을 막고, 택배기사 처우를 안정적으로 보장하려면 생활물류산업 내 수수료를 표준화하는 식으로 질서를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수수료 삭감하려던 대리점, 원청 중재로 철회”
택배연대노조는 이날 오후 서울 중구 롯데택배 본사 앞에서 열겠다고 예고했던 기자회견을 취소했다. 대리점의 해고 통보와 수수료 인하를 규탄하기 위해 마련한 기자회견이었다. 롯데택배와 업무위탁계약을 맺은 서울서부지점 한 대리점주가 바뀌는 과정에서 택배기사에게 수수료를 기존보다 건당 120원(13.5%) 줄어든 770원으로 낮추겠다고 통보하고, 택배기사 7명이 이에 응하지 않자 4월30일까지만 일하라고 구두로 통보했기 때문이다. 롯데택배 관계자는 “기존 대리점에서 새로운 대리점으로 고용승계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기사들이 기존에 받던 수수료에서 타협이 되지 않자 발생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본사가 대리점주에게 얼마만큼의 수수료를 줘야 한다고 정한 가이드라인은 없다”며 “배송비에 대한 단가를 조정할 뿐 대리점에 일임해 (배송기사 수수료는) 자율적으로 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사태해결은 롯데택배 덕에 가능했다. 이날 오전 롯데택배 서울서부지점은 대리점주와 택배기사의 만남을 주선했고, 대리점주는 결국 해고 통보를 철회했다. 수수료 인하액수는 120원에서 40원으로 줄였다. 770원이 될 뻔하던 수수료가 850원이 된 것이다.
노조 관계자는 “울산지역 롯데택배에서도 수수료 인하가 이뤄지고 있다”며 “추가 수수료라는 명목으로 원청에서 내려오는 수수료를 삭감하는 방침을 대리점에 내려보내니 을인 대리점이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무법천지 택배산업 질서 세워야”
택배산업 내 이렇다 할 규칙이 없다는 점은 문제를 심화시킨다. 물류시장에서는 CJ대한통운·롯데택배·한진·우체국택배·로젠택배 등 다섯 개 업체가 시장점유율을 확대하기 위해 경쟁 중인데, 급지별·거리별 표준수수료 체계가 없다. 건당 수수료를 받는 택배기사는 업무 지역, 대리점주 성향, 원청의 단가정책에 따라 받는 액수가 천차만별이다. 노조에 따르면 부산지역의 경우 택배기사 수가 적은 소규모 CJ대한통운 택배대리점이 많아 택배기사의 수수료를 20%까지 떼어 가지만, 서울의 경우 10% 내외로 대리점이 기사의 수수료를 가져간다고 한다. 우체국택배 역시 최근 위탁택배기사 수수료 인하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갈등이 아직 봉합되지 않은 상태다.
이동엽 노조 부위원장은 “수수료 인하로 기사의 생계가 어려워지는 것도 문제지만 수수료 인하의 이유가 명확지 않다는 게 더 큰 문제”라며 “택배 물량이 늘어나 수익이 증대되는데도 수수료를 낮추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성혁 서비스연맹 정책실장은 “빅5 택배사의 시장 쟁탈전이 치열하다 보니 비용절감 차원에서 단가를 인하하되, (대리점·택배기사에게) 수수료를 조금 주면서 기업의 이익을 챙기려 한다”며 “코로나19로 사회가 어수선한 틈을 타 수수료 인하를 감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실장은 “택배산업이 무법천지이다 보니 대리점 체계라는 다단계 하청구조로 착취가 이뤄지고, 리베이트·백마진도 존재한다”며 “표준약관·수수료체계 등을 만들어 산업의 질서를 세우고 산업구조를 투명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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