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9년 우리나라에서 철도가 개통한 뒤 철도노동자 2천456명이 산재로 숨졌다. 매년 21명이 숨진 셈이다. 통계에는 비정규직이나 자회사·협력업체 노동자를 포함하지 않았다. 시민들의 안전을 책임지면서도 정작 철도·지하철 노동자는 죽음의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을 앞두고 노동안전보건 전문가들이 궤도노동자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의견을 보내왔다.<편집자>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

2018년 12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28년 만의 전부개정이었다. 1953년 우리나라에 근로기준법이 처음 생기면서 이 속에 ‘안전과 보건’ 장이 만들어졌고, 10개 조항에 노동자 안전보건에 관한 사항을 담았다. 아주 기초적인 수준이었다. 1963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제정됐고 이후 1980년까지 이 구조는 지속됐다. 광주를 짓밟고 탄생한 전두환 정권은 정권의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 몇 가지 조치를 취했다. 그중 하나가 ‘다른 나라에는 있는데 우리나라에 없는 것’을 찾는 것이었다. 그래서 1981년 산업안전보건법이 탄생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 과정이 얼마나 졸속적이었는지 일본의 법률을 베껴 오면서 수많은 실수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노동재해’라고 쓰는데 이건 왜 안 베꼈는지 궁금하다.

산업안전보건법은 10년 가까이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법률로 존치됐다. 민주화 투쟁이 들불처럼 일어난 1987년을 거치면서 민주노조가 탄생하고 시민운동의 기초가 닦이기 시작했다. 1988년에는 문송면·원진노동자 투쟁이 시작됐다. 15세 문송면의 죽음은 산업안전보건법이 얼마나 쓸모없는 법이었는지를 보여줬다. 원진노동자 투쟁을 통해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이 직업성 질환을 찾아내는 것에도, 예방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는 점이 충분히 드러났다.

이에 산업안전보건법은 1990년 전부개정되기에 이르렀다. 주요 개정사항은 안전보건관리 규정 작성, 산업보건의(현재 직업환경의학전문의) 제도 도입,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노사 동수 구성, 건설업 표준안전관리비 계상이었다. 정기 안전보건교육 실시, 기계·기구 안전조치, 유해·위험작업 도급인가 제도, 유해화학물질 제조금지·사용허가·표시제 도입, 건강관리수첩 제도, 유해·위험작업 노동시간 제한, 중대재해 사업장 안전보건진단 등 실로 굵직한 제도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한국은 깜짝 놀랐다. 회원국 중 우리나라 산업재해 사망률이 1등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 현재까지도 이 등수는 바뀌지 않고 있다. 특히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90년대를 지나오면서 하청노동자·비정규직의 규모는 크게 늘어났다. 산재사망은 이들을 겨냥하기 시작했다. 하청노동자 사망이 원청노동자 사망의 최소 8배 이상이라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현재의 산업안전보건법은 이러한 산업재해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게 됐다. ‘4·28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에 가장 중요한 추모 대상은 바로 대한민국의 비정규·하청노동자들인 것이다.

이 때문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요구와 상시·지속업무 및 위험업무 외주화 금지 요구, 원청 책임성 강화 요구가 2000년대 들어 강력했다. 하지만 2018년 12월 국회를 통과한 ‘김용균 산재사망’에 따른 전부개정안에서는 수용되지 못했다.

철도·지하철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철도(1899년 개통)·지하철(1974년 개통)은 시민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개통 이래 산업재해로 2천546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철도에서는 원청과 하청을 가리지 않고 매년 1명 이상 사망하는 중대재해가 발생하고 있다. 서울의 지하철에서는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업무를 하던 하청노동자들만 잇따라 사망한 사례가 있다. 이런 위험업무를 외주화하지 않거나 원청이 철저히 관리해야 하는 무거운 책임을 가져야만 이들을 보호할 수 있다.

28년 만의 전부개정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낯부끄러운 산업안전보건법은 지금 즉시 재개정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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