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일 서울 용산구 홈리스행동 사무실에서 이동현 활동가·요지·반짝이씨(사진 왼쪽부터)가 <매일노동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정소희 기자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헌법 32조1항이다. 32조2항은 모든 국민의 일할 의무를, 32조3항은 국가가 인간 존엄성이 보장되는 노동조건을 법제화하라고 규정했다. 국가가 국민 모두에게 안정적이고 안전한 노동환경과 일자리를 마련할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헌법 조항은 얼마나 실현되고 있을까. <매일노동뉴스>가 만난 홈리스와 홈리스 인권단체의 평가는 ‘미흡’이다.

지난 4일 서울 용산구 홈리스행동 사무실에서 만난 요지(43·활동명)씨와 반짝이(52·활동명)씨는 홈리스이면서 홈리스행동이 만든 홈리스야학에서 공부하는 학생이다. 이들은 서울시 노숙인 생활시설이 소개하는 자활 일자리와 서울시 노숙인 일자리 지원사업에 각각 참여했다. 반짝이씨는 특별자활근로(반일제) 사업에 참여해 올해 1월부터 주민센터에서 청소 노동을 한다. 하루 5시간, 주 5일 일하고 월 60만원에서 80만원을 받는다. 계속 일을 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1분기와 2분기에 연속 일자리사업에 참여해 3분기에는 탈락할 게 뻔해서다. 3개월마다 연장하는데 신청자가 많아 대개 세 번 연속 연장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6월30일이면 근로기간이 끝나는 그는 “공공근로를 꾸준히 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서울시 노숙인 일자리, 안정성·급여·숫자 모두 부족

서울시는 2월 발표한 2020년 노숙인 일자리 지원사업 추진계획에서 올해 목표 일자리를 2천750개로 잡았다. 사업 대상자는 노숙인 시설 입소자와 쪽방 주민이다. 2018년 서울시는 서울 거주 노숙인이 3천219명, 쪽방 주민이 3천187명이라고 밝혔다. 시간차를 감안해도 사업 대상에 비해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하다.

이 중 공공일자리는 790개다. 특별자활근로(반일제) 650개와 일자리갖기(전일제) 140개로 구성돼 있다. 지난해 목표치인 특별자활근로 550개, 일자리갖기 230개에 비해 반일제 일자리는 100개 늘고, 전일제 일자리는 90개 줄었다. 반일제 일자리는 월평균 임금이 64만~81만원 내외고, 전일제는 월평균 185만원 내외다. 일자리 추진 목표치의 55%인 1천530개 일자리는 민간일자리다. 서울시는 노숙인 일자리지원센터를 통해 노숙인을 교육하고 기업과 민간 일자리를 소개한다는 계획이다.

서울시는 지난해에도 노숙인 일자리 지원사업 목표치의 70%가량을 공동작업장 일자리와 민간일자리로 채웠다. 지난해 5월 서울시가 연 노숙인 일자리박람회에는 2천111명의 노숙인이 참여했으나 단 16명만 최종합격했다. 시장취업능력이 낮은 홈리스에게 민간일자리는 진입장벽이 높다. 서울시 통계에서 2019년 민간일자리 사업 참가자 중 근속기간 1년 미만 비율은 67%였다. 취업현황 통계 역시 건설일용직이 43.9%로 청소·식당보조(16.3%)와 운전·시설관리(15.9%) 등 다른 업종에 비해 높다. 이런 일자리는 여성 홈리스나 아픈 홈리스에게 무용지물이다. 서울시가 노숙인에게 알선하는 민간 및 공공일자리 대부분이 ‘단기’ 혹은 ‘저임금’ 일자리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정책 대상자, 빈곤 당사자에게 적합한 일자리 정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서울시는 올해 발표한 일자리 지원사업 추진계획에서 “2019년 민간일자리 고용형태가 일용직(44%), 1년 미만 단기근로(67%)로 안정성이 떨어진다”고 진단했지만 올해 공공일자리 숫자를 되레 줄였다.

이런 지자체 일자리 사업은 홈리스에게 ‘취업과 실업의 회전문 현상’을 겪게 한다. 1년에 최소 3개월에서 11개월까지만 참여할 수 있는 일자리 사업이 끝나면 실업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공공일자리 사업에 탈락하면 초단기 일자리에 머물다가 기초생활보장 대상자가 되기도 한다. 몸이 아픈 요지씨도 건설 일용직을 하다 그만둔 경험이 있다. 그는 “일자리 소개소는 꾸준히 나오는 사람을 원하는데 저는 아파서 (업체가) 선호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당뇨와 신경계 질환이 있는 그는 병원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적은 급여의 공공일자리에 참여하느니 의료급여 수급자가 되기로 했다. 요지씨는 “그래도 공공일자리가 끝나는 기간이 없다면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최저시급이 많이 오르긴 했지만 홈리스 당사자분들은 ‘급여가 작다’는 이야기를 (기대치가 낮아) 거의 안 한다”며 “그보다 ‘계속 일하고 싶다’는 바람이 많다”고 말했다. 지자체가 노숙인 공공일자리 초점을 안정성에 둬야 한다는 얘기다.

중앙정부는 홈리스 요양·재활·기초생활보장만 담당
지자체 이양된 노숙인 일자리 지원 공공성·안정성 높여야


보건복지부는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노숙인복지법)에 따라 5년마다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 종합계획’을 세우고 시행한다. 하지만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적용하는 계획에는 구체적인 재정 계획이 빠졌다. 또 홈리스의 생활과 자립에 관한 5년간의 국가계획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엉터리다. 성과지표 역시 노숙인 삶의 질 개선이 아니라 ‘전년 대비 노숙인수 2% 감소’라는 양적 지표만 제시돼 있을 뿐이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처음으로 노숙인 대상 특화 자활근로사업을 시작했지만 일부 지자체만 시행 중이다. 이동현 활동가는 “중앙정부는 홈리스 요양·재활시설 운영과 기초생활보장 관련 정책만 담당한다”며 “일자리 등 지원 사업은 사실상 모두 지방정부에 이양된 상태”라고 말했다. 지자체장에 따라 홈리스 지원정책 예산과 방향이 달라져 중앙정부는 결정 권한이 없다. 이 활동가는 “노숙인 일자리 사업은 17개 광역지자체 중 7개만 한다”며 “홈리스의 서울 쏠림 현상은 가속화하고 지역 홈리스는 주거·의료·고용정책 사각지대에 놓인다”고 말했다.

홈리스 일자리 지원을 맡는 지자체 관할 노숙인 생활시설도 일자리 안정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요소다. 서울 복지포털에 따르면 서울시내 홈리스 생활시설은 37개다. 서울시는 모든 시설을 종교법인 등에 위탁운영한다. 이동현 활동가는 “일하는 기간이 너무 짧다고 (홈리스가) 말하면 민간위탁 기관은 (서울시에서) ‘위탁받은 대로 제공할 뿐이다’라고 답한다”며 “민원을 제기할 수 있는 곳이 없다”고 말했다.

요지씨는 지난 1일에 한 집회에 참여해 “홈리스 상태에서도 할 수 있는 안정적이고 안전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발언했다. 그는 “주거지원과 동시에 할 수 있는 일자리, 과거의 노동경험과 연결되는 일자리, 기간이 제한되지 않고 최저임금이 적용되는 일자리를 요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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