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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노조 경영 않겠다 고개 숙였지만] ‘삼성 노조’ 위엔 노사협의회 있다

기사승인 2020.05.07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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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급 전임자에 사무실까지 지원 … 노조 교섭권 속속 무력화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이제 더 이상 삼성에서는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며 국민 앞에 사과했다. 사실 ‘무노조 삼성’ 균열은 예고된 일이다. 이미 61개 삼성 계열사 중 12곳에 노조가 만들어졌다. 유노조 사업장 비중이 20% 수준이라는 뜻이다. 노동자가 노조를 만드는 목적은 사용자와 교섭해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지금까지 ‘유노조 삼성’에서 노조가 단체교섭을 통해 임금협약을 맺은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나마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와 삼성전자서비스가 2019년 직접고용을 앞두고 ‘노사 합의서’를 체결하면서 임금항목까지 포함시킨 사례가 유일하다.

대신 삼성은 한마음협의회·평사원협의회같이 이름만 조금씩 다른 노사협의회를 운영하면서 임금과 복리후생 등 노동조건을 결정한다. 노사협의회는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근로자참여법)에 따라 30명 이상 사업장에 설치하는 노사 협의기구다. 근로자참여법에 따르면 노사협의회는 생산성 향상과 성과 배분부터 인사·노무관리 제도, 채용과 배치, 교육훈련, 임금 지불방법과 체계·구조, 신기계·기술의 도입 또는 작업공정, 직장내 성희롱 예방, 작업수칙 제·개정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노동조건을 협의할 수 있다. 다만 노사협의회는 결렬돼도 노동자가 파업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노조의 단체교섭과 결정적 차이가 있다.

이날 이재용 부회장의 사과에 앞서 국회 소통관에서는 한국노총 6개 삼성 계열사 노조로 구성한 삼성그룹노조연대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들은 “헌법이 보장한 노동 3권은 노조에게 있을 뿐 결코 노사협의회가 대신할 수 없다”며 “노사협의회를 앞세운 노조탄압 행위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왜 이들은 노사협의회를 노조탄압 수단으로 지목할까.

노조와 임금교섭 도중 노사협의회 임금합의안 들이민 삼성

삼성화재애니카손해사정노조(위원장 최원석)는 지난달 회사에서 ‘2020년 임금조정 협의완료’ 통보를 받았다. 올해 임금교섭이 2차례 열렸을 뿐인데 회사는 “한마음협의회와 올해 임금조정을 완료했으니 노조 조합원에 대한 동일 적용 여부를 회신해 달라”고 요구했다. 노사 교섭으로 임금을 정해야 하는데 한마음협의회와 합의한 임금안을 수용할지 여부만 알려 달라는 통보다. 노조가 헌법에 보장된 단체교섭권이 눈앞에서 짓밟혔다고 비판하는 이유다. 노조는 “단체교섭권은 노조만 갖는 고유 권한인데 (임의기구에) 침해당했다”며 “노조활동을 고의적으로 위축시켜 결국 노조를 고사하려는 삼성의 노조탄압 전략”이라고 지적했다.

올해 1월 노조를 설립한 삼성화재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삼성화재 노사는 지난 3월 임금단체교섭에 들어갔다. 그런데 회사가 평사원협의회와의 올해 임금조정을 마무리했다며 직원들에게 동의 확인서에 자필 서명하라고 요구해 논란이 일었다. 이 확인서에는 평사원협의회와의 임금협상안을 토대로 산출한 개별 연봉금액이 적혀 있다. 회사는 만약 이의가 있으면 연봉 이의신청서를 제출하라고 했다. 삼성화재 노사의 임금교섭은 사실상 무의미해졌다.
 

한국노총이 6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삼성그룹 노동조합 연대 출범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노조 대항마’삼성 노사협의회, 지금도 노조 대체재

노사협의회 취지는 노동자와 사용자 쌍방이 참여와 협력을 통해 노사 공동의 이익을 증진하는 것이다. 그런데 삼성은 달랐다. 무노조 유지 전략 중심에는 노사협의회 활용법이 있다. 노조를 만들지 못하게 하거나 노조를 고사하기 위한 목적으로 노사협의회를 육성한 흔적이 곳곳에 남았다. 삼성전자서비스와 삼성에버랜드 노조와해 공작 재판 과정에서 공개된 삼성 노사전략 문건이 대표적이다.

2012년 작성된 S그룹 노사전략 문건에 따르면 노사협의회는 “유사시 친사노조” “노조의 대항마”로 불렸다. 이 문건은 “노조 설립시 노사협의회 역할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면서 “평상시 노사협의회가 사원 장악력을 갖도록 전략적 육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문건에는 “노사위원 육성 마스터플랜 수립” 계획도 담겨 있는데 “유사시 친사노조로 전환할 수 있도록 마인드와 역량 제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면서 르노삼성자동차에서 2011년 8월 노조 설립시 노사협의회를 대항마로 내세워 신규 노조원을 250명에서 80명으로 축소한 사례를 언급했다. 노사협의회를 노조와해를 위한 유력한 수단으로 본 것이다.

2011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 주관한 계열사별 복수노조 대응태세 체크리스트에서도 노사협의회 운영을 주요하게 점검했다. 예컨대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 선출을 투표로 하거나 경선으로 하는 경우 배점이 높았다. 선거유세 여부도 가점 대상이었다. 노사협의회가 임금협상을 실질적으로 할 경우 점수를 받았고 그렇지 않으면 0점으로 처리됐다.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에게 수당이나 경조금 판공비를 주면 점수는 배가됐다.

삼성전자 노조 전임자는 0명, 노사협의회 유급 전임자는 12명
노사협의회비로 계열사마다 200원~1만8천원 월급에서 공제


문제는 지금도 삼성의 노사협의회가 이런 식으로 작동되고 있다는 점이다. 근로자참여법에 따르면 노사협의회 위원은 ‘무보수·비상임’이 원칙이다. 다만 노사협의회 출석이나 직접 관련된 시간은 근로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런데 삼성의 노사협의회는 자체 규정을 근거로 유급 전임자를 두고 회사에서 사무실을 제공받고 있다. 사실상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적용을 받지 않는 노조나 다름없다.

삼성전자에는 노조전임자는 단 한 명도 없지만 노사협의회 위원은 170명에 육박한다. DS부문(72명), CE부문(25명), IM부문(53명), 기타부문(20명) 등 사업부문별로 노사협의회를 운영하고, 회사가 제공한 사무실도 별도로 두고 있다. 이 중 다른 업무를 하지 않고 노사협의회 업무만 하는 전임자는 12명이다. 나머지는 오전에는 업무를 하고 오후에는 노사협의회 활동을 하는 식으로 반전임 형태로 일한다. ‘사우회비’ 이름으로 월 200원씩 월급에서 공제한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중소형사업부에 14명, 대형사업부에 7명, 기흥공장 7명 등 28명의 노사협의회 위원이 있다. 6명은 노사협의회 업무만 전담하는 유급 전임자다. 삼성전자와 마찬가지로 직원들의 급여에서 200원씩 회비가 공제된다. 직원들은 자신의 월급에서 공제된 사우회비가 노사협의회로 흘러갔을 것이라고 짐작만 할 뿐 어떻게 사용되는지 모른다. 사용내역이 공개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근로자참여법에서 근로자를 대표하는 위원은 근로자가 선출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과반수노조가 있는 경우 노조 대표자와 노조가 위촉하는 사람이 근로자위원을 맡는다. 삼성 계열사 중 과반수노조는 삼성전자서비스지회뿐이다. 삼성 직원들도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을 뽑는 선거를 하지만 형식적 절차에 그친다는 비판이 높다. 이창완 삼성디스플레이노조 공동위원장은 “선거를 해도 당선자만 공고될 뿐 선거 결과조차 알 수 없다”고 비판했다. 더군다나 노사협의회 대표는 노사협의회 위원들이 뽑는 간선제다.

노조를 만들기 전 노사협의회 활동을 했던 최원석 애니카손해사정노조 위원장은 “이름만 노사협의회일 뿐 하는 일은 99% 노조”라고 말했다. 실제로 애니카손해사정 사측 임원은 지난 2월 중앙노동위원회 쟁의조정회의에 출석해 노사협의회에 대해 “법외노조 성격”이라고 설명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2월 단체협약 체결 직후 조합원이 495명까지 늘어 과반수노조를 눈앞에 뒀던 애니카손해사정노조는 지난 두 달간 조합원이 줄줄이 탈퇴하며 200명이나 줄었다. 최 위원장은 “회사 관계자가 아니라 노사협의회 대의원들이 조합원들에게 노조탈퇴를 요구했다는 증언들이 쏟아지고 있다”며 “노사협의회가 사측의 비호 아래 노조를 공격하는 도구로 활용된다”고 주장했다. 애니카손해사정 노사협의회는 30개 분회를 두고 있고 분회별로 1명씩 대의원을 선출한다. 노사협의회장과 부회장, 집행 간부 10명을 비롯해 노사협의회 위원은 40명이다. 회사는 간부 3년차 이하 전 직원(1천100명) 월급에서 적게는 9천원 많게는 1만8천원을 노사협의회비 명목으로 공제했다.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공제하기 전 동의를 받은 적도, 사용내역을 공개한 적도 없다. 노조는 지난 3월 노사협의회비를 임의로 공제한 회사를 임금체불 혐의로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고소한 상태다.
 

노사협의회 앞세워 노조 단체교섭권 무력화
‘유사시 노조’ 전략 현재진행형


최근 설립한 삼성의 노조들은 노사전략 문건에 나온 것처럼 노사협의회가 노조에 대항하는 방패막이가 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노조의 단체교섭권이 노사협의회를 앞세운 삼성의 전략으로 무력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노동조건은 노사협의회가 결정하고, 정작 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에는 불성실하게 임한다는 비판이다. 이에 대해 삼성측 관계자는 “노동관련 법령을 철저히 준수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삼성디스플레이노조는 지난달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거친 후 회사와 두 차례 실무협의를 진행했다. 노조는 단체교섭을 할 수 있도록 노조활동을 보장하는 내용의 기본협약 체결을 요구했는데 협상 테이블에 앉은 회사 임원들은 아무런 입장도 밝히지 않고 시간만 보내다 돌아갔다고 한다. 삼성전자노조도 지난달 단체교섭 요구했는데 회사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노조는 지난달 29일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교섭요구 사실공고에 대한 시정신청’을 냈다. 단체교섭 요구에도 회사가 절차를 밟지 않으니 시정하라는 취지다.

한국노총은 이날 이재용 부회장의 사과에 대해 “문제는 결국 실천”이라고 평가했다. ‘유노조 삼성’ 시대, 주시해야 할 것은 노조의 단체교섭권이 얼마나 합법적으로 보장되고 있느냐다.

김미영 ming2@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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