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총

지역아동센터에서 일하는 A씨는 일한 지 11개월쯤 됐을 때 센터장에게서 자신의 손주를 봐 달라는 황당한 부탁을 받았다. A씨가 이를 거부하자 센터장은 사사건건 꼬투리를 잡기 시작했다. 급기야 A씨는 “내일부터 다른 사람이 출근하니까 나오지 마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해당 센터는 ‘5명 미만 사업장’이라 부당해고 구제신청도,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도 적용받지 않았다. A씨는 억울해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30명 미만 ‘작은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 중 상당수가 열악한 노동환경과 부당한 대우 속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민주노총은 12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달 2일부터 8일까지 진행한 ‘전국 30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 1천명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은 기본적인 노동조건조차 지켜지지 않는 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근로계약서 작성과 임금명세서 교부 응답률은 각각 68.6%와 67.1%에 불과했다. 임금이나 노동시간같이 자신이 어떤 환경에서 일하는지 알 수 있는 기본적인 서류조차 없이 근무하는 노동자가 30%를 넘는다는 의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노동조건 악화를 경험했다고 답한 사람은 37.3%였다. 10명 중 4명꼴로 코로나19 사태로 연차휴가 소진, 무급휴직·휴업, 연장근무, 임금삭감, 권고사직, 해고, 폐업 중 1가지 이상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유형별로는 연차휴가 소진(17.3%)이 가장 높았고, 무급휴직·휴업(15.7%), 연장근무(12.9%), 임금삭감(8.1%), 권고사직(7.1%), 해고(6.8%), 폐업(2.4%) 순이었다.

10명 중 2명만 일한 만큼 받는다
“포괄임금제 폐지해야”


10명 중 2명만이 법으로 정한 야간·휴일노동수당 같은 초과노동수당을 받는다고 답했다. 초과노동수당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람은 42.3%, 실제 연장근무시간과 무관하게 정해진 시간대로 받는 포괄임금제를 적용받는 사람은 23.9%였다. 근로기준법상 5명 이상 사업장은 초과노동수당을 지급해야 하지만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은 전반적으로 일한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근로기준법과 관련한 내용 중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질문했더니 포괄임금제라고 답한 사람이 23.1%로 가장 많았다. 임금체불(18.4%), 연차를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문제(15.7%), 쉬운 해고(11.9%)가 뒤를 이었다.

김정봉 금속노조 서울지부 동부지역지회 종로주얼리분회장은 <매일노동뉴스>와의 통화에서 “코로나19 사태로 주 5일에서 주 4일로 근무일수를 줄였던 사업장이 최근 수요 회복으로 업무가 늘어나고 있는데도 주 4일 근무를 고집하고 있다”며 “포괄임금제로 밤 10~11시까지 일해도 초과근무수당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종로 일대에 집중돼 있는 귀금속 가공업체는 10명 미만 사업장이 다수다.

“정부 대책 남의 나라 이야기 같아”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은 정부 지원대책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쇼핑몰에서 판매업무를 하는 ㄴ씨는 처음 일할 때부터 4대 사회보험을 떼지 않고 180만원을 받고 일하는 것으로 사업주와 합의했다. B씨는 “실업급여 이런 건 생각지도 못하고 있다”며 “뉴스에서 무슨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지만 남의 나라 이야기 같다”고 말했다. 와인포장업체에서 일하는 C씨의 경우 “고용유지지원금을 받고 휴업하는 게 어떠냐고 (사장에게) 했더니 4명밖에 안되는 회사에서 무슨 고용유지지원금이냐고 하더라”고 말했다.

최정우 민주노총 미조직전략조직실장은 “5명이라는 인원수를 기준으로 법을 지키고 말고 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며 “고통받고 차별받는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권리보장을 위한 사업을 전격적으로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모든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조 개정과 5명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 전면적용을 내용으로 하는 ‘전태일 2법’을 촉구했다. 전국 곳곳에서 노동자들을 만나 ‘노동자 권리찾기 수첩’ 23만권을 배포하고 작은 사업장 노동자 권리와 노조가입을 알리는 홍보사업을 할 예정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