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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노동자 이야기-브레이크 없는 노동] 급증한 물량에 과로사 무릅쓰고 일하는 택배노동자

기사승인 2020.05.25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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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나가, 한마디면 계약해지 … 고용보험 안전망에선 배제”

   
▲ 택배노동자 안영석씨가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CJ대한통운서브터미널에서 분류작업을 마친 택배 상자를 배송차량 화물칸에 싣고 있다. 배송 순서에 따라 정리하는 게 중요하다. 정기훈 기자

여기 두 명의 노동자가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피해자 혹은 수혜자로 보이는 이 둘은 조금만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서로 극적으로 닮았다. 스스로 자신의 노동을 제어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자신을 보호해 줄 안전망은 엷은데 해고는 가깝다. 한 번 떨어지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 힘들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아는 이들이다. 포스트 코로나19 시대는 이들에게 희망을 줄까.<편집자>

5월4일. 사랑하는 어린 두 아이와 아내를 남겨 둔 채 한 가장이 세상을 떠났다. 마흔한 살 젊은 나이였다. 가족과 제주도 여행을 떠나기로 했던 날은 그의 기일이 됐다. 고인은 택배 일을 시작한 지 10년이 지난 뒤 처음으로 가족여행을 계획했다. 동료들은 그의 죽음을 과로사로 추정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택배물량이 폭증했고, 2월부터 4월 내내 1만개가 넘는 물량을 소화했다는 사실이 과로사로 추정한 근거였다.

“나중에 내가 될 수도 있고, 내 옆에서 일하는 동료가 될 수도 있다.”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로 5년째 일하고 있는 안영석(47·사진)씨는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동료의 죽음을 떠올렸다. 그 역시 하루 1만개 넘는 물량을 소화하고 있다. 과로사 위험이 크다지만 멈추지는 못한다. 실업급여 같은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택배노동자는 과로사보다 일을 못하게 되는 게 더 두렵다. “코로나19보다 일을 못하게 되는 것이 더 두렵다”는 실직 노동자의 마음과 닮았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0일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 안영석씨와 동행했다. 그는 무엇을 위해 화장실 가는 것도 참고, 끼니도 거르며 일하는 것일까.

“택배노동자는 매시간 촌각을 다툰다”

이날 오전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CJ대한통운서브터미널. 택배자동분류기인 휠소터에서 한 차례 분류를 거쳐 레일을 타고 내려온 택배 박스가 영석씨 앞에 왔다. 고개를 숙여 박스에 붙은 운송장을 확인하고는 자신이 배송해야 할 물건은 택배차량 앞 공간에, 잘못 분류돼 온 물건은 레일 반대편으로 던진다. 행동은 능숙하고 재빠르다. 혹여나 상품이 상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한 눈길을 보내는 시선을 느꼈던지 영석씨가 웃으며 말했다.

“막 던지는 것 같죠? 아녜요. 만지면 딱 알아요. 이게 던지면 되는 물건인지 아닌지.”

분류작업 막바지에 접어들어 물건이 드문드문 내려왔지만, 영석씨는 여전히 분주했다. 운송장에 적힌 배송 주소를 확인한 그는 매직으로 큼지막하게 아파트 동·호수를 적었다. 배송 중 두 번 세 번 운송장을 확인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스캐너로 운송장 바코드를 찍고 배송예정 상태로 등록한 상품을 화물칸에 싣는다. 물건이 어느 정도 쌓이자 화물칸 위로 훌쩍 뛰어올랐다. 어두컴컴한 화물칸에서 배송하기 편한 순서로 물건을 정리한다.

“이 작업이 제일 중요해요. 물건이 잘 정리돼야 갔던 데 또 가는 일이 안 생겨요.”

택배노동자에게 시간은 금이다. 허리를 굽혔다 폈다, 물건을 집어 화물칸에 싣고 정리하는 일을 끊임없이 반복했지만 영석씨는 물이나 음료를 찾지 않았다. 그는 “커피를 마시면 화장실을 자주 간다”며 “아직 물 마실 철은 아니지 않냐”고 너스레를 떨었다.

별도 수당을 주지 않아 공짜노동으로 불리는 분류작업을 마친 영석씨는 오후 1시가 넘어서야 터미널을 빠져나왔다. 배송을 하기 위해서다. 이날 집화 물량을 포함한 배송 물량은 453개. 오전 8시50분부터 11시10분까지 1차 배송을 다녀온 터라 343개의 물량이 남았다. 배송을 1차·2차로 나눠 가는 택배노동자는 1차 배송 중 분류작업을 대신해 줄 알바를 고용하거나 동료와 조를 이뤄, 돌아가며 업무를 분담한다. 지난달까지 분류작업을 돕는 알바를 고용해 27만원을 썼던 영석씨는 최근 동료와 일을 나눠 하기로 했다.

오후 1시22분 배송 장소 인근에 익숙하게 트럭을 세웠다. 차에서 내린 그는 상가에 입주한 가게들에 배송을 시작했다. 지상 1층에 음식점은 주방으로 연결된 뒷문 앞에 물건을 놓고, “안녕하세요. 택뱁니다”라는 인사로 택배가 도착했음을 알렸다. 주인이 상품을 가지러 나오기도 전에 영석씨는 다음 배송을 위해 달렸다. 엘리베이터를 탄 그는 “올라가면서 어떻게 배송할지 계획을 짠다”며 3층과 7층을 한꺼번에 눌렀다. 3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물건이 실린 손수레를 문 밖으로 밀어 놓았다. 손수레만 두고 다시 승강기 안으로 들어오는 그를 쳐다보자 “7층 먼저 물건을 갖다 주고, 계단으로 걸어서 3층에 다시 내려온다”고 설명한다. 다른 엘리베이터 이용자가 불편을 겪지 않게 하되,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동선을 짠 것이다.

한 상가를 돌았을 뿐인데 영석씨 얼굴은 땀범벅이 됐다. 그는 “마스크를 쓰는 데다 따뜻해지다 보니 금세 땀이 찬다”며 “어제는 비가 와 추웠는데, 일하기 딱 좋았다”고 아쉬워했다.
 

허리 굽힐 일이 많다. 무게가 만만찮다. 정기훈 기자

“1월 대비 3월 물량 27% 증가
주당 노동시간 70시간 넘을 때 많아져”


영석씨는 코로나19 이후 물량이 크게 늘었다. 배송 수수료 지급명세서에 따르면 영석씨는 1월 9천843개 물량을 처리했다. 집하를 포함한 숫자다. 2월 물량은 1만232개으로 3% 늘었지만, 3월 물량은 1만2천548개으로 1월 대비 27%나 증가했다. 물량이 증가함에 따라 근무시간도 30분씩 늘었다고 한다. 요일별 물량이 들쭉날쭉 하지만 이를 감안해도 주 6일 일하는 영석씨의 근무시간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주당 70시간을 자주 넘어섰다.

이날 영석씨는 아침 7시 터미널에 출근해 밤 8시30분에 업무를 마쳤다. 11시간30분, 화장실을 가지 않으려 마실 것을 최소화하고 끼니도 거르며 일한, 순수 노동시간이다. 물량이 가장 몰리는 화요일(지난 19일)에는 밤 9시30분에 업무가 끝났다고 한다. 장시간·고강도 노동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일을 줄일 수는 없다. 고단한 노동은 그에게 적지 않은 수입을 보장하지만 그만큼 영석씨는 불안하기만 하다.

“안 아픈 데가 없어요. 정말로. 코로나19로 늘어난 물량만큼만이라도 놓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그래야 오래 이 일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나눠 준 구역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나중 물량 줄어들 때 다시 챙겨 올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대리점에서 일 잘하기로 소문이 나 사장의 눈총을 받지는 않지만, 고용불안은 영석씨에게 남 얘기가 아니다. 대리점과 업무위탁계약을 1년 단위로 갱신하는데 어떤 이유로, 언제 계약을 해지당할지 알 수 없다고 한다.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그는 계약을 해지당했다가는 실업급여조차 받을 수 없다. 코로나19로 물량이 늘었다고 마냥 기뻐할 처지가 아니다. 어떤 외부충격이 어떻게 영석씨 일터를 덮칠지는, 그래서 하루아침에 처지가 바뀔지 모르는 구조다. 적게는 3명, 많게는 수십 명과 업무위탁계약을 맺는 대리점장은 택배기사와 언제든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닌 택배노동자는 부당해고 구제신청도 할 수 없다.

“대리점장이 ‘너 나가’라고 하면 우리는 그냥 나가야 해요. 특별한 이유요? 없어요. ‘나, 너하고 일 안해' 그러는 게 특별한 이유죠. ‘왜요’라고 물으면 ‘너 일 못해서’ 그럼 그냥 끝이에요.”

제 몸 돌볼 시간은 물론 없다. 그는 일하면서 벌써 두 차례 사고를 당했다. 한 번은 분류작업 중 레일에 다리가 끼였고, 또 한 번은 뛰어다니며 배송하던 중 물기가 남아 있는 아파트 바닥에서 미끄러져 인대가 늘어났다. 하지만 두 번 모두 산업재해신청은 하지 않았다.

“반깁스하고 절뚝거렸지만 그래도 출근해서 일했어요. 우리는 배송 건당 670원(부가세 제외) 받는데 우리 물량을 대신 처리해 줄 사람을 구하면 1천100원은 줘야 합니다. 돈도 못 버는데 더 많은 돈을 줘야 하니…. 저만 그런 것도 아녜요. 이 터미널에서 손가락 두 개가 부러진 친구가 있는데 계속 일을 하더라고요. 어떤 아저씨는 깁스를 해 아들을 데리고 와 일을 해요. 어쩔 수 없어요. 개인사업자니까.”

안영석씨가 한 상가 계단을 뛰어내려오고 있다. 늘 시간에 쫒긴다. 정기훈 기자

“회사원이던 때가 그립다”

지난 3월 영석씨는 부가세를 포함해 890만원을 벌었다. 남 부럽지 않은 소득이지만 영석씨는 회사원이던 때가 그립단다.

“주 5일 근무하고, 월차 써서 가족하고 시간 보내고…. 돌아갈 수 있으면 돌아가고 싶죠. 제일 일하기 싫었던 날이 그때예요. 택배 일 시작하고 큰맘 먹고 가족들이랑 1박2일로 워터파크 놀러 갔던 날이요. 일요일에 가서 월요일에 돌아오는 여정이었는데, 월요일 물량 치려고 새벽에 돌아왔거든요.”

영석씨는 최근 택배연대노조에 가입했다. “더 오래 일하기 위해서”가 이유다.

“제가 동료들한테 말하고 싶은 건 그거예요. 당신들은 기계가 아니다, 어디 아프면 부속품처럼 갈 수도 없다는 거요. 아픈 순간 바로 여기서 떠나야 해요. 가족 부양하고 보호하려고 이 일을 하는데, 그 모든 것을 놓고 떠나야 해요. 그래서 맨날 외치는 거죠.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려면 힘을 합쳐야 한다고.”

강예슬 yeah@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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