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일 보건의료노조 회의실에서 열린 민주노총 위원장-보건의료노동자 간담회에서 김명환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일할 때는 전시상황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정상적인 나라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환자들이 밀려 들어왔고, 이들이 입·퇴원하는 날은 뛰어다니는 수준이었는데요. 너무 뛰어 다녀서 후드가 벗겨지는 것 같았습니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간호사들이 사명감으로 잘 버텨 왔는데, 이제는 정부도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2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에서 열린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과의 간담회 자리. 안수경 보건의료노조 국립중앙의료원지부장이 올해 3월 코로나19 환자를 전담 치료하던 계명대 대구동산의료원에 보름가량 의료지원 갔던 때를 떠올리며 한 말이다. 당시 대구지역은 코로나19 확진자 급증으로 의료인력 부족에 시달렸다.

이런 의료진들의 수고 덕분일까.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지난달 중순부터 이태원 클럽발 집단감염이 확산하기 이전까지 하루 10명 안팎을 유지했다. 정부는 지난 6일 생활방역 체계를 ‘생활 속 거리 두기’로 완화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 정부와 전문가들이 코로나19 사태가 장기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호흡기 바이러스가 더 극성을 부리고 사람들의 면역력이 떨어지기 쉬운 겨울이 되면 ‘코로나19 2차 파도’가 이전보다 더 크게 일어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았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코로나19 대응에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우려한 대로 코로나19 2차 파도가 찾아 온다면 그때도 마찬가지일까. 의료진 희생에 기대서만 안전을 담보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닐까.

 

“가을·겨울, 코로나19 더 크게 확산할 수도”

전문가들이 코로나19 2차 감염이 확산하면 지금보다 심각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기모란 국립암센터대학원 예방의학과 교수는 <매일노동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가을(겨울)에 인플루엔자·독감 유행으로 사망자와 입원·외래 환자수가 계속 증가하는 상황에서 코로나19가 맞물리면 (확산이) 더 커질 수 있다”며 “사람들이 마스크 쓰기와 사회적 거리 두기에 익숙해져서 개인적인 노력은 하겠지만 (감염병) 유입 자체를 막을 순 없어서 (감염) 규모를 어느 정도 선에서 관리해 나갈 수 있을지가 최대 관건”이라고 말했다. 기 교수는 이어 “스페인독감 사례처럼 역사적으로도 (2차 감염이 크게 확산)됐다”고 말했다. 스페인독감은 1918년 3월 창궐했는데 그해 가을 2차 감염 때는 5배 더 크게 확산했다. 3차 유행까지 발생했다. 사망자는 5천만명에 달했다.

오명돈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 위원장(서울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도 지난 3월 ‘코로나19 팬데믹과 중앙임상위원회의 역할’을 주제로 열린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정부는 그동안 확진자의 접촉자를 찾아 지역사회 전파를 차단하는 식의 ‘억제정책’을 펴 왔다”며 “(개학 등) 억제를 풀면 스프링이 다시 튀듯 유행이 시작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도 동의하고 있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지난 20일 정례브리핑에서 “코로나19가 신종 바이러스다 보니 어떻게 전개될지 정확하게 예측하는 데 한계가 있다”면서도 “많은 전문가들이 ‘코로나19를 완전히 종식시키기는 어려우며 장기전으로 갈 것’이라고 보고 있는데 우리도 그렇게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본부장은 “유행과 완화를 반복하다가 겨울철이 되면 바이러스가 생겨나기 쉬워 대유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며 “좀 더 엄밀한 준비와 대비가 필요하며 1년 또는 몇 년간 계속 유행이 지속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지역별 관리체계 필요”

자연스럽게 2차 감염 가능성에 대한 대비 방안에 관심이 쏠린다.

코로나19 대응은 크게 방역과 진료, 두 영역으로 나뉜다. 진료체계와 관련해 기모란 교수는 “이번 코로나19 환자가 1만명 정도 발생했는데 확진자가 (치료받을) 병원이 없어서 집에서 대기하다가 죽는 등 일부에서 의료시스템이 붕괴됐다”며 “2차 감염 확산 때 수만명이 감염되면 어떻게 되겠냐”고 우려했다.

기 교수는 2차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지역별 관리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기 교수에 따르면 2차 대유행은 한 지역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올 수도 있다. 대구에서 신천지 때문에 코로나19가 확산했을 때는 전국에서 대구로 자원봉사를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전국, 특히 대도시에서 확산하면 봉사도 어렵게 된다. 기 교수는 “(환자를) 중환자를 보는 곳에 보낼지, 생활치료센터 또는 자가치료 대상인지 분류하는 것이 잘 돼야 한다”며 “지금은 국립중앙의료원이 그 역할을 하고 있는데 전국에서 발생하게 되면 한 군데가 다 하는 것이 불가능하니 지역별로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감염 억제와 일상유지 사이의 과제

방역과 관련해서는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사회적 거리 두기와 같은 억제정책을 폈다.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했다. 하지만 강력한 억제정책을 계속 유지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시민들의 경제와 교육 같은 일상생활이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 막으려다 굶어 죽겠다”는 호소도 나오고 있다.

김윤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는 지난달 16일 보건의료노조를 대상으로 한 강의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강력하게 하면 코로나19에 안 걸릴 수는 있어도 굶어 죽을 수 있다”며 “어느 정도 풀어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억제정책을 완화하면 코로나19가 확산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결국 과제는 사회·경제적 활동도 할 수 있고 사회적 거리두기도 할 수 있는 방안을 고안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직장인 점심시간을 오전 11시에서 오후 2시까지로 늘려 사람들이 분산해 식사를 하도록 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식당 밀집도를 줄이고, 동시에 식당 영업도 보장할 수 있다. 김윤 교수는 “이런 것은 정부가 규제할 수 없다”며 “일종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생활방역 지침을 제시할 때 실천 가능한 대안을 함께 내놓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는 “아프면 3~4일 쉬라”고 권고한다. 하지만 노동자나 시민 입장에서는 고용불안과 소득감소를 감수해야 한다.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는 정부 지침이 필요한 이유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대책 안 보이는 인력부족, 열악한 근무조건

한편 현장 노동자들은 2차 감염확산 가능성을 앞두고 부족한 병실·의료인력이나 열악한 의료진 노동조건을 풀어야할 과제로 지목하고 있다.

김정희 보건의료노조 근로복지공단의료본부지부 사무국장은 “다른 병원도 마찬가지지만 근로복지공단 산하 병원은 기존에도 부족한 인력과 낮은 임금으로 인해 간호인력 충원이 어려웠는데 코로나19로 문제점이 두드러지고 있다”며 “적절한 보상과 처우개선이 이뤄져야 간호인력 충원도 가능하고 2차 확산에도 제대로 대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갑작스럽게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는 과정에서 빚어진 혼란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서해룡 노조 천안의료원지부장은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뒤 부랴부랴 1주일 동안 기존 환자를 내보내고 시설을 개조하거나 매뉴얼을 준비했다”며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만 했던 1주일이었다”고 말했다.

김정희 국장도 “전담병원 체계가 전혀 잡혀 있지 않아 자체적으로 매뉴얼을 만들고 체계를 만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감염자를 대비한 진료방안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평소 별다른 이상이 없던 성인만 코로나19에 감염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안수경 지부장은 “밥 먹는 것부터 시작해 모든 수발을 들어 줘야 하는 고령자나 신생아·정신과 질환자뿐 아니라 방 배치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되는 성소수자 환자도 있다”며 “국립중앙의료원은 정신 질환을 앓는 감염자를 받았는데 정신과 간호사가 몇 명 없어 다른 과 간호사들이 돌보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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