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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바꾼 지형] “획기적인 노동정책·사회변화로 이끌어야”

기사승인 2020.05.25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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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소득·전 국민 고용보험·그린 뉴딜 전면화

   
▲ 정부의 코로나19 고용대책은 고용보험 가입자를 주요 대상으로 한다. 택배·퀵서비스·대리운전 노동자 등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지난 2월20일 오후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코로나19에 대한 차별 없는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후 일부 진보적 의제가 현실이 되고 있다. 긴급재난지원금을 전 가구를 대상으로 지원한 데 이어 기본소득 도입 논쟁이 불붙었다.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 시기를 저울질하는 단계로 논의 속도가 급격히 빨라졌다. 정부는 산업 생태계 재편을 불러 오는 그린 뉴딜 추진을 공식화했다.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한 1월 말, 대구에서 집단감염이 시작된 2월 중순 이후 불과 3~4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다. 이제 코로나19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은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치료제 없는 감염병이 사회 진보를 추동하고 있다. 왜일까.

사회적 거리 두기 피해 취약계층이 짊어져

정부는 첫 확진자 발생 뒤 지역 간 전파를 조기에 차단하기 위해 진단검사를 늘렸다. 역학조사를 하고 의심자를 격리하는 강력한 방역 조치를 단행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강조하면서 사회·경제활동은 급격히 위축했다. 정부가 자랑하는 이 같은 방역 조치는 사회적 약자에게 가장 큰 충격을 줬다.

돌봄노동 부담이 여성에게 전가되고, 비정규직과 특수고용 노동자는 고용불안에 내몰렸다. 영세 자영업자는 폐점과 다를 바 없는 위기에 맞닥뜨렸다. 취업시장이 얼어붙어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취약 노동자들은 생계를 지키기 위해 감염 위험에 노출된 채 일했다.

콜센터 노동자들이 그랬다.

반면 괜찮은 일자리를 차지한 이들은 자택근무, 출퇴근 시간 조정, 온라인 교육 같은 선택지를 받아 들었다. 약자는 저녁밥을 걱정하지만 중산층은 저녁이 있는 삶을 말하는 역설이 나타났다. 황선웅 부경대 교수(경제학부)는 “대규모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 두기 정책으로 발생한 경제적 부담을 취약계층이 더 많이 짊어졌다”고 진단했다.

재난기본소득, 논의부터 현실화까지 한 달도 안 걸려

기본소득은 노동당이 줄곧 선점했던 정책 이슈다. 노동당은 이 정책을 두고 내부 진통 끝에 지금의 노동당과 기본소득당으로 분당했다. 2017년 대선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당시 성남시장)가 주장하기도 했다. 코로나19가 비상한 위기를 불러오고 노동자·영세 자영업자 같은 취약계층을 기존 사회복지 시스템으로 구제할 수 없는 현실이 도래하면서 기본소득 논의는 다시 점화했다. 경제적 어려움이 처한 이들에게 긴급한 경제적 구호 조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민간연구기관 랩2050 윤형중 정책팀장이 2월26일 언론에 재난 기본소득을 검토하자는 의견을 냈고, 이재웅 전 쏘카 대표가 같은달 2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50만원 지급’을 제안하면서 크게 확산했다. 이 전 대표는 랩2050 후원자이기도 하다.

이후 여당 일각에서 재난시기 기본소득 지급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고, 전주시는 지방자치단체 중 최초로 1인당 52만7천원을 지원하는 내용의 조례를 3월13일 통과시켰다. 경기도와 서울시도 뒤따라 재난기본소득을 도입·시행했다. 중앙정부도 지난 11일부터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긴급재난지원금을 시행했다. 논의가 촉발하고 현실화하는 데 한 달도 걸리지 않은 셈이다.

흥행에 힘입어 4·15 총선에서는 기본소득을 정체성으로 삼고 있는 기본소득당·시대전환이 더불어민주당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에 참여해 각각 의원 1명을 배출했다. 재난기본소득·재난지원금은 보편적 지급과 지속적 지급을 주요 특징으로 하는 기본소득과는 성격이 다소 다르다. 코로나19 사태로 체력을 쌓은 기본소득 이슈는 21대 국회에서 논의가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노총은 코로나19고용위기 신고센터를 개설해 실업위기에 놓인 노동자들을 상담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 ‘가야 할 길’로 자리 잡아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 논란도 주변부에서 시작해 중앙정부로 옮겨 왔다. 정부는 코로나19로 고용위기가 현실화하자 세 차례에 걸쳐 관련 대책을 내놓았다. 2월28일 고용안정 대책, 3월30일 취약계층 생계보호 추가대책, 4월22일 고용안정 특별대책이다. 해고 대신 유급휴직으로 유인하기 위해 고용유지지원금 지원 수준을 90%까지 올리고, 특수고용직·프리랜서 생계지원 대책을 연이어 내놓았다.

고용충격은 예상 외로 심각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통계청 고용동향을 재분석했더니 코로나19 발생 직후인 2월 이후 두 달 사이 취업자가 101만8천명이나 감소했다. 감소한 취업자는 여성(61만7천명)이 남성(40만1천명)보다 월등히 많았다. 종사상 지위별로는 임시직(45만2천명, 9.6%)이 가장 많이 감소했고, 이어 상용직(21만6천명, 1.5%)·일용직(13만9천명, 10.2%)이 뒤를 이었다. 임시·일용직 10명 중 1명이 일자리를 잃었다는 얘기다.

이창근 민주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고용유지지원금·일자리안정자금·무급휴직자 신속 지원을 포함한 주요 고용유지대책은 고용보험 가입자만 대상이고 특수고용직·간접고용 노동자 같은 사각지대 노동자는 포함하지 않는다”며 “코로나19 대책의 수혜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고용위기에 무방비로 노출됐다”고 분석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처음 코로나19가 발생했을 당시에는 사태가 장기화하리라 판단하지 않았다”며 “짧게 끝날 줄 알고 기존 제도를 보완해서 시행하는 대책을 내놓았는데, 사태가 장기화하고 노동시장 취약구조 문제가 겹쳐지면서 정책 효과가 반감했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고용유지대책 개편을 준비하고 있다.

고용보험 사각지대는 얼마나 될까. 통계청 경제활동인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전체 취업자 중 고용보험 가입자 비중은 49.4%다. 구직급여(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7개월(180일) 이상 가입자는 41.6%로 떨어진다.

총선에서 민중당은 정당 최초로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진보정당의 공약은 어찌 됐든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으로 현실이 돼 가고 있다. 문 대통령이 이달 10일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 “모든 취업자가 고용보험 혜택을 받는 전 국민 고용보험 시대의 기초를 놓겠다”고 말하면서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은 ‘반드시 가야 할 길’로 굳어지고 있다. 주무부처인 노동부는 취업자 소득정보 구축과 징수체계 개편 논의를 위한 범정부 기구 구성을 조만간 각 부처에 제안할 방침이다. 일하는 사람을 고용보험에 포괄하기 위해 정확한 소득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린 뉴딜 추진에 산업생태계 재편 논의 본격화

그린 뉴딜은 청와대와 정부가 주도권을 쥐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5일 환경부·산업통상자원부·중소벤처기업부·국토교통부로부터 그린 뉴딜 관련 합동 서면보고를 받은 뒤, 20일 “그린 뉴딜을 한국판 뉴딜 사업에 포함시키라”고 지시했다. 재생에너지 전력망 인프라 구축, 저소득 주택 효율화(리모델링), 미래차 육성 같은 사업을 추진한다. 기존 산업의 많은 부분을 재편하는 작업이어서 노동계·재계와의 대화를 동반할 것으로 보인다.

채준호 전북대 교수(경영학)는 “스페인 독감으로 북유럽 국가들의 복지제도가 바뀌고 2차 세계대전으로 영국이 복지제도를 바꿨듯이 코로나19가 우리 사회의 많은 분야를 바꿀 수 있다”며 “획기적인 노동정책·사회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 노동계와 전문가를 포함한 각 주체가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정남 jjn@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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