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관홍 공인노무사(공공운수노조법률원)

지난해 6월28일 고용노동부는 ‘계약 내용과 다른 업무 수행 중 발생한 화물자동차 운전자 사고 처리 지침’이라는 매우 긴 이름의 지침을 발표했다. 불가능에 가까웠던 화물노동자의 산재보험 적용을 일정요건이 되면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지침이 마련되기까지 화물노동자의 끈질긴 문제제기와 노력이 있었다. 언뜻 복잡해 보이지만 핵심을 요약하면 두 가지다. 하나는 계약업무 외의 업무를 수행하는 중이었는지, 둘은 직접적 또는 관행적인 업무 지시가 있었는지다. 이 두 가지 요건을 충족하면 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에서 고용한 일용직 또는 단시간 노동자로 보고 산업재해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지난 27일 8명의 화물노동자들이 이런 지침에 근거해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운전이 아닌 업무를 하다가 재해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계약상 화물노동자가 수행하는 업무는 당연히 ‘운전’이다. 보통 화물을 싣는 것을 ‘상차’, 내리는 것을 ‘하차’라고 하는데 8명의 화물노동자가 입은 재해는 모두 상하차 작업 중에 발생한 사고들(철제 구조물에 맞거나, 차에서 떨어지거나, 석회석 가루 등을 뒤집어쓰는 등)이다. 상하차 작업은 운전 업무가 아니다. 지침의 첫 번째 요건은 충족했다.

그렇다면 화물노동자가 이런 상하차 작업 등을 정말 내 일이라 생각하고 자발적이고 기쁜 마음으로 수행했을까? 위험해서 다칠 것을 뻔히 알고, 주변에서 다치는 동료들을 어렵지 않게 보는데 본래 업무가 아님에도 자발적으로 상하차 작업 등을 한다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없다. 하지만 관행적이고 묵시적인 업무 지시가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직접적인 업무 지시가 있는 경우에는 산재인정에 전혀 문제가 될 게 없다).

화물노동자들은 대부분 위탁자나 화주의 관행적이고 묵시적인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런 요구 대부분은 상하차 작업과 관련돼 있다. 심지어 화물노동자들에게 지게차를 직접 운전해서 물건을 싣거나 내리도록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만약 그런 요구를 따르지 않을 경우 공공연히 소문이 돌아 배차 불이익 등을 받게 된다. 화물 운송으로 생계를 이어 가야 하는 입장에서 그런 불이익을 감수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것이 관행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관행인가.

더욱이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상하차 작업이 이뤄질 경우 안전하게 작업하도록 관리·감독자를 배치하거나 다른 노동자 출입을 막는 것 같은 여러 조치가 필요하다. 그런데 사업장을 가 보면 해당 조치들이 이뤄지기는커녕 상하차 작업 자체를 할 사람이 없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누군가가 상하차 작업을 할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빨리 물건을 싣고 운반해서 다른 일들을 해야 먹고살 수 있는데 여유롭게 기다릴 수가 있을까. 화물노동자들이 상하차 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두 번째 요건도 충족한다.

결국 이번에 산재를 신청한 화물노동자들이 계약 업무 외 업무를 수행하다가 관행적이고 묵시적인 업무 지시가 있었다는 것은 충분히 확인 가능하다. 그러니 지침에 따르면 업무상재해가 맞다.

이번 8건의 사건은 조만간 사고가 발생했던 사업장을 관할하는 근로복지공단 지사로 이송될 것이다. 해당 지사에서 사고 조사를 통해 산재 여부를 판단한다. 우려스러운 점은 지사의 담당자들조차 이런 사건을 처음 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각 지사별로 다른 기준에 따라 다른 판단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공단 내부 논의를 통해 지역별 또는 권역별 담당기구를 두고 본부에서 일관된 사건 처리 기준을 정해야 한다.

노동부 지침은 지극히 협소한 경우만 산재를 인정하는 것이어서 불완전하다. 그럼에도 이런 지침조차 알지 못하는 화물노동자가 대다수다. 전체 화물노동자는 약 40만명인데, 그중 2만여명이 조직돼 있고, 이제 8명이 산재를 신청했다.

누가 무슨 일을 했든, 일을 하다가 다치면 그 누구도 소외받지 않고 사회가 보장하는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믿음에, 화물노동자들은 이제야 한 발짝 다가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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