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나영 기자

“타투는 문화다.” “타투이스트는 범법자가 아니다!”

전태일 열사가 근로감독관에게 여공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촉구하는 내용의 편지가 새겨진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 파사드(건물 정문 벽면) 앞에서 타투이스트들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외친 구호다. 그들 양 옆으로는 개와 고양이를 비롯한 반려동물들을 새긴 타투(문신) 작품 사진들이 액자에 담겨 전시됐다.

9일 오전 ‘타투할 자유와 권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장 풍경이다. 기자회견과 함께 타투전국순회전시회 <반려동물, 그리고 사람>이 개막했다. 이들은 “타투이스트들의 염원을 지지하고 옹호하기 위해 각계각층에서 공대위를 구성했다”며 출범 취지를 밝혔다. 타투가 창작예술의 한 장르로 인식되는 추세지만 의료인이 아닌 타투이스트는 현행법상 범법자 취급을 받는다. 타투가 의료행위로 분류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대위에는 노회찬재단·전태일재단·일과건강·문화연대·녹색병원·민변 노동위원회·한국타투인협회·화섬식품노조·노조 타투유니온지회·한국비정규노동센터를 비롯한 40여개 단체가 함께했다. 공대위 관계자는 “다른 단체들과도 연대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공대위가 구성된 것은 노조 타투유니온지회(지회장 김도윤)가 설립된 지 3개월여 만이다. 지회는 올해 2월27일 설립총회를 열었다.

“일반직업으로 인정 못 받아 … 사회안전망 사각지대”

공대위 출범 우선 과제는 타투이스트의 ‘일반직업화’다. 대법원이 1992년 타투를 의료행위라는 취지로 판결을 내린 이후 의사가 아닌 자가 하는 타투 시술은 불법으로 취급되고 있다. 의료법 27조(무면허 의료행위 등 금지)를 비롯한 관련법률은 의사면허가 없는 타투 시술을 단속 대상으로 보고 있다. 19대와 20대 국회에서 타투를 일반직업으로 규정하는 관련 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의료계 반대로 법 개정은 매번 무산됐다.

타투가 ‘일반직업’으로 인정받지 못하면서 타투이스트들도 자연스럽게 사회안전망 밖으로 밀려났다. 타투숍이나 타투 스튜디오에 고용돼 일해도 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개인 작업 형태로 일하더라도 개인사업자로 등록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김도윤 지회장은 “타투이스트로 개인사업자 등록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화가나 다른 직업으로 돌려서 사업자등록을 하는 사람도 있고, 아예 등록하지 못해 노동을 하고 있다는 어떠한 증빙도 안 되는 사람도 많다”고 전했다. 김 지회장은 “스튜디오나 숍에 소속돼 월급을 받는 식으로 일해도 숍 자체가 제대로 된 사업자가 아니다 보니 법적으로 증빙되는 노동자로 인정되지 못해 고용보험 같은 사회보장 혜택은 받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타투이스트의 일반직업화가 번번이 무산되는 이유는 의료계 이해와 맞물린 탓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 지회장은 “법안이 발의되면 결정적인 순간에 의사협회에서 ‘타투는 의료행위’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그러고 나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모든 입법 과정이 중지된다”며 “우리 입장에서는 복지위가 의사협회 로비로 돌아가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나라 문신 인구 1천300만명 중 1천만명이 미용문신으로 조사될 만큼 문신은 어마어마하게 큰 수익사업”이라며 “피부과나 성형외과의 이익을 대변해 줘야 하는 의사협회 입장도 이해는 가지만 부끄러운 이야기”라고 꼬집었다.

공대위 “타투는 예술이자 노동, 연대하겠다”

이날 공대위는 “타투이스트는 노동자”라고 강조했다.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은 “50년 전 전태일 열사도 인근에 있는 평화시장에서 봉제노동자로 일하면서 내가 누구인지 고민하다 결국 노동자이자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타투 노동자들도 이제 비로소 자기 정체성을 확립해 가는 귀중한 발걸음을 떼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응원했다. 이 이사장은 “우리나라 여러 법체계나 사회적 인식이 (발전하는 현실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는데 고쳐야 한다”며 “예술행위든 의료행위든 문화적 행위든 거기에 노동이 가미돼 있고 그걸 통해 임금을 받는 것이라면 모두 노동”이라고 말했다.

신환섭 노조 위원장도 “우리나라 케이팝이 전 세계적으로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듯, 타투도 불법이라는 틀에 묶여 있지 않으면 그만큼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며 “오늘 작품을 보니 타투가 예술이라는 것을 많이 느꼈다”고 전했다. 이종훈 녹색병원 기획실장은 “타투하시는 분들과 여러 협의를 하면서 ‘이게 예술 행위구나. 이걸 의료법이라는 테두리에 가둬 두면 안 되는구나’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었다”며 “타투 과정에서 손상을 줄일 수 있는 방식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을 위해 같이 협의하고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김도윤 지회장은 “노조를 만들고 어떻게 싸울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우리 역량이 부족함을 깨닫고 공대위를 꾸리게 됐다”며 “힘을 보태 줘 감사하다”고 말했다.

한편 공대위는 향후 타투 종사자 노동조건과 임금·감염 관리 상태를 포함한 실태조사 사업을 한다. 시민들의 타투 인식 개선을 위한 타투전국순회전시회도 이날 개막을 시작으로 공공장소나 갤러리 등에서 이어 갈 계획이다. 그 밖에도 △지상파·종편 화면 ‘타투 모자이크 처리 반대’ 사업 △법률 제·개정 △판례 변경과 헌법소원 청구 법률 자문·지원 △국회의원 면담 같은 사업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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