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도청

경남 창원 마산합포구 구산면 바닷가에 들어선 국내 최초 로봇테마파크인 로봇랜드. 2008년 국책사업으로 지정돼 12년간 7천억원의 사업비를 들인 끝에 지난해 9월 개장했지만 두 달도 되지 않아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로 위기를 맞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까지 덮쳐 올해 2월부터 아예 문을 닫았다. 새로운 운영사가 선정되면서 6월4일 가까스로 영업을 재개했지만 로봇랜드 노동자 112명 중 34명은 일터로 돌아가지 못했다. 비정규직 채용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경남도가 주최한 2019 조선산업&로봇랜드 채용박람회를 통해 정규직으로 입사한 로봇랜드 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사용자조차 불분명한 비정규직으로 전락했다.

정부가 ‘지능형 로봇’을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추어올렸던 2003년만 해도 꿈의 직업이라던 로봇랜드 노동자들은 “정규직으로 뽑아 비정규직으로 쓰는 신개념 일자리”라고 자조한다.

‘10만명 고용창출’ 장밋빛 그림
로봇법까지 만들었는데…


2003년 참여정부는 “2013년까지 국내 로봇 총생산을 자동차산업과 맞먹는 30조원 규모로 키워 세계 3위 로봇 강국으로 만들겠다”며 미래 먹거리로 지능형 로봇산업을 지목했다. 국회에서 2007년 지능형 로봇 개발 및 보급 촉진법(지능형로봇법)이 통과되면서 로봇랜드 사업에 시동이 켜졌다.

마산 바닷가에서도 오지라던 구산면 125만9천제곱미터 부지에 로봇전시체험장과 연구·개발(R&D)센터 및 컨벤션센터를 짓는 데 국비와 경남도비·창원시비 2천660억원이 들었다. 경남로봇재단이 위탁운영한다. 민간자본 1천억원을 유치해 테마파크를 조성했다. 대우건설이 주축인 민간투자사는 특수목적법인 경남마산로봇랜드주식회사(PFV)를 만들고, 테마파크 관리와 운영을 서울랜드에 위탁했다. 서울랜드는 다시 자회사인 서울랜드서비스를 만들어 테마파크 운영을 맡겼다.

로봇랜드는 개장 초반부터 고전을 면치 못했다. 연간 150만명(월 12만5천명)의 입장객을 예상했는데 3분의 1 수준(9만6천500명)에 그친 것이다. R&D센터 입주기업도 17개사에 불과하고 컨벤션센터 유치도 13건이 전부다.

올해 2월 민간투자자들은 손을 떼겠다고 선언했다. 표면적으로는 PFV가 사모펀드에 빌린 돈 950억원 중 50억원을 제때 갚지 못한 것이 발단이 됐다. PFV는 경남로봇랜드재단측이 펜션부지 1필지 소유권을 제대로 넘겨주지 않아 50억원을 상환할 수 없었다면서 디폴트 사태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경남도에 ‘경남마산로봇랜드 조성사업 실시협약’ 해지를 요구했다. 민간자본 3천340억원을 들여 호텔(160실)·콘도(242실)·펜션(104실) 등 관광인프라를 만드는 2단계 사업은 중단됐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로봇랜드 노동자 고용

실시협약 해지로 로봇랜드 테마파크 운영을 넘겨받은 경남도는 새 위탁운영사를 공모했다. 지난달 8일 서울어린이대공원 내 놀이시설을 운영하는 어린이대공원놀이동산㈜이 선정됐다.

문제는 기존에 고용한 로봇랜드 테마파크 노동자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로봇랜드 사업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경남도와 PFV는 실시협약에 지역주민 우선채용 조항을 넣을 정도로 고용문제에 신경 썼다.

PFV가 서울랜드로, 다시 자회사인 서울랜드서비스로 테마파크 운영관리를 위탁하는 과정에서도 계약서에 “본 사업을 위해 고용된 수탁자(또는 그 자회사)의 직원(임원은 제외함)과의 고용관계를 동일한 조건으로 승계하기로 한다”고 못 박았다. 서울랜드는 지난해 3월부터 로봇랜드에서 일할 ‘정규직’ 신입직원과 경력직을 모집했고 113명을 채용했다. 같은해 7월1일 서울랜드 자회사가 설립되면서 이들은 모두 서울랜드서비스로 이직했다.

2월 민간투자사가 손을 털고 실시협약 해지 선언을 한 뒤 경남로봇재단은 서울랜드서비스와 ‘비상관리·운영위탁계약’을 맺었는데 이때도 고용승계 조항은 유지됐다.

그런데 비상관리운영을 거쳐 새 운영사를 공모하는 과정에서 고용승계는 사라지고 기존 직원 우선채용으로 대체됐다. 지난해 3월부터 9월 개장 전까지 로봇랜드에 채용됐던 노동자들은 어린이대공원놀이동산㈜이 주관하는 면접을 다시 봤다. 어린이대공원놀이동산㈜은 이들에게 위탁운영기간에 맞춰 1년 계약 비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회사측은 회사 직인도, 보직도 적시하지 않고 1.5~7% 삭감된 급여와 계약기간 1년만 명시된 근로계약서를 내밀었다. 기존 직원 112명(1명 중도퇴사) 중 20명은 부당한 근로계약이라며 계약서에 서명을 하지 않았고, 13명은 제출한 뒤 철회 의사를 전달했다.
 

“민간위탁 근로조건 보호 가이드라인이라도 지켜야”

소시용 경남마산로봇랜드노조 위원장은 “고용보장을 위한 단체교섭을 요구했지만 위·수탁사 모두 자신들은 교섭 대상이 아니라며 발을 빼고 있다”고 말했다.

로봇랜드 관리책임을 맡은 경남로봇랜드재단은 “고용유지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한다는 방침이지만 원칙적으로 영업권 양·수도 당사자인 서울랜드서비스와 어린이대공원놀이동산㈜ 간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어린이대공원놀이동산㈜측도 “채용한 적이 없으니 해고한 적도 없다”며 근로계약 체결을 하지 않은 조합원의 출입을 막고 노조의 교섭 요구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소시용 위원장은 “경영이 어렵다면 급여삭감 같은 고통분담을 받아들일 수 있다”며 “그런데 이제 와서 직원이 아니라며 내치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7천억원의 사업비가 들어간 국책사업의 결말이 정규직으로 채용된 노동자 112명을 비정규직으로 만드는 것이었냐”며 “경남로봇랜드재단은 최소한 정부의 민간위탁 지침이라도 준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2월 정부가 발표한 ‘민간위탁 노동자 근로조건 보호 가이드라인’에는 민간위탁 사무를 수탁받은 기관은 우선 선정 단계부터 민간위탁 노동자의 근로조건 보호를 위한 확약서를 제출하고, 위탁계약 변경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고용승계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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