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대 노총 제조연대는 제조업 노동자 고용안정과 산업발전 지원을 위해 제조산업발전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18년 2월 국회 앞 결의대회 모습.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무노조 경영을 앞세운 포스코 안에서도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꾸준히 노조설립을 시도했다. 그런데 노조가 생기는 족족 해당 사업체를 분할매각해 버리는 거다. 작업권을 원청에 반납하고, 포스코는 그걸 여러 하청업체로 나눠 준다. 노동자들이 흩어지면서 자연스레 노조는 와해된다. 31년 역사를 가진 성암산업노조도 같은 사태에 직면했다.”

금속노련 관계자는 포스코 광양제철소 사내협력사인 성암산업 노사갈등을 이같이 설명했다. 성암산업은 원자재와 완성품을 운송한다. 최근 포스코와 계약한 전체 작업권을 다른 협력사에 넘긴 상태다. 기존 업무가 여러 개로 쪼개지면 사실상 회사가 분할되는 것과 다름없다. 김만재 금속노련 위원장은 “성암산업노조의 단체협약과 노조를 지키겠다”며 지난 24일부터 국회 앞 천막농성장에서 단식에 들어갔다.

기업 사고파는 데만 집중하다 보니
기업변동시 ‘고용·노동조건·단협 승계’ 제도 없어


대한민국은 영업양도·합병·분할·자산양도 같은 기업변동을 권장하는 나라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상법을 개정하면서 도입된 기업분할제도는 진화를 거듭했다. 기업도 사고팔 수 있는 상품이 되면서 기업 지배권 재편이라는 인수·합병이 활발해졌다. 2016년 정부와 국회는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기업활력법)을 제정해 얼마 남지 않은 규제마저 대폭 완화했다. 기업의 요구에 따라 사업재편·구조조정을 위한 편의를 제도화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고용과 노동조건, 노조활동 보장과 단체협약을 어떻게 할 것인지 제도화하지 않았다. 98년 상법 개정 후 22년이 지났는데도 노동자를 보호할 관련 법이 없다는 얘기다.

법이 없으니 사법부에 민원이 몰린다. 영업양도·합병·분할·자산양도시 불거지는 노동 현안에 사법부는 판례로 일련의 규칙을 만들었다. 영업양도·합병에서는 피인수회사와 노동자의 고용관계가 인수회사로 포괄적으로 승계된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합병을 주도하는 회사가 합병 전제조건으로 정리해고 등 구조조정을 요구할 경우 노동자가 대처할 방안은 없다.

기업 분할시 노동자 권리는 2013년을 전후로 달라졌다. 이전에는 분할하더라도 노동자가 근무지에 대한 거부권이나 동의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대법원은 2013년 현대그린푸드 노동자들이 분할회사로 전적을 거부한 사건에서 전적거부권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기존 판례를 뒤집었다. 이후 분할 전 회사와 맺었던 단체협약을 전적한 회사에 적용할 수 없다는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단협은 거래할 수 있는 상품이 아니라는 게 법원의 시각이다.

한국지엠 사건이 대표적이다.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는 회사가 자동차 연구개발사업 부분을 분할해 신설법인인 한국지엠테크니컬코리아를 설립하자 분할회사 직원도 조합원에 포함하는 내용의 규약을 개정했다. 지부 단협의 효력을 신설법인으로 확장하겠다는 의미다. 회사는 단협무효 소송을 냈고 법원은 이를 인정했다. 노조를 비롯해 전임자, 단협이 모두 승계되지 않았다. 신설법인의 단협은 어떻게 됐을까. 노사합의로 성과급을 정했던 것에서 개인 인사고과에 따라 회사가 임의대로 주는 방식으로 바뀌었고 그 밖에 노조 힘을 빼는 내용이 다수 들어갔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도 분할 과정에서 유사한 일을 겪고 있다.

용역·하청업체 노동자 고용불안 발생하는 까닭
“자산양도로 위장하면 고용승계 회피 가능”


가장 큰 문제는 자산양도에서 발생한다. 법원은 자산양도에서는 고용·노동조건·단협 일체의 승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김태욱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자산양도에서 일부 인원만 신규취업 형태로 승계하는 인적 구조조정이 자주 발생한다”며 “고용·노조·단협을 승계하지 않으려고 하는 영업양도인데도 자산양도로 위장하는 경우도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용역회사·사내하청회사는 원청과 맺은 계약기간이 만료하면 다른 업체로 영업양도를 해야 하는데, 일부 기업이 자산양도로 위장한다는 설명이다. 원청과 협력업체 계약기간 만료시기가 다가오면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고용불안을 호소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정부는 사내하도급 가이드라인과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에서 고용승계를 권고하고 있지만 선언적 수준이고 강제성이 없다.

쌍용자동차·파인텍·하이디스·콜트콜텍·기륭전자 사태 등 노사갈등이 극심했던 이들 사태는 모두 기업변동에서 발생했다. 노동계는 앞으로 제2·3의 기륭전자·쌍용차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괜한 걱정이 아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달 기준 제조업 고용보험 가입자는 352만9천명으로 1년 전보다 5만4천명 감소했다. 1998년 1월 외환위기 당시 10만명이 줄어든 이래 가장 큰 폭의 감소다. 제조업 고용보험 가입자는 지난해 9월부터 9개월 연속 감소하고 있다. 감소 폭도 2월(2만7천명)·3월(3만1천명)·4월(4만명)을 지나며 매달 커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이 제조업 위기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 구조조정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정부·여당도 비슷하게 예상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코로나19가 휩쓸던 중에 치러진 4월 총선에서 “사업이전시 고용승계 제도화로 하청업체 노동자의 고용안정과 근로조건을 보호하겠다”고 공약했다. 여당 관계자는 “기업변동 과정의 구조조정은 코로나19 사태로 심화할 수 있고 이후 4차 산업혁명 등 산업재편 과정에서 일상적으로 발생할 수 있어 대응이 필요하다”며 “대기업 구조조정은 노조가 방어를 할 수 있다고 하지만 힘없는 용역업체나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속절없이 위기에 노출될 수 있어 보호방안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부·여당 ‘고용승계’ 제도개선 추진

여당은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고용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노조법) 개정으로 노조·단협을 승계하고,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근로자참여법)에 기업변동시 노동자와 사전 협의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을 담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부분 땜질로는 복수노조·교섭창구 단일화 같은 노동제도와 간접고용 노동자 사용 확대로 변화한 노동시장 상황을 반영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법학)는 “고용·단협승계와 교섭창구단일화 절차 등 대응해야 할 문제가 한두 개가 아니기 때문에 기존 법에 몇 개 조문을 추가하는 것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며 “여러 문제를 체계적으로 접근·해결할 수 있는 통합된 법안을 제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그는“거대여당이 의지가 있다면 정부입법으로 가능하다”고 말했다.

양대 노총은 정부·여당에 제안하고 있는 제조업발전특별법 제정을 중심으로 논의가 확대하길 기대하고 있다. 특별법은 노조가 참여하는 제조산업협의체를 구성해 산업발전 방향을 모색하고, 구조조정을 하려면 사회적 협의기구 논의를 반드시 거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태욱 변호사는 “제조·서비스업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이 상시로 일어나고 앞으로 심각해질 가능성이 있어서 이에 대비하는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며 “입법·제도개선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태교 금속노련 조직국장은 “노동계조차 이 문제에 대해 논의를 하다 말기를 반복하고 있다”며 “기업변동을 교묘하게 이용해 구조조정 등에 악용하는 사례가 확산할 수 있기 때문에 양대 노총 제조연대 차원에서 사업을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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