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 주최로 2일 오후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열린 산재·재난참사 피해자·유가족·동료가 함께 마련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법안설명회에서 최명선 운동본부 상황실장이 발언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20대 국회에서 제대로 된 논의 없이 임기만료로 폐기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21대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민주노총을 포함한 170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운동본부(운동본부)와 한국노총이 2일 각각 중대재해기업처벌 관련 법률(안)을 발표했다.

제정운동본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공무원도 처벌대상·10배 범위 내 징벌적 손해배상


지난 5월27일 발족한 운동본부는 2일 오후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중대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 책임자 처벌법 법률(안)’ 설명회를 열었다.

운동본부 법률(안)에 따르면 사업주 및 경영책임자 등이 안전보건에 대한 위험방지 의무를 다하지 않아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3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5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사망을 제외한 중대재해의 경우에는 5년 이하의 유기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중대재해가 발생한 법인에 대해서는 1억원 이상 20억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 이 법은 지난달 30일 운동본부 대표자회의를 거쳐 확정됐다.

중대재해의 책임과 처벌을 강화하기 위해 적용 대상을 특수고용 노동자·하청노동자로 확대하고, 책임주체도 원청이 처벌대상에 포함되도록 명확히 했다. 감독·인허가권한과 관련된 주의의무를 위반해 중대재해를 야기한 공무원도 처벌 대상이다.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상 3억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된다.

형사처벌만으로는 산재예방이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넣었다. 사업주 및 경영책임자 등이 고의 또는 중대 과실로 중대재해를 야기했을 때는 손해액의 10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배상 책임을 지게 했다.

시민재해도 포괄해야
동일기업 동일유형 반복사고 막기 위해 인과관계 추정 조항 삽입


중대재해 정의규정에서 산재뿐만 아니라 시민재해를 포괄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사고성 재해만이 아니라 공중이용시설이나 공중교통수단 이용 중 재해, 화학물질로 인한 질병, 일터 괴롭힘으로 인한 죽음 등도 중대재해에 포함했다.

같은 사업장에서 동일한 유형의 산재사고가 반복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과관계 추정’ 조항도 명시했다. 법안 7조에 따르면 당해 사고 이전 5년간 법 위반 사실이 3회 이상 확인된 경우 위험방지의무를 위반해 중대재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 손익찬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반복되는 중대재해는 기업의 안전보건 체계가 무너져 있을 때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근거로 만든 조항”이라고 설명했다.

운동본부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을 대중운동으로 이끌어 나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최명선 운동본부 상황실장은 “법안 발의가 국회에서 이뤄져도 한번도 심의되지 못했다”며 “대중적 요구로 발의해야 심의가 강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설명회에는 2017년 삼성중공업 현장에서 크레인사고를 당한 노동자 박철희씨를 포함해 산재사고로 동료와 가족을 잃은 사람들과 스텔라데이지호·세월호 참사 유가족 등이 참석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한국노총 중대산업재해예방 기업처벌법(안) 마련
중대산업재해 일으킨 기업에 벌금 최소 10억원 


한국노총도 이날 ‘중대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기업 및 대표자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을 마련했다. 한국노총은 전문가와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포럼을 두 차례 열고 문항 하나하나를 조정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 법에 따르면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한 기업은 최소 10억원 이상의 벌금형에 처한다. 기업의 대표자가 교사·방조·묵인하거나 과실로 이를 방치해 중대산업재해를 일으킨 경우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억원 이상의 벌금형을 받도록 했다.

중대산업재해를 일으킨 기업과 기업주를 엄벌해 산재예방의 실질적 효과를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래서 법안의 적용 범위와 처벌 대상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운동본부의 법안과는 차이가 있다.

우선 한국노총 법안은 적용 범위를 산업재해에 한정했다. ‘중대산업재해’ 정의를 새로 만든 이유다. 중대산업재해는 2명 이상 사망, 3명 이상 사상 또는 3년 연속 사망자가 발생하거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기업의 재해를 말한다.

처벌 대상 기업에서 개인사업장은 제외시켰다. 주식회사처럼 상법에서 규정하는 회사이거나 공공기관·공기업으로 처벌 대상을 한정한 것이다. 한국노총은 “개인사업주가 운영하는 사업장에서 2명 이상 노동자가 숨지는 재해는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과 이들 영세 사업장에 법을 적용하면 예방효과보다 개인 파산 우려가 더 크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대신 법의 보호를 받는 대상은 ‘노무를 제공하는 자’로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1인 자영업자까지 포함시켰다.

기업의 범죄능력을 인정하는 조항을 신설한 것도 눈에 띈다. 현행법에 법인 범죄능력을 인정하는 규정이 없는 데다, 법인이 범죄 주체가 될 수 있느냐의 논란 때문에 그동안 노동자가 무더기로 산재 사망사고를 당해도 기업은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한국노총은 “이 법 적용에 있어서 기업은 범죄능력이 있다”는 조항을 만들었다.

한국노총은 조만간 시민·사회단체와 토론회를 열고 법안에 대한 의견을 모은다. 이후 한국노총은 더불어민주당 노동존중실천의원단을 통해 의원입법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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