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김태규 부산지법 부장판사가 또 페이스북에 ‘표현의 자유’를 언급하는 글을 올렸다.

김 판사는 정부의 대북전단 처벌 방침과 여당의 역사왜곡 금지법 추진에 “표현의 자유가 신음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번엔 A4용지 10장 분량이었다. 조선일보가 지난달 23일 12면에 “현직 부장판사 ‘대북전단 처벌 … 표현의 자유가 신음하고 있다”는 제목으로 이를 보도했다.

김 판사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있는 경우에만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미 대법원 판례를 제시했다. 김 판사는 5·18 민주화운동이나 세월호 참사를 왜곡하는 걸 처벌하려는 역사왜곡 금지법안엔 “전체주의나 독재국가가 아니면 착상하기 어렵다”고 했다.

김 판사는 2018년 11월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농단에 연루된 법관 탄핵을 결의하자 “법적 근거 없이 권한을 남용한 전국법관대표회의를 탄핵해야 한다”고도 했다. 앞서 김 판사는 2018년 1월엔 법원 내부통신망(코트넷)에 올린 글에서 사법농단에 연루된 판사들 PC를 강제 조사한 걸을 두고 “영장주의라는 형사법의 대원칙에 위반된다”고 지적했다. 3주 뒤엔 “블랙리스트는 없었다”며 강제조사를 강행한 판사들에게 해명을 요구하는 글을 다시 올렸다.

김 판사는 지난해 7월엔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도 A4용지 26장 분량의 비판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김 판사는 “대법원이 신의칙 같은 보충적 법 원칙으로 민법 법리를 허물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특이한 이력을 가진 판사다. 경주에서 태어나 서너살 때 울산에 와서 학성고를 나온 그는 85년 연세대 법학과에 들어갔다. 세 학기를 마치고 18개월 방위병으로 군에 갔다 왔다.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군 법무관을 지내는 판사들과 달랐다. 96년 고시에 합격한 그는 28기로 사법연수원을 마쳤다. 90년대 말부터 고향 울산과 부산에서 변호사로 5년 남짓 일하다가 경력 법관 채용으로 마흔 줄에 판사가 됐다. 20대 후반에 판사가 돼 세상 물정 모르고 법 논리만 캐는 이들과 많이 다르다.

김 판사의 변호사 시절 일화다. 울산 경실련은 2001년 3월 하천지구에서 주거지역으로 용도변경된 울산시 중구 태화들이 홍수범람과 도시경관 저해 같은 문제가 많다며 용도변경 과정을 알기 위해 도시계획위원회 회의록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울산시는 이를 거부했고, 경실련은 시를 상대로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 소송을 냈다. 김 판사는 당시 울산 경실련 집행위원으로 소송에 참가해 그해 10월 법원으로부터 회의록을 공개하라는 판결을 받아냈다. 당시 그는 승소 직후 국제신문에 “이번 판결은 시민의 알 권리 충족과 함께 자치단체 정책결정 과정에서의 투명성을 확보, 각종 용도변경 의혹을 파헤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대북전단 살포 처벌과 역사왜곡 금지법 추진을 비판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동원했다. 여기, 그가 2015년 대구지법 판사 때 내린 2건의 판결이 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과 정윤회 사이의 의혹을 제기하는 유인물을 뿌린 박성수 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박씨는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김 판사는 2015년 경북 청도군 삼평리 송전탑 건설에 반대한 최창진 씨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김 판사는 “경찰관에게 물리력을 행사하고도 반성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이 사건도 항소심에서 무죄가 나왔다.

당시 송전탑 반대운동에 참가한 이들은 고령의 마을 주민과 한 줌의 시민이었다. 경찰은 내내 주민을 조롱했다. 진압 뒤 경찰은 산 속에서 브이(V)자를 그리며 환히 웃는 기념사진도 남겼다.

20년 전 시민의 알 권리를 위해 부당한 공권력(울산시)과 싸웠던 김 판사는 현실과 멀어지면서 점차 전문가주의에 빠져 법 기술자가 돼 간다. 안타깝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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