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택배연대노조가 8일 오후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고 서형욱 택배노동자의 죽음과 관련해 규탄 기자회견을 했다. 고인의 누나 서형주씨가 발언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CJ대한통운에서 일하는 특수고용직 택배노동자가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노조와 유가족은 과로사로 추정했다. 지난 5월 광주에서 일하던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와 3월 사망한 쿠팡 노동자를 포함하면 올해 확인된 택배노동자 죽음만 벌써 세 번째다.

택배연대노조는 8일 오전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연이은 택배노동자 사망에 책임을 지고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노조에 따르면 CJ대한통운 김해터미널 진례대리점에서 일하던 서형욱(47)씨가 지난 5일 새벽 숨졌다. 그는 토요일인 지난달 27일 가슴 통증을 느낀 뒤 다음 날인 일요일 참다못해 병원에 갔다. 27일 고인을 지켜본 동료들은 “계단 두세 개 오르는 것도 힘들어 했다”고 노조에 전했다. 그는 29일 심혈관 시술을 받고 이후 의식을 회복했지만 끝내 심정지 판정을 받았다.

누나 서형주(49)씨는 기자회견에서 “기저질환이나 지병도 없던 건강한 40대 남성이었다”며 “가족들에게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최근에 친구들에게 ‘일하며 힘들다’고 말했다더라”고 전했다. 그는 “병원으로 가 수술하고 입원하는 동안에도 주변 친구에게 일을 부탁하고 일처리를 해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고인은 지난해 했던 건강검진에서도 정상 소견을 받았다.

김세규 노조 교육선전국장은 “코로나19로 인해 평균 30~40% 늘어난 물량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며 “지금도 수많은 택배노동자가 물량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침 7시부터 하루 12~17시간, 주 6일 근무한다”

고인의 업무량은 과로사를 의심할 만한 수준이다. 고인은 오전 7시 출근해 빨라야 오후 7시, 늦으면 자정이 다 돼 퇴근했다. 노조는 “이렇게 하루 300군데를 방문하고 주 6일을 일하며 병원에 가지도 못했다”고 주장했다.

노조에 따르면 최근 3개월간 고인은 월 6천700~7천600개 물량을 배달했다. 노조는 과로사와 업무상재해·산업재해를 규명하기 위해 이전 근무현황을 사측에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고 전했다.

진경호 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이렇게 배달하다 큰일 난다고 원청인 CJ대한통운에 인력배치를 수없이 얘기했으나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며 “CJ대한통운과 대리점에 업무기록을 요구했는데 자료도 안 주고 전화도 안 받는다”고 비판했다. 유족과 노조는 산재를 신청할 계획이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지사장을 포함한 직원들이 조문을 갔었다”며 “전 사업장에 혈압측정기 등을 배치해 자가 건강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장시간 노동 문제에 관해서는 택배노동자의 배송물량과 수입이 연결돼 있어 강요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쉴 권리도, 병원 갈 권리도 보장되지 않는다”

노조는 “택배노동자들은 몸이 안 좋아 쉬려고 하면 해고위협을 당하거나 배송비보다 두세 배 비싼 비용으로 대체배송을 강요당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3일에는 울산의 CJ대한통운 택배기사가 3개월째 쉬지 못해 도로 위에서 쓰러진 일도 있었다. 그 역시 ‘콜밴비’ 라고 불리는 대체배송비를 강요받아 아파도 출근했다고 한다.

김세규 노조 교육선전국장은 “월차·연차도 없이 일하고 이른바 공짜노동이라고 불리는 오전 분류작업을 한다”며 “택배노동자의 쉴 권리 보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서울노동권익센터는 지난해 발간한 ‘서울지역 택배기사의 노동실태와 정책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서울 택배기사의 평균 노동시간이 연간 3천848시간이라고 발표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노동시간 1천764시간, 우리나라 노동자 평균 노동시간 2천69시간에 비해 훨씬 높다. 센터는 “어떤 직종보다도 높은 노동시간을 확인했다”며 “택배업체가 인력을 확보해 휴게 및 휴일을 보장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