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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와 일본 사이 어딘가로 가는 세계

기사승인 2020.07.09  08: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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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최근 선진국 사이에서 일본화에 대한 우려가 많이 나온다.

일본화는 저성장·고령화가 오랫동안 이어지며 정부 부채가 지속해서 증가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하지만 일본화는 우려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오늘날 선진국이 도달할 수 있는 최선일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 봐야 한다.

나는 한국을 포함해 세계 상당수 국가가 일본은커녕 얼마 전 국가부도를 겪은 아르헨티나와 오히려 비슷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세계가 오랫동안 빚과의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어서다. 2020년 이후 세계는 국민경제가 어느 수준의 부채를 얼마나 오래 버텨 낼 수 있는지를 두고 혼란을 겪을 것이다.

아르헨티나에서는 1980년대 이래 40년 넘게 저성장과 공황이 반복되고 있다. 2005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980년과 같을 정도다. 1970년대 경제개혁에 실패했고, 1980년대 내내 정부가 인기영합적 복지정책과 비합리적 산업정책 사이에서 좌충우돌했다. 그러다 미국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으로 금융시장이 무장해제되자, 1982년·1989년·2001년·2014년·2020년에 국가가 부도나 버렸다.

아르헨티나 경제 특징은 경제위기가 항상 외채위기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대외부채의 악순환이 아르헨티나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단적인 예로 국민경제에 대한 국내외 금융기관의 신뢰가 낮다 보니 정부마저도 채권을 달러로 표시해 발행할 지경이다. 국내에서 가장 안정적 채권이라 할 국채 만기가 1년 남짓에 불과하고, 이자율도 두 자릿수로 무지하게 높다. 정부가 경제개혁과 성장에 나서려고 해도 외채 부담으로 자포자기할 수밖에 없다. 외채 이자로 국부가 계속 유출돼 국내 자본축적도 더디다.

외채의 늪은 낮은 국민 저축률과 무역수지 적자로 고착됐다. 낮은 저축률은 국내 자본축적을 위한 자금을 외부에서 조달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고, 무역수지 적자는 높은 이자율로 달러를 빌려 올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국부유출과 외채위기가 서로를 증폭하는 악순환이 4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은 자산시장 거품 붕괴로 경제침체에 빠진 1991년부터 20년간 연평균 1인당 GDP 상승률이 0.5%에 불과했다. 잃어버린 20년이라 불리는 시기다. 이 기간 세계에서 가장 빨랐던 고령화로 인구 문제까지 발생했다. 정부가 경제침체에 대응해 오랜 기간 재정적자를 이어 갔는데, 그 결과 60%대였던 정부 부채가 2010년대에는 230%대까지 증가했다. 일본은 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200%대 정부 부채비율을 유지하는 나라다. 물론 정부의 재정정책으로 경제가 살아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일본은 외채위기나 재정위기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정부가 재정지출에 필요한 자금을 국내에서 조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본 국민은 GDP의 25~30%를 저축했고, 은행들이 이 저축으로 정부 국채를 끊임없이 구매했다. 이를 장기침체에 대응하는 일본식 사회계약이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정부는 빚이 계속 증가해도 국민 저축의 힘으로 낮은 이자율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 더구나 일본은 저성장 와중에도 무역적자를 기록한 적이 없었다. 매년 큰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무역흑자로 번 달러로 막대한 외환도 보유했다. 일본은 지금도 미국 정부의 첫 번째 채권국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주요 20개국 정부 부채가 1944년 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보다 더 높아질 것으로 예측했다. 현대적 재정정책이 만들어진 후 최고치다. 선진국들은 2009년 세계 금융위기에 대처해 10년 가까이 정부 부채를 늘렸는데, 코로나19에 대응하다 또다시 부채를 크게 늘렸다. 참고로, 2차 세계대전 직후 선진국 정부가 부채를 해결할 수 있었던 힘은 고도성장이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30년간의 성장이 정부 빚을 알아서 해결해 줬다. 하지만 현재는 고도성장은 꿈도 꾸기 어렵다. 20세기 미국과 같은 역할을 할 세계적 리더도 없다.

세계 각국 정부는 지금부터 정부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물론 빚을 단기간에 털어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코로나19 사태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그 후유증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정부가 국내에서 방역과 경제침체에 대처할 자금을 모을 수 없는 경우 아르헨티나와 같은 외채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커진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미 80여개 나라가 IMF에 구제금융을 타진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가 국내에서 자금을 모집할 수 있는 경우 일본과 같은 경로를 오랫동안 걸어야 할 것이다. 미국처럼 무제한 통화를 발행할 수 있는 기축통화국이 아니라면, 국내 저축과 무역흑자가 오랫동안 뒷받침돼야 정부가 빚을 감당할 수 있다. 세계 각국은 잘하면 일본이 되고, 못하면 아르헨티나가 되는 처지에 몰렸다.

한국은 지금까지 일본과 비슷한 경로를 걸었다. 높은 저축률과 오랫동안 이어진 무역흑자로 나름대로 정부가 위기에 대처할 여력이 꽤 있는 편이다. 하지만 2010년대 저축률은 빠르게 하락하고 있고, 무역수지도 코로나19 이후 급격하게 나빠지고 있다. 더욱이 고령화에 대비하는 구조개혁은 정치권의 포퓰리즘 정치 속에서 하염없이 미뤄지고 있다. 그러니 조건은 나빠지는데, 정부 빚은 앞으로 더 빠르게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일본에서 아르헨티나쪽으로 이동 중에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2010년대부터 일본화를 피해야 한다며 여러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현재 필요한 것은 일본화를 피하는 대책이 아니라, 일본처럼 오랫동안 침체에 대처할 수 있는 민간과 정부의 준비일 것 같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jwhan77@gmail.com)

한지원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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