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호 공인노무사(삼현공인노무사)

강원도 동해시. 이곳엔 쌍용양회라는 거대한 시멘트 공장이 있다. 공장에 들어가면 공중에는 모노레일 같은 것이 북평항으로 이어지면서 완성된 시멘트를 항구로 실어 나르고 있다. 제조공정마다 배치돼 육중한 중장비들을 운용하는 하청회사가 ‘동해중기’다. 물론 중장비는 모두 원청사인 쌍용양회 소유다.

이 하청회사에 소속된 노동자들이 2018년 노조를 설립하고, 고용노동부가 불법파견으로 인정한 사건이 검찰로 가면서 적법한 하도급으로 변경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현재는 소송을 제기한 상황이다. 지난해 말 바로 옆 하청회사 사장이 이 회사의 사장으로 들어왔다. 참고로 원청 계열사의 노조위원장 출신이며, 몇 년 전에는 강원도 도의원까지 했던 인물이다.

지난해 말부터 원청사에서 도급을 해지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런데 도급해지 대신에 원청사는 물량 도급계약이 아닌 개별적인 공정마다 도급계약을 맺는 방식을 선택했다. 물론 불법파견 사건을 한 번이라도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물량 도급’ 역시 임률도급을 가리기 위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인력파견회사인 하청회사의 실체를 목도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가림막을 실체인 양 위장하기 위해 칸막이를 하나하나 세운다는 것이다. 물론 현재 진행 중인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보려는 꼼수다.

원청사는 각 공정별 개별 도급계약서 여러 장을 작성하면서 결국 북평항쪽의 도급업무를 해지했다. 여기에 해당하는 인원이 정규직 3명, 촉탁직 1명이었다. 사실 원청사에 의한 하청업체 정리해고의 시작이었다. 이런 와중에 올해 2월께 하청업체 직원 한 명이 대기발령을 받았다. 사무실에서 회계업무를 담당하던 여성이었다. 권고사직을 수차례 요구받고, 이에 응하지 않자 대기발령을 낸 것이다. 그로부터 5개월이 지났다.

처음부터 기약이 없는 대기발령이었다. 대기발령 사유와 기한이 명시돼 있지 않았다. 여성인 사무직 노동자를 먼저 정리하는 것이 제일 손쉬운 방법이었다.

사측은 향후 하청노조와의 힘겨루기에서도 정리해고 카드를 계속 만지작거리며 노조를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강원도 삼척 동양시멘트에서 하청업체 도급해지로 100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던 일이 불과 몇 년 전이다.

3월부터는 사무직 여성노동자 대기발령 장소가 창고로 변경됐다. 그런데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은 계속 들어오고 있다. 대기발령 구제신청 사건을 본격적으로 준비한 시점은 5월이었다. 사실 대기발령 3개월이 되면, 통상적으로 면직할 것을 예상하고 구체신청 시점을 5월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동안 부당한 상황이 계속 반복되고 있었다. 취업규칙에 따른 자동면직은 하지 않은 채 여성으로서 감내하기 힘든 상황이 계속됐다.

처음에 사무실과 동떨어진 창고로만 알았던 대기발령 장소는 남성들의 간헐적인 휴게공간이었다. 냉난방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비위생적인 공간이었다. 누가 봐도 사직을 받아들이지 않아 내려진 보복성 처분이며, ‘직장갑질’이었다. 남성에 대한 정리해고에 앞서 방패막이로 내세워진 상황으로 인식하고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점은 지금도 후회된다.

한편 대기발령 기간 내내 하청업체는 정리해고에 앞서 하청노조에 노사협의를 하자고 공문을 보내고 협상을 촉구했다. 하청노조는 재무제표 같은 경영자료를 요구했다. 이에 하청업체 사장은 “너희가 이거 보면, 무슨 뜻인지 아니?”라고 하면서 노조를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현재도 이런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다행히도 지난 8일 강원지방노동위원회는 부당한 대기발령으로 이 사건을 인용하면서 노동자 손을 들었다. 사측에서는 월급을 다 줬으니 각하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기약 없는 무기한 대기발령이 인사권의 재량 범위를 벗어난다는 모두의 상식대로 결론이 내려졌다. 해당 여성노동자에 대한 즉각적인 원직복직을 포함해 하청업체 사장의 전향적인 조치가 요청된다.

이 사건은 원청사를 상대로 소송을 낸 하청노동자들에게 괘씸죄를 씌워 개별도급이나 정리해고로 괴롭히다가 발생했다. 불똥이 엉뚱한 곳으로 튄 것이다. 문제의 근본적 원인이 잘못된 원·하청 구조인 점은 부정할 순 없다. 그러나 쌍용양회 회장이 구속되지 않는 한 소송 결과로 원·하청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뀔 수는 없을 것이다. 향후에도 이번 사건처럼 고용이 더 불안해질 수 있는 노동자는 없는지 살피는 적극적인 세심함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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