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노총 추천 노동자위원들은 공익위원이 1.5% 인상안을 제시하자 이에 반발해 전원회의장에서 퇴장했다. 기자들에게 공익위원안을 규탄하는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제정남 기자>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을 역대 최저 수준(1.5%)으로 결정하면서 공익위원과 노동자위원 역할을 두고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공익위원은 지난해 2.87% 인상을 주도한 데 이어 올해도 사실상 사용자쪽 요구를 들어주면서 편향된 공익위원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됐다. 민주노총은 한국노총과 조율 없이 장외에서 1만770원을 요구하며 공동전선을 흔들었고, 담판을 짓는 최저임금위 회의에는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 한국노총이 회의 막바지 퇴장하면서 2021년 최저임금은 공익위원·사용자위원 표결로 결정됐다.

최악의 공익위원?
지난해 2.87%, 올해 1.5% 결정


최저임금위는 14일 새벽 전원회의를 열고 내년 최저임금을 시급 8천720원, 주 40시간 기준 월급 182만2천480원으로 확정했다. 시급은 130원, 월급은 2만7천170원 인상하는 안이다. 마지막 전원회의에는 노동자위원 모두와 사용자위원 2명이 퇴장해 공익위원 9명과 사용자위원 7명이 표결에 참여했다.

최저임금위의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은 철저하게 공익위원 의도대로 이뤄졌다. 민주노총이 자리를 만들어 줬다. 민주노총은 지난달 18일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시급 1만770원, 월 225만930원을 요구안으로 확정했다. 올해 최저임금(8천590원)보다 25.4% 인상한 규모다. 양대 노총 간 사전 합의로 최저임금위 노동자위원 단일요구안을 제시했던 전례를 따르지 않았다. 지난 1일 최저임금위 4차 전원회의를 앞두고야 시급 1만원을 단일 요구안으로 정했다. 이후에도 민주노총은 양대 노총 공조에 힘을 기울이지 않았다. 지난 2일 중집에서 두 자릿수(10%대) 인상을 마지노선으로 정했다. 민주노총 노동자위원회에게 교섭 지침을 하달한 셈이다. 한국노총이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노동계 단일안을 내지 않기로 했다.

노사가 1차 수정안을 제시하기로 한 지난 9일 전원회의 개최를 앞두고 민주노총 노동자위원들은 “사용자의 삭감안이 예상돼 수용할 수 없다”며 회의장에서 퇴장했다. 이날 한국노총은 한 자릿수인 9.8% 인상안을 수정안으로 냈다. 민주노총의 이 같은 기조는 담판을 짓는 13일까지 이어졌다. 최저임금위 전원회의에 참여해 최저임금 결정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견이 내부에서 나왔지만 다수 중앙집행위 위원들과 민주노총 노동자위원 4명 중 일부가 반대했다. 결국 한국노총 노동자위원 5명만 회의장에 들어갔다.

노동자위원 부족으로 표결 가면 불리
한국노총, 공익위원에 '실낱 희망' 기대했지만


최저임금 결정 권한은 공익위원에게 넘어갔다. 사용자위원과 노동자위원들은 공익위원 심의촉진구간(0.35~6.1%) 내 논의에서도 접점을 찾지 못하자 공익위원 단일안을 요구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양측 주장안이 표결로 이어지면 지난해와 같이 사용자 수정안이 결정될 상황이어서 공익위원들에게 안을 제시하라고 요구할 수밖에 없었다”며 “민주노총에 아쉬움을 표현하지는 않겠지만, 홀로 남아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14일 새벽 1시께 공익위원은 1.5% 인상안을 들고 왔다. 이동호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회의장에서 나와 “외환위기·금융위기 때도 이런 참담한 최저임금안이 나오지 않았는데 공익위원이 오늘 최저임금 사망선고를 내렸다”며 “최저임금 협상을 퇴장으로 마무리 짓고, 이 시간 이후 노동자위원을 사퇴한다”고 밝혔다.

최저임금위는 노동자위원 전원이 빠진 채 공익위원과 사용자위원들만으로 회의를 속개했다. 사용자위원들이 1.5% 인상률보다 낮은 수정안을 추가 제시하지는 않아 공익위원안을 표결에 부쳤다. 한국노총 노동자위원 퇴장 후 곧바로 회의장을 떠난 사용자위원 2명을 제외하고 16명이 표결에 참여했다. 결과는 찬성 9명, 반대 7명이었다.

양대 노총은 반성문을 제출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논평에서 “역대 최저 인상률이다. 너무 실망스럽다. 450만 최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죄송하다”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펼쳐지는 경기를 바꾸기 위한 최저임금제 개혁투쟁을 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노총은 “역대 최악의 인상률로 기록될 1.5%라는 숫자를 사용자위원이 아닌 공익위원들이 내놓았다는 점에서 참담함은 형용할 수 없다”며 “한국노총은 이번 참사를 접하면서 전원 위원직을 사퇴했고, 공익위원들의 거취에 대한 판단 여부는 그들의 마지막 양심에 맡긴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총은 “역대 최저치이기는 하지만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중소·영세 기업과 소상공인들을 고려하면 동결됐어야 했으나 이를 반영하지 못해 죄송스럽다”며 “향후에는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합리적 수치를 정부와 공익위원이 책임지고 결정하는 방식으로 최저임금 결정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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