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노동·시민·사회단체뿐만 아니라 국회에서도 현행 산업안전보건법만으로는 중대재해를 막을 수 없다는 데 한목소리를 냈다. 민주노총을 포함한 170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운동본부(운동본부)와 한국노총이 지난 2일 각각 중대재해기업처벌 관련 법률(안)을 발표한 데 이어 국회 생명안전포럼(대표의원 우원식)이 15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생명안전을 위한 기업책임 강화제도 도입’ 토론회를 열었다. 생명안전포럼은 지난 3일 여·야 국회의원 26명이 생명·안전우선사회를 만들겠다며 출범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 10건 중 8건은 약식명령”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주장의 배경에는 솜방망이 처벌에 있다. 2017년 법인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범죄와 관련해 검찰이 기소한 5천571건 중 5천306건(84.76%)은 약식명령으로 처리됐다. 약식명령은 공판을 거치지 않고 재판부가 검사가 제출한 서면만 보고 사건을 심리해 벌금·과료를 내리는 것을 의미한다. 최정학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법학)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의 경우 벌금형이 선고되는데 그 평균 액수는 개인이든 기업이든 500만원이 채 안 된다”며 “기업의 경제력을 감안할 때 범죄에 대한 위하력이 없는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산업재해는 기업의 안전투자, 안전인력, 안전시스템, 고용구조 및 노동시간 구조적인 원인으로 발생하지만 처벌은 말단 관리자, 노동자 처벌로 재발방지 대책 수립으로 연계되지 않는다”며 “산업안전보건범죄 재범률은 97%로 일반 형법 재범률 43%보다 2배 이상 높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기업 고위 경영자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실이 현실에서 잘 입증되지 않는 데다 시민재해인 경우 산업안전보건법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며 “안전범죄와 이에 따른 안전의무를 포괄적으로 규정하는 기업처벌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시민사회단체는 모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산업재해뿐 아니라 시민재해에 확대 적용할 것을 주장한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지난 6월 발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관련 내용이 담겼다.

“전문가위원회가 형량 정해야”

오민애 변호사(생명안전시민넷)는 “현행법으로는 산재예방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공사기간 단축 혹은 공법변경이 있는 경우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예정하고 있을 뿐 재해로 인한 책임을 묻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주장했다. 오 변호사는 법에 특정 사실을 추정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만들어 산재 입증책임을 피해자에서 사업주로 전환할 것을 제안했다. 예를 들어 사업주, 경영책임자 등이 당해 사고에 관한 증거를 인멸하거나 현장을 훼손하는 등 사고원인 규명, 진상조사, 수사 등을 방해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위험방지 의무를 위반한 행위로 보는 것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양형절차에 관한 특례 규정을 신설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최명선 실장은 “유무죄 선고는 법원에서 하되, 법에서 정한 범위 내 형량은 별도 전문가위원회가 정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으로 형량을 강화한다 해도, 판사 개인적 인식에 따라 실제 적용이 이뤄지지 않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취지다. 양형절차에 관한 특례 규정은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발의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통과돼야 실현될 수 있다. 이탄희 의원은 선고형 결정 과정에서 국민의 상식과 법감정에 부합하는 양형이 이뤄질 수 있도록 성폭력·아동학대·산재사고 등 범죄의 경우 판사의 유죄 선고 후 ‘국민양형위원’ 심의를 거치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법안을 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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