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현아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조직국장

2013년 겨울, 철도노동자들은 박근혜 정권의 고속철도 분리 민영화에 맞서 철도노조 역사상 가장 긴 파업을 이어 갔다.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곳곳에 부착됐고, 시민들은 “힘내라, 철도파업”을 외치며 응원했다. 23일간의 민영화 저지 파업은 철도노동자 스스로가 ‘철밥통’이라는 인식을 깨고 사회공공성에 앞장선 투쟁이었고, 시민이 함께해서 외롭지 않은 투쟁이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당시 철도노조 위원장이었고, 2017년 민주노총 선거에서 철도파업을 이끈 지도자라고 스스로를 내세웠다. 그러나 그는 분리 민영화를 막지 못한 채 파업을 중단했다. 단순히 결과만 놓고 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다. 김명환 위원장은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현 미래통합당), 야당이던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과 철도발전소위원회를 구성하는 조건으로 즉시 파업을 철회하겠다고 약속했다. 파업 철회 결정은 최소한의 조직 내 논의도 거치지 못한 채 결정됐고, 철도노동자의 투쟁에 찬물을 끼얹는 행동이었다. 이로써 철도발전소위의 주도권을 민영화 추진세력에게 고스란히 바친 결과로 이어졌다. 이후 김명환 위원장은 노조 2014년 임금·단체협약 찬반투표에서 과반수 조합원의 부결로 위원장을 사퇴했다. 이것이 23일 철도파업을 이끈 김명환 위원장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정부지원금 신청조차 거부하고 무급휴직를 시행하거나 노동자를 단칼에 해고하는 자본에 맞서 투쟁하는 현장에서 민주노총 위원장을 만난 적 있던가? 수개월째 임금을 체불하고 결국 헌신짝처럼 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기업에 맞서 노동자의 단결과 투쟁을 호소하는 민주노총 위원장의 모습이 있던가?

최근 들어 우리가 언론에서 만난 민주노총 위원장은 사회적 대화라는 명분으로 투쟁조끼도 벗어 버린 채 자본가·관료들과 활짝 웃으며 술잔을 부딪치는 모습뿐이었다. 민주노총 위원장이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주장하며 노사정이 합의하면 연대가 가능한 것처럼 노동자의 눈을 흐리고만 있다. 그러나 22년 전 우리가 마주했던 노사정 합의 결과는 노동자를 고통의 나락으로 빠트렸고 경제위기 책임을 모두 노동자에게 전가해 계급격차를 심화시켰을 뿐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대의원대회 소집 이후 김명환 위원장은 민주노총의 노사정 합의가 “국회 담장만 무너뜨리거나” “말도 안 되는 소리만 높이는” 조직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이라고 주장하면서 노동의 힘이 자본을 제압할 수 없으니 교섭력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위원장으로서 민주노총의 투쟁을 폄훼하는 것도 문제지만 위원장 사고의 근저에는 짙은 패배의식이 깔려 있다. 이미 합의안에도 해고금지로 대표되는 노동자의 절박한 요구는 ‘불가피하다’는 이유로 타협하고 굴복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민주노총 투쟁의 역사와 단결된 힘이 지금의 민주노총을 만들어 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임금삭감·해고위협 등 노동자에게 공격으로만 다가올 경제위기 국면에 단결과 투쟁에 나서지 않고 교섭과 사회적 합의 운운할 때 이미 ‘협력’의 대가가 치러질 것이라고 예감했다. 결국 노동자 해고도 막지 못하고 턱없이 부족한 사회안전망을 인정하라는 합의안이 나왔다. 민주노총 대다수 중앙집행위원의 반대를 일순간 ‘민주노총 내 강경파’ ‘기득권세력’으로 몰아붙이며 대의원대회를 강행하고 독단적으로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직선위원장의 권한을 운운하는 언론인터뷰를 읽으며, 노동조합 위원장에게 조합원을 단결시키고 투쟁에 앞장서라는 권한 외에 어떠한 권한이 있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오판하지 마시라. 누구도 그러한 권한을 위원장에게 위임한 적 없다.

김명환 위원장은 노사정 합의안을 폐기하고 사퇴하라. 우리는 투쟁의 구심으로 조합원과 단결하는 위원장과 민주노총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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