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대한민국에서 민주노총이라는 공조직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조직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공장 담벼락을 넘지 못하는 조직된 노동자들만의 조직으로 남을 것인지에 대한 판가름하는 자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명환(55·사진) 민주노총 위원장이 23일 임시대의원대회를 이렇게 정의했다. 김명환 위원장은 지난 1일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합의안’ 추인이 막혀 노사정 대표자 협약식이 불발되자 “임시대대를 소집해 합의안을 심의·의결하겠다”고 밝혔다. 합의안이 부결되면 사퇴하겠다고 했다. 중앙집행위는 전쟁 같았다. 협약식이 예정됐던 날에는 합의안에 반대하는 조합원들에게 막혀 ‘감금’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김 위원장은 최근 논란에 대한 심경을 묻자 “매일 매일 (마음이) 복잡하다”며 “매일 아침마다 ‘용기를 내자’고 되뇌이고 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요새 “무모하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고 한다. 노사정 합의에 위원장직을 걸었다는 점 때문일 터다. 민주노총이 서명한 사회적 대화 합의문은 22년 동안 없었다. 민주노총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국난 극복을 위한 김대중 정부의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해 협약을 맺었지만 후폭풍이 거셌다. 당시 집행부는 결국 사퇴했다. 이후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의 중심에서 멀어졌다. 매번 노사정 대화 얘기만 하면 ‘들러리’를 선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김 위원장은 “저를 잘 아는 사람들은 요즘 저한테 ‘너 왜 이렇게 무모하냐’는 이야기도 하는데, 또 어떤 분들은 저더러 ‘비겁하다’고 한다”며 “무모함과 비겁함의 그 중간은 뭘까, 무모하거나 비겁하지 않게 계속 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격렬한 내부 반발에도 노사정 합의를 이루려고 하는 이유는 뭘까.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6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14층 위원장실에서 김 위원장의 이야기를 들었다. 제정남 노동정책팀장이 인터뷰를 진행했다. 민주노총은 임시대대 표결에 앞서 안건에 관한 설명자료를 온·오프라인으로 배포했다. 온라인 게시판으로 안건에 관해 토론한 뒤, 23일 전자투표로 표결한다.

“반찬 부실하다고 밥상 걷어차면 가족들 굶어 죽는다”

- 위원장직을 걸면서까지 노사정 합의를 시도하는 이유는 뭔가.
“코로나19라는 상황이 저에게는 충격이었다. 민주노총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지금까지 해 왔던 방식들을 취하기 어렵게 되면서다. 먼저 민주노총이 잘해 왔던 ‘광장’에 위협적인 집회 대오가 모여서 사회적 의제를 던지는 방식이 코로나19로 어렵게 됐다. 생명과 안전 문제를 비롯해 민주노총이 풀어야 할 한국 사회 시대적 과제가 있는데 광장에서 이런 의제를 올리지 못하게 된 지가 벌써 6개월, 반년이 지났다. 또 하나 민주노총이 잘하는 것이 총파업이다. 그런데 코로나19에 따라온 경제위기로 이른바 ‘셧다운’ 상태가 되니까 현장에서 총파업을 조직하자는 의지가 잘 안 올라왔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이 두 가지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서 취약계층, 사회안전망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의 문제들이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민주노총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큰 공적 조직이다.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사실이다. 민주노총은 모든 노동자의 민주노총이라는 점을 지난 25년간 외쳐 왔고, 100만이 조직된 1노총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도 책임이 주어졌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사회에서 드러난 불평등을 치유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관철시키고자 적극적으로 사회적 대화를 추진했던 것이다.”

- 합의안 추인을 하지 않아도 합의 내용은 이행되는 것 아닌가. 정부가 합의정신을 이어 가겠다고 했고, 한국노총도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관련 내용을 이행하자는 입장이다. 굳이 추인절차가 필요한가.
“민주노총이 어떤 행보를 결정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민주노총은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의 제안자고, 그 공간이 열리는 것을 쟁취했다. 그런 만큼 우리가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판이 달라질 것이라고 본다. 경사노위에서도 (합의안을) 다 담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합의안을 경사노위에 가져가는 것은 아주 쉬운 결정인데도 정부가 아직 결정 내리지 않고 민주노총 진행 경과를 지켜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부가 (합의하지 않아도 알아서) 다 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언제부터 정부를 믿었나. 그냥 놓아둬서는 결코 정부가 합의안을 추진하는 데 속도를 내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설령 정부가 추진하려 한다 해도 관료들의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결국 ‘해 보니 껍데기였다’는 말만 나올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합의안을 살아 있게 해서 (미래를 위한) 디딤돌이 되게 만들려면 이번 임시대대에서 결정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합의를 하면 (대중들에게) ‘민주노총이 뱉은 말은 책임지네. 자신들도 사회적 책임을 지겠다고 하네’라는 신뢰가 생길 것이다. 신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자산이 돼 결국 민주노총의 사회적 발언력을 높일 것이다. 그 발언력에 불평등·양극화를 비롯한 각종 의제들을 해소할 수 있는 법과 제도들을 얹히면 코로나19로 광장이 막히고 파업 동력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민주노총이 (더 큰)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시작점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 합의안이 핵심 요구들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합의안에 해고금지·총고용 보장이나 상병수당 같은 내용이 빠져 있다는 비판이 있다.
“(핵심적 요구들이) 빠졌다는 데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가령 총고용 보장은 과거에 계속 외쳐 왔던 레토릭이다. 그런데 코로나19 시대의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에서는 과거 레토릭이나 추상적인 것보다는 고용유지를 위한 구체적인 안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고용보장의) 키를 가지고 있는 국가가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천문학적인 예산을 쓸 때 그 예산이 취약계층이나 사각지대 노동자들에게 더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합의안에는 고용을 유지하기 위한 정부의 조치들이 담겼다. 고용유지지원금을 90%로 상향 지원하고 기간도 세 달을 추가로 연장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긴급고용안정지원금 보완책을 마련하고, 기간산업안정자금과 관련해 제조업 협력업체 지원대책을 마련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해고금지도 총고용 보장과 비슷한 말인데, 한국 사회에서는 쉽지 않다. 상병수당과 관련해서는 합의안에 풀어 쓴 내용이 담겨 있다. 상병수당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라는 곳에서 지난 10년간 논의를 했지만 예산 때문에 (추진이) 안 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합의안에 업무와 연관이 없는 질병 등으로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득 손실을 국가가 보장할 수 있는 조치들에 대해 사회적 논의를 추진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상병수당, 아프면 쉴 수 있는 제도들에 대한 논의를 하자는 내용인 셈이다.”

합의안 중 ‘질병 돌봄에 대한 지원 확충’ 부분에는 “노사정은 업무와 연관이 없는 질병 등으로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득의 손실로 인한 생계 불안정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및 재정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사회적 논의를 추진한다”고 명시돼 있다.

- 합의안에서 노동계가 잃은 부분은 없다고 생각하나. 
“사용자측이 아주 예리하게 들어오면서 반드시 관철시켜야겠다고 했던 지점들이 있었는데 교섭의 구체성이 떨어지더라도 무디게 만들었던 부분이 있다. (반대하는 이들이) 주장하는 근로시간단축, 휴업 관련 내용이 대표적이다. 합의안엔 ‘노동계는 코로나19에 따른 매출 급감 등 경영위기에 직면한 기업에서 근로시간단축, 휴업 등 고용유지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경우 적극 협력한다’는 내용이 담겼고, 이런 것들이 쟁점이 된다는 것에 동의한다. 이는 재계가 노동계 요구안을 수용하면서 ‘노동계는 무엇을 할래’라고 해서 넣게 된 것이다. 하지만 ‘고용유지를 위해 필요한 조치’라는 전제가 있기 때문에 이는 정리해고를 촉진할 수 있는 문구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띤다. 이는 법률적으로도 확인한 사항이다. (그 밖의 쟁점들도 있는데) 우리는 합의할 만했기 때문에 합의안을 만든 것이지, 그냥 모양 갖추려고 ‘합의를 위한 합의’를 한 것이 아니다. 반찬이 부실하다고 밥상을 걷어차면 옆에 있는 가족들은 굶어 죽는다. 이 정도 수준에서 내용이 만들어졌다면 합의할 수 있다고 본다. 사회적 합의는 혁명하자는 것도 아니고 한국 사회 구조를 바꾸자는 것도 아니다.”

▲ 정기훈 기자


“정부와 교섭하면 ‘자본의 하수인’인가”
“정파 갈등 아닌 중집과 위원장 간 충돌”


- 교섭 과정이나 임시대대 소집 과정에서 조합원들과 충분히 소통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위원장이 합의안에 직권조인하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반대하는 이들 사이에서 제가 직권조인을 하려 한다는 말까지 나왔는데 이건 저에게 굉장히 모욕이다. 협약식이 예정돼 있던 1일에는 (반대측 시위로) 위원장 출근이나 중집 회의조차 막히는 상황이 발생했다. 협약식을 하기로 한 시간이 임박해서 제가 못 간다고 통보하라고 했다. (중집에서) 이런 상황이 이후에도 반복되지 말란 법이 없으니, 뭔가를 결단해야 했다. 조합원 총의를 대신할 수 있는 곳에서 결정하자고 해서 임시대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임시대대 소집 권한은 중집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위원장 권한으로 개최를 선언했다. 또 교섭이 비공개로 진행됐다고 하는데 지난 5월20일 1차 노사정대표자회의 때부터 전개되는 실무교섭 결과는 모두 끝나자마자 중집에 바로 공개했다. 이후 세부적인 내용은 정책 담당자들에게 설명하는 과정을 후속조치로 해 왔다. 다만 (합의시한으로 정했던 6월 말을 앞둔) 지난달 26일부터 28일까지는 교섭이 매우 압축적으로 진행되다 보니 (내용 공유가) 따라오지 못하면서 나중에 (내용을) 문구로만 봐야 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가 (소통 부족으로) 표현됐던 것 같다.”

- 논란 중에 ‘자본의 하수인’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럴 정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본과 교섭을 하면 자본의 하수인인가. 독소조항에, 개악된 법안에, 그리고 그것을 밀실협상을 통해 사실상 직권조인했다면 그런 말들을 붙일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합의 내용에 부족한 점도 있지만 크게 개악된 제도나 독소조항은 없다. 밀실협약이나 직권조인도 없었다. 실제로 직권조인을 했다면 저는 오늘 여기 출근할 수도 없다. 그랬다면 즉시 비상대책위원회가 만들어져 합의안 폐기선언이 이뤄졌을 것이다. 그걸 뻔히 알고 있는 제가 그렇게 하겠는가. 단위노조가 사용자단체와 교섭하는 것과 똑같이 사용자단체·정부와 교섭을 했다. 그리고 요구를 100% 관철시키지 못한 것은 자본 진영을 살려 주거나 그 말에 설득이 돼서가 아니다. 단위노조도 임금·단체교섭에서 요구를 100% 관철시킨 적이 없지 않은가. 그래서 선을 넘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 단어를 쓴 것에 동의할 수 없고, 무지하게 섭섭하고 속상하다”

- 이번 논란을 정파 갈등으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우선 저는 정파가 없다. 그래서 정파와 정파 간 충돌은 아니다. 그리고 정파에서 활동하시는 현장 간부님들 중 엄청 열심히 하시고 정말 훌륭한 분들이 많다. 정파를 그렇게 부정적 단어로만 표현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다만 중집과 위원장 간 충돌은 있는 것 같다. 정파 문제보다는 ‘위원장과 중집에서 충돌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풀어 갈 것인가’에 대한 대안·쟁점이 중요한 것 같다.”

“가결되면 반대한 분들 의견 충분히 듣는 과정 거치겠다”

- 가결이 된다고 하더라도 조직 내부 논란을 잠재우지 못하면 지도부가 할 수 있는 일이 크게 없을 수 있다. 가결 또는 부결 뒤의 계획이 있다면.
“합의안이 부결되면 저는 이미…. 가결 이후부터는 두 가지가 필요할 것 같다. 첫 번째는 (원포인트 대표자회의) 일정을 잡는 것이다. 일정이 안 잡힌다거나 버스가 이미 다 떠난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는데 저는 새로운 기운을 만들기 충분하다고 본다. 두 번째는 이 내용에 대한 반대측들의 우려를 해소시키는 과정이 명확하게 있어야 한다고 본다. 세 번째는 조직 내에서 이 과정을 통해 논쟁을 건강하게 했다고는 하지만 갈등이 있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반대한 분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이들이 지도부에 어떻게 하라고 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고민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대하는 분들과 함께 뭔가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네 번째로는 남은 임기 동안에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이른바 ‘전태일 3법’을 만들어 내는 일에 가장 우선적으로 같이 힘을 모아 가야 한다.”

전태일 3법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과 5명 미만 사업장에 적용을 확대하는 근로기준법, 특수고용 노동자 노동 3권 보장을 위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이다.

- 가결 이후 새로운 기운을 모으기 충분하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이유에선가.
“민주노총이 합의를 제안하고 나서 한국노총과 사용자측을 설득하기까지 한 달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그게 됐다. 다들 합의가 안 될 거라고 했는데 합의안까지 만들었다.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합의안을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가져가는 것에 대한 결정도 아직 안 나오고 있다. 다들 (원포인트 합의를 통해)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한다는 의미다. 이게 시대적 요구라고 한다면, 그리고 시대적 요구를 놓치지 않는 민주노총이 있는 한, 그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회는 당연히 올 것이라고 본다. (합의) 날짜를 언제까지 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노총이 결정하는 날짜에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진행이 가능하다고 본다. 저는 이것이 민주노총이 가지고 있는 한국 사회 위상·위치를 방증하는 것 같다. 더 책임감 있게 이번 임시대대에 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대의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가 계속 강조해 왔던 ‘함께 살자’의 가치를 코로나19 재난 시대에 누가 실현하겠나. 민주노총만이 실현할 수 있다. 함께 살자의 가치를 어떻게 실현할지에 대한 답을 민주노총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모든 노동자의 민주노총’이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다. 이번 합의는 민주노총이 100만 조직에 그치는 민주노총이 아니라 정말 한국 사회에서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공적 기구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지위를 얻게 되는 첫 시작이 될 것이다. 민주노총 대의원들이 그것을 만들어 주길 바란다. 합의문이 정말 코로나19 시기에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결의문인지, 자본에 항복하는 문서인지 민주노총 임시대대에서 다시 한번 판단해 주시길 바란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