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가 20일 오전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2020 상반기 보육교사 노동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서울시 국공립어린이집 보육교사 A씨는 올해 1월 말 어린이집 원장에게 해고 통보를 받았다. 원장은 뛰어놀던 아이 한 명이 넘어진 일을 거론하며 “CCTV를 봤는데 (A씨가)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고 했다. A씨는 “보육 중이었으며 아이들이 뛰어놀 때 몇 번 제지했다”고 말했지만, 되레 원장은 며칠 뒤 그에게 “아이 어머님이 CCTV를 보고는 해고하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런데 A씨가 만난 학부모는 “CCTV를 보지도 못했고, 선생님을 그만두게 하라는 말도 안 했다”고 했다.

A씨는 “원장이 하루 종일 원장실에서 CCTV를 보고 있기 때문에 다른 교사들에게도 이런 일들을 종종 있었다”며 “때문에 또 시작하는구나 정도로 생각했는데 해고까지 당했다”고 말했다.

15년간 보육교사로 일한 서울시 민간어린이집 보육교사 B씨는 원장의 페이백 요구를 불법이라고 지적한 뒤로 감시를 당한다고 했다. 원장은 B씨가 맡은 반에만 CCTV를 늘렸다고 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단체 대화방에서 제외하기도 했다. 보육교사 C씨는 아이들과 대화하는 과정 전체를 감시당했다고 증언했다. 원장은 C씨가 앉았던 위치와 자세, 말투까지 지적했다고 한다.

직장내 괴롭힘을 금지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다. 그런데 어린이집에서는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괴롭힘이 일어난다고 한다. 바로 CCTV다.

보육교사 괴롭힘에 활용

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와 직장갑질119가 지난 6일부터 13일까지 보육교사 1천6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을 통해 조사한 ‘2020 상반기 보육교사 노동실태조사 결과’를 20일 발표했다. 실태조사에서 괴롭힘을 당하거나 봤다고 응답한 보육교사는 745명(70.28%)이었는데 이 중 CCTV 감시로 인해 괴롭힘을 당했다고 응답한 노동자가 313명(42.1%)이나 됐다.

어린이집은 CCTV 설치가 의무다. 2015년 1월 인천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을 계기로 개정된 영유아보육법 때문이다. 영유아보육법 15조의4(폐쇄회로 텔레비전의 설치 등)에는 “어린이집을 설치·운영하는 자는 아동학대 방지 등 영유아의 안전과 어린이집의 보안을 위하여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련 법령에 따른 폐쇄회로 텔레비전을 설치·관리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보육교사 권리 보호를 위한 조항도 있다. “CCTV 관리자는 영유아 및 교직원 등 정보주체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아동학대 방지 등 영유아 안전과 어린이집 보안을 위해 최소한의 영상정보만을 적법하고 정당하게 수집하고, 목적 외 용도 활용을 금지하며, 평시에 CCTV를 열람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보호조항은 현실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노조는 “원장을 고발하는 민원을 넣어도 공무원은 보육교사가 아닌 원장에게만 사건을 물어본다”며 “원장은 CCTV 특정 장면만을 근거로 보육교사를 아동학대로 몰아가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이선희 지부 부위원장은 “원장이 CCTV 영상을 훑어 터무니없는 근거로 (보육교사를) 아동학대범으로 취급하는 것은 보육현장에서 일종의 공식”이라며 “정부가 이를 제대로 통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린이집 원장은 제어받지 않는 권력”

노동자들은 “어린이집 원장은 제어받지 않는 권력”이라고 입을 모은다. 원장이 보육교사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는 것이다. 경기도 국공립어린이집 교사인 D씨는 “원장의 뜻에 따르지 않으면 재계약을 못해 교사 자리를 잃었을 것”이라며 “특정 정당을 지지하라는 강요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번 실태조사에서 직장내 괴롭힘을 당하거나 목격한 보육교사 중 89.66%는 신고를 하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시정될 것이라는 기대가 낮았고(65.8%), 신고 후 불이익이 우려되어서(64.8%)다.

조은혜 공인노무사(돌꽃노동법률사무소)는 “직장내 괴롭힘 신고를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경우 현행법으로 처벌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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