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광화문 촛불집회의 질문은 “이게 나라냐? 적폐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질문은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부터 “이게 나라다. 누가 적폐냐”라는 질문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질문이 달라지자, 대답도 성격이 변했다. 문재인을 ‘달님’이라 부르는 열성 지지자들은 대통령을 비판하는 모든 사람을 적폐라 불렀다. 이렇게 적폐청산은 제도개혁이 아니라 싫은 사람을 뽑아내는 숙청으로 자리를 잡았고, 대통령의 심복 또는 추종자를 자처하는 정치인들도 국가적 숙청에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한편, 대통령 지지자들은 ‘문빠’를 거쳐 마침내 ‘대깨문’이라는 투사로 변모했다. 이들에 의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도덕적 이중잣대는 정치적 탄압으로 윤색됐고,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검찰총장은 제거해야 할 적폐로 각색됐다. 이들은 최근에는 박원순 성추행 사건까지도 정치적 공방으로 몰아붙이며 피해자를 공격하고 있다.

집권세력은 제왕적 대통령 권력에 180석 의석까지 갖더니 그야말로 거칠 것이 없다. 유례 없는 국회 상임위 독식에, 정부 추경안은 검토도 없이 통과시켰다. 역사보안법(역사왜곡금지법)도 발의했다. 더구나 야당 없이 공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까지 임명할 기세다. 현 공수처는 삼권분립에 어긋나는 것은 물론 다른 선진국에서도 사례를 찾기 힘든 기구다. 청와대와 여당은 이런 비판에 대해 공수처가 국회의 거국적 합의를 전제로만 작동할 수 있다고 반박해 왔다. 하지만 이제 이런 최소한의 견제장치마저 무력화되는 형국이다.

문 정부의 경제정책은 그야말로 좌충우돌의 현장이었다. 집권 초기 내세운 소득주도성장은 정부조차 이제 언급하지 않는다. 최저임금은 두 해 급가속하다니 결국 다음 두 해 급정거했다. 4년간 평균 최저임금 인상률은 이전 정부와 비슷해졌다. 최근 정부는 소주성 시즌2라 할 ‘한국판 뉴딜’도 내놓았다. 하지만 황당하게도 뉴딜의 핵심인 제도개혁은 빠진 채, 5년간 160조원을 투입해 190만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두루뭉술한 정책만 나왔다. 심지어 정책은 이명박의 녹색성장과 박근혜의 창조경제를 엮어 놓은 것이다. 향후 수년간 코로나19 사태를 수습하는 데 많은 재정이 사용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160조원짜리 부실 계획이 발표된 것이니, 국민의 고통이 앞으로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정부 부동산 대책은 문재인 경제정책 실패의 화룡점정이라 하겠다. 분석해 보면, 서울 아파트 가격 폭등은 두 번의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발생했다. 서울 아파트 가격은 노무현·문재인 정부 8년간 80% 상승했고,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간 7% 상승했다. “부동산 투기와 전쟁”을 선포한 개혁정부에서 “부동산의 친구임을 선언한” 보수정부보다 10배나 빠르게 가격이 상승한 셈이다. 스무 번이 넘는 부동산 정책이 쏟아졌지만, 정작 정부 고위관료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의 최고 수혜자 중 하나가 됐다. 내로남불이 부동산에서도 이어진 것이다. 부동산 여론이 악화하자 최근 정부는 정책을 또다시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마저도 누구는 그린벨트를 풀자, 누구는 행정수도를 이전하자, 또 누구는 세금을 높이자는 식으로 도떼기시장만도 못한 우왕좌왕 아수라장 상태다.

지지율 80%에 촛불혁명이란 화려한 타이틀을 달고 시작한 문재인 정부는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른 것일까. 필자는 두 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첫째, 현 집권세력의 민주주의 관점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 민주주의, 좀 더 정확하게 말해서 민주정의 핵심 원리는 시민의 대표가 만들고 합의한 법의 통치를 받는 것이다. 군주의 법이 아니라 시민의 상식과 정의에 입각한 법으로 통치하는 것이 민주정의 원리다. 하지만 현 집권세력이 생각하는 민주정은 법치 이전에 대통령의 치세가 더 중요한 것 같다. 주요 정치인들이 문 대통령을 조선시대 왕에 자주 비유하는 것도 이런 맥락일 것이다. 대통령이 청원게시판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민심이고, 대통령을 보족하는 것이 국회 원내대표의 임무이며, 대통령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과 지지를 표명하는 것이 시민의 정치 행위다.

이런 관점에서 입법부는 제왕적 대통령으로 가는 입구일 뿐, 민주정의 요체일 수 없다. 식물국회가 됐든, 동물국회가 됐든 청와대 요구를 관철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법부 역시 정의를 판결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과 집권세력에게 불리하지 않은 것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에게 더 평등하고 더 공평한 사법부를 위해 공수처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들의 속내였다. 제왕적 대통령제는 손가락 하나 대지 않으면서, 입법부와 사법부만 때려 대는 것도 다 이런 이유라 하겠다.

둘째, 현 집권세력은 경제학을 싫어하는 것을 넘어 아예 반대한다. 소주성부터 한국판 뉴딜, 그리고 부동산 정책에 이르기까지 청와대는 검증된 경제학 법칙조차 무시했다.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오르면 고용에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 서울이란 거대한 지대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수요는 공급을 초과할 수밖에 없다는 것, 일정 수준의 경제성장에 이르면 정부는 앞서서 성장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제도개혁에 주력해야 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나 대체로 경제학에서 인정되는 것들이다.

하지만 현 정부는 이런 법칙을 무시했다. 자신의 선의로 최저임금을 올리면, 부동산 투기세력을 악마로 비난하면, 정부가 더 많은 돈을 퍼부으면, 즉 문재인이 하면 그 어떤 법칙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이런 의지는 시장의 반격 앞에 항상 무력했다. 결과를 이전 정부 탓, 재벌 탓, 투기꾼 탓, 보수세력 탓, 일본 탓으로 돌리면 됐기 때문이다. ‘남 탓’의 향연이 바로 이들의 강력한 무기다.

문재인 정부 이후 정부는 이런 유산을 안고 시작해야 할 것이다. 타락한 법치, 망가진 경제법칙, 언제든 물불 안 가리고 적폐의 전쟁을 수행할 ‘빠’ 지지세력. 어느 당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나라를 통치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다음 정부를 위해서라도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의 폭주를 당장 멈춰 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노무현의 다운그레이드로 문재인 대통령이 왔듯, 문재인의 다운그레이드 된 다음 정부가 출현할 가능성이 크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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