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코 사내하청 성암산업 노동자들이 지난달 29일 국회 앞에서 단식·노숙농성을 시작했다. <정기훈 기자>

지난 20일 포스코와 금속노련이 성암산업노조에 대한 고용승계 협약서에 서명했지만 노동자들이 여전히 고용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성암산업 사태처럼 원청 기업 구조조정에 따른 합병이나 사업양도가 빈번해지면서 법·제도 정비 필요성이 제기된다.

26일 금속노련에 따르면 내년 8월1일까지 5개 협력사로 흩어져 일해야 하는 성암산업 노동자들이 전적을 위해 면접을 거쳐야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형식적 절차라고 해도 노동자들 사이에선 고용승계와 협약 이행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는지에 대한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 분위기다.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중재로 집단해고 사태는 일단락했지만 협약이 제대로 지켜질지 확신하기에는 1년이 너무 길다는 우려다. 내용이 공개되지 않은 협약서에 따르면 포스코는 지난 18일 5개 협력사 대표와 노조가 합의한 ‘내년 8월1일 통합회사 ㈜포운으로 고용승계’를 이행하도록 지원한다. 포스코의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때문에 사업양도·합병·회사분할 같은 기업변동 때 고용과 단체협약을 포괄적으로 승계하는 법·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성암산업 집단해고 사태도 성암산업이 운송작업권을 원청사 포스코에 반납한 뒤 이 작업권이 5개 협력사에 분할되면서 불거졌다. 표면상 외주업체 변경에 따른 사업양도로 보이지만 노동자 입장에서는 인적·물적 재산이 1개사에서 5개사로 쪼개지며 회사분할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현행 노동관계법령상 회사분할시 고용·단협승계에 관한 규정은 없다.

기업변동과 관련한 입법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대 국회 때 이정미 전 정의당 의원이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사업을 양도하는 경우 근로관계상 권리와 의무를 포괄적으로 승계한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사업양도시 근로관계는 판례상 원칙적으로 승계되지만 입법을 통해 명문화하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별다른 논의 없이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근로기준법 개정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법학)는 이정미 의원안에 대해 “고용승계를 규율할 수 있을지라도 단협과 관련해서는 근로기준법을 통해 규율할 수 없다”며 “회사분할뿐만 아니라 영업양도·합병 등 여러 기업재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근로계약·단협승계 문제를 통합적으로 규율할 수 있는 단행법을 만드는 게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근로기준법에서 근로계약이나 단협승계를 따로 떼어내 규율하는 법을 만들자는 제안이다.

외국에는 관련 법안이 마련돼 있다. 일본 노동계약승계법은 회사분할시 단체협약의 승계 문제를 다루고 있다. 유럽연합은 ‘사업이전지침’을 마련해 사업체가 동일성을 유지한 채 이전되면 고용과 근로조건이 승계되도록 하고 있다.

정태교 연맹 조직국장은 “외환위기 이후 상법 개정으로 기업인수·합병이 쉬워졌는데 정작 회사 안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보호장치는 없었다”며 “기업분할에 따른 고용·단협승계에 대한 법·제도가 있었다면 성암산업도 충분히 적용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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