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진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노동안전보건부장(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매년 노동자 2천400여명이 일터에서 목숨을 잃고 끊임없이 대형참사가 벌어지는 대한민국. 이런 현실에 대한 원인과 해결방안에 대해서 고용노동부를 비롯해서 국회의원·전문가들이 모르고 있지는 않다.

사업장에서 법을 위반해도 감독하는 정부도 없고, 적발돼도 처벌이 약하고, 사람이 죽어도 수백만원의 벌금만 내면 되기 때문에 산재가 끊이지 않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중대재해기업처벌제정 운동이 전 사회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사후 조치라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가장 근본적인 해결방안은 사업장과 지역에서 일상적으로 산재를 예방하는 구조적 관리체계가 작동하는 것이다. 그 중 핵심적인 것은 현장의 위험을 가장 잘 아는 노동자들의 참여와 감시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도 명예산업안전감독관·산업안전보건위원회 같은 노동자 참여 제도를 도입해 산재예방시스템을 강구하고 있다. 하지만 제도적 제약과 인식의 한계로 인해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잘못된 단추, 근로시간면제 제도

2009년 연말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된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조항은 잘못된 단추의 시작이었다.

개정안은 노조활동 중 일부만 유급으로 인정하는 ‘타임오프제’를 시행하되, 적용범위는 △노사협의 △고충처리 △산업안전 활동 △건전한 노사관계 발전을 위한 노조유지 및 관리업무로 한정했다. 또한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를 설치해 3년마다 타임오프 한도 적정성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지만, 2013년 이후 변한 것이 없다.

이 규정을 근거로 노동부는 2013년 7월 근로시간면제 한도 적용매뉴얼을 작성해서 사업장에서 시행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참여를 포함해 노조나 노동자가 안전보건 활동을 하는데 제한을 받고 있다. 산업안전보건위원회는 형식적으로 운영되기 쉽다.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은 사업주 의견을 들어 근로자대표 혹은 노조대표자가 추천하지만, 관련 매뉴얼을 통해서 근로시간면제자로 제한했다. 사실상 사업주의 동의나 허가가 있어야만 명예산업안전감독관으로 활동할 수 있다.

타임오프로 노조활동은 위축됐고, 사업장 산업재해예방시스템의 주요한 한축인 노동자들의 참여와 감시 또한 온전하게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실제로 충북교육청에서는 충북지역 학교 급식실 노동자 건강실태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의 참여를 보장하지 않아서 노조에서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지난해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중 결사의 자유와 단결권·단체교섭 관련 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에는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조항을 삭제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입법예고안에는 노동부 소속으로 돼 있는 근로시간면제심의원회를 독립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옮기는 내용이 담겨 있지만, 여전히 타임오프 한도 적용에 대한 입장은 변하지 않고 있다. 이미 ILO는 정부에 해당 규정이 노사 자율과 노조 자주성을 침해한다며 시정할 것을 수차례 권고했다.

사업장 산재예방 사업, 정부가 적극 개입해야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재예방을 위한 정부의 책무를 규정하고 있다. 정부는 사업장을 강제하거나 견인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미 노동부는 2014년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매뉴얼에서 사업장의 위험성을 가장 먼저 감지할 수 있는 사람은 현장 노동자이며, 노동자가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밝혔다. 산업안전보건위원회가 정상적으로 구성·운영되면 산재예방과 이를 통한 생산성 향상과 근무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때문에 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위원의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교육과 활동시간을 유급으로 보장하도록 매뉴얼에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한 적극적인 역할은 하지 않고 있다. 노사자치의 영역에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 사업장 안전보건활동 위축을 최소화해야 한다.

또한 중소영세 사업장에 대한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지원하고 구축하기 위해서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적용사업장을 최소한 노사협의회 설치대상으로 넓혀야 한다. 사내·사외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의 활동을 보장하고 지원하는 시스템을 갖추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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