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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내 괴롭힘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기사승인 2020.08.03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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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빛나라 변호사(오빛나라 법률사무소)

   
▲ 오빛나라 변호사(오빛나라 법률사무소)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도 어느덧 1년이 지났다. 직장내 괴롭힘은 근로기준법 76조의 2에서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정의돼 금지되고 있다.

이제는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직장갑질’이라는 용어가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전에는 당연하게 여겨 왔거나, 부당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구제절차가 없어 감내해 왔던 일들이 있다. 가령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사적인 심부름을 시키는 것이나 업무와 관련된 질책이라도 고성으로 모욕적인 발언을 하는 것이다. 이제는 잘못된 것이라 인식하게 되고, 법제화에 이르렀다. 용기 내어 목소리를 낸 피해자와 직장갑질119를 비롯한 공익단체, 여러 시민운동가·전문가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험난한 과정을 거쳐 법이 탄생했지만, 그 실효성에 자주 의문을 품게 된다. 실제 현장에서 직장내 괴롭힘 사건은 현실과 괴리된 ‘입증’이라는 장벽에 부딪히게 된다. 피해자가 직장내 괴롭힘을 당했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것을 요구하는데, 이는 어려운 일이다. 직장내 괴롭힘 사건에서 피해자 진술의 증거능력이나 신빙성을 배제한 채 피해자로 하여금 다른 객관적인 증거를 제시하라는 것은 오히려 대부분의 가해자, 그리고 이를 방관한 회사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과 같다.

대부분 성인인 직장인 가해자가 공개적인 장소에서 객관적으로 업무와 전혀 관련 없이 피해자를 괴롭히는 것은 하수(下手) 중의 하수다. 진정한 고수들의 직장내 괴롭힘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직장내 괴롭힘은 가해자와 피해자 둘만이 있는 공간에서, 혹은 피해자의 뒤에서, 업무와 비업무의 경계선 상에서 업무를 빙자해 은밀하게 가해진다.

특히 피해자들이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는 대표적인 괴롭힘 유형 중의 하나가 집단적으로 이뤄지는 괴롭힘이다. 이 경우에는 대다수 동료 직원들이 가해자인 상황에서 가해행위에 가담하지 않은 극소수 직원들은 회사·동료들과의 관계를 고려해 진술을 회피한다. 그러다 보니 주변인 진술을 증거로 확보하기가 어렵다.

이러한 증거 확보의 어려움은 직장내 괴롭힘으로 인한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산업재해로 인정받는 데도 한계로 작용한다. 직장내 괴롭힘 피해자가 직장에서 하루종일 벌어지는 모든 상황을 촬영하거나 녹음할 수는 없다. 언제 어디에서 가해행위가 발생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항상 촬영이나 녹음을 할 수 있도록 대기상태에 있어야 하는데,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또한 피해자가 없는 자리에서 가해자들이 모여 집단적으로 피해자를 대상으로 험담과 욕설을 하고 퇴사시킬 방안을 모의하는 것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그 내용을 녹음하기 어렵다. 설령 녹음하더라도 대화 당사자가 아닌 자가 한 녹음은 불법으로 형사처벌까지 되므로 증거로 제출할 수도 없다.

이러한 특수성을 고려할 때, 직장내 괴롭힘으로 인한 정신질환 산재 여부를 따질 때에는 피해자 진술을 최우선 증거로 인정해야 한다. 간접정황과 제반 사정을 충실하게 고려하도록 인정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피해자 정신의학과 의무기록에 기재된 내용, 피해자의 일기나 메모·진술서에서 피해자 진술이 지속적으로 일관된다면 이를 신뢰해야 한다.

직장내 괴롭힘 피해자들은 이미 극도의 정신적 고통으로 깊게 상처 입은 상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가 눈에 보이는 신체의 상처보다 더 깊고 고통스러울 수 있다.

직장 내에서 사회적 지지를 얻지 못하고 오랜 고심 끝에 국가기관에 용기를 내어 도움의 손길을 내민 피해자들이 정상적으로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진정으로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오빛나라 labortoday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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