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일환 시인

우리나라에서 노사협조나 노사정 간의 대타협은 가능할까? 얼마 전 민주노총이 이런 문제를 둘러싸고 큰 홍역을 치렀다. 위원장이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표자 회의에 참여하여 잠정 합의안을 받아왔으나 대의원대회에서 부결된 것이다. 그로 인해 위원장단이 사퇴하고 비대위가 꾸려진 상태다.

협조라는 말 자체는 아무런 죄가 없고, 서로 도와가며 살아야 한다는 아름다운 뜻이 담겨 있기도 하다. 하지만 모든 낱말이 그렇듯 사회 안에서 어떤 맥락에 따라 사용되느냐에 따라 의미의 수용 양상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사용자와 정부는 ‘협조’라는 말을 선호할 테고, 노동자는 아무래도 ‘투쟁’이라는 말에 더 끌릴 수밖에 없다. 이런 점은 꼭 우리나라에서만, 그리고 당대에 들어와서만 그렇게 된 건 아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온 용어를 보면서 이야기를 이어가자.

협조회(協調會) : <사회 일반> 사업주와 근로자 사이의 협동과 조화를 꾀하여 사회 시설의 조사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모임.

마치 요즘 사용하는 말인 것처럼 보이지만 협조회는 우리나라가 아니라 일본에서 예전에 만들었던 조직이다.

1차 세계대전 후 노동운동이 격화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 정부와 재계가 각각 출연금을 내서 1919년 12월22일 반관반민 형태인 재단법인을 세우고 이름을 협조회(協調會)라고 했다. 이 기구에는 내무 관료와 기업인들이 참여했으며, 노사협조주의를 표방했다. 주요 사업 내용으로는 사회정책에 관한 조사와 연구, 사회정책에 대한 정부의 자문, 강습회와 강연회 개최, 노동자 교육, 직업 소개, 노동쟁의의 중재와 화해 등을 이끌었다. 조직의 성격이 반노동자적이라는 이유로 많은 비판을 받았으며, 결국 패전 후인 1946년 해산했다. 협조라는 말이 들어가긴 했으나, 성격상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으로 협조를 강요하는 의도가 다분했기 때문이다. 이런 단체 이름이 정확한 설명도 없이 우리 국어사전에 올랐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오는 비슷한 용어 하나를 더 살펴보자.

구제조합(救濟組合) : <복지> 가난하거나 곤경에 빠진 노동자를 돕기 위하여 기업주와 노동자가 협동하여 만든 조합.

이건 또 뭘까? 뜻 자체로는 역시 아름다운 마음을 담고 있는 조합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저런 조합이 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고, 다른 자료에서도 발견하지 못했다. 옛날 신문을 뒤지니 구제조합이라는 말이 나오기는 하는데, 주로 농어촌 지역에서 재난을 당하거나 했을 때 도와주기 위한 차원에서 만든 것들이었다.

“그 군에서는 구제조합(救濟組合)이 잇슴으로 피해가 뎨일 심한 춘산면 외에 두 면에는 그 구제조합으로부터 일천 원과 각 면으로부터 이천 원의 구제금을 모집하기로 하엿스며….”(동아일보 1924년 6월21일자)

폭풍우와 우박으로 피해를 입은 농가를 지원하는 방안을 담은 기사다. 이 기사에서 보듯 구제조합은 기업이나 노동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 국어사전의 풀이는 어디서 가져왔을까? 일본 사전에서 가져왔나 싶어 찾아보니 거기에도 실리지 않았다. 이리저리 확인해 본 결과 오래된 일본 자료에서 간헐적으로 저 용어가 사용된 게 보인다. 지금은 그런 이름의 조합이 없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노사 간에 혹은 노동자와 정부 간에 협조가 이뤄진다면 투쟁이라는 말을 꺼낼 이유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협조를 위한 조건이 마련돼 있느냐 하는 점이겠다. 민주노총 대의원들이 노사정 대타협안을 거부한 건 사용자와 정부에 대한 불신을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양자가 노동자들에게 불신을 제거할 만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진정한 협조가 이뤄지려면 상호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 나아가 노사정 간에 힘의 균형이 맞아야 한다. 하지만 아직 그런 상태에 이르지 못했음을 이번 사태가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박일환 시인 (pih6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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