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여름휴가를 다녀왔더니 대의원대회에서 노사정 합의안 부결로 김명환 위원장은 사퇴했고 민주노총은 비대위체제로 전환했다. 출근해서 일주일치 노동뉴스를 읽고서 알았다. 지난달 30일 민주노총은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비상대책위 구성 안건을 논의한 결과, 사퇴하지 않은 민주노총 부위원장 6명 중 5명을 비대위원으로 위촉했다. 비대위 위원장을 김재하 부산본부장이, 비대위 집행위원장을 양동규 부위원장이 맡아 중앙위 추인을 받는 대로 활동을 시작한다고 매일노동뉴스에 보도돼 있었다. 이로써 민주노총이 설립된 이래 세 번째로 추진됐던 노사정 합의는 무산되면서 이를 추진했던 위원장 등의 사퇴와 비대위 구성이라는 일이 또다시 이 나라 노동운동사에 기록됐다. 이런 사태가 발생한 데 대해서 누구는 실망하고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하며 누구는 안도하면서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을 것이다. 1998년·2005년에도 그랬던 것처럼 찬반 입장에 따라 제각각 사태를 대하고 있을 게다. 하지만 나는 무심하게 다시 읽어 봤다. 민주노총이 참여해 논의해서 체결하고자 했으나 민주노총이 빠진 채로 협약의 이름으로 체결된 노사정의 합의를 담담하게 읽어 봤다. 오로지 이 나라 노동자의 권리와 자유를 위해 무엇을 합의했던 것인지 뒤늦게 아쉬움도 안도도 없이 살펴봤다.

2.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세계 경제는 가늠하기 어려운 침체를 겪고 있다”로 시작되는 노사정 합의문 제목은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협약’이었다. 4월17일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코로나19 원포인트 노사정 비상협의를 제안하고, 한국노총이 그 참여 결정을 하고서 5월20일 그 노사정 대표자회의가 출범했다. 국무총리 주재로 그 첫 회의를 시작해 체결했다는 이 협약 전문에는 “노사정 대표자들은 국난에 준한 위기를 맞아 기업의 힘만으로는 고용유지 비용을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며 노사정의 연대와 협력이 절실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비상한 각오로 이번 사회적 대화에 나섰다”고 나와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이번 노사정 합의를 해야만 하는가. 코로나19 사태가 기업의 힘만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위기인 것이라면, 정부가 지원해서 하면 될 것인데, 반드시 노동자측이 참여해서 합의해야 할 것은 무언가. 그저 국내외적으로 협력을 과시하는 ‘선언’을 하고자 문재인 정부는 그토록 노사정 합의를 강조해 왔던 것일까. 그래서 기업과 정부가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고, 그렇지 않고 반드시 노동자측이 무언가를 해야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노사정 협약 본문에서 읽어 보기로 했다.

3. 노사정 협약은 모두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은 ‘고용유지를 위한 정부 역할 및 노사 협력’, 2장은 ‘기업 살리기 및 산업생태계 보전’, 3장은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 등 사회안전망 확충’, 4장은 ‘국가 방역체계 및 공공의료 인프라 확대’, 5장은 ‘이행점검 및 후속 논의’ 등인데, 이행점검 및 후속 논의에 관한 5장을 제외하면 구체적인 합의의 내용은 네 개의 장으로 돼 있다.

여기서 먼저 4장을 보면, 국가의 방역체계와 공공의료 인프라를 확대 구축하는 일은 근본적으로 정부와 공공의료기관 등이 해야 할 일이다. 즉 구체적으로 협약이 밝히고 있는, 코로나19 등 감염병에 관한 생활방역과 사업장 방역 체계를 강화하고(4-2), 대응체계를 구축하며(4-3), 보건의료 종사자 근무환경을 개선하고 인력을 확충하고(4-4), 질병·돌봄에 대한 지원을 확충하는 일(4-5)은 노동자측이 이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지도 않고, 만약 이를 하겠다고 이와 관련한 교섭을 요구해도 이 나라에선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지 아니한 것들이다. 그러니 가만히 그 협약 내용을 곰곰이 읽게 되면, ‘노’가 포함돼 있는 것은 정부와 공공의료기관인 사용자가 이런 일을 추진하는 데 협력하도록 하는데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정부와 사용자가 얼마든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이면서 굳이 ‘노사정’ 운운하고 있다는 것은 대외적인 선전용이거나 아니면 노측의 반발을 협력을 내세워 무마하기 위한 것일 수 있겠다.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 등 사회안전망 확충에 관한 3장을 보면, 전 국민 고용보험을 도입하고(3-2), 국민취업지원제도를 시행하며(3-3), 고용보험 재정건전성을 확보하고(3-4), 고용서비스 인프라를 확충하며(3-5), 직업훈련을 확대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모두 원칙적으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이고, 여기서도 노동자측이 할 수 있거나 해야만 하도록 한 것은 없다. 노사관계가 선진화한 나라들과 달리, 우리의 경우는 고용보험제도·취업지원제도 등에 노동자(대표)가 참여해서 그 제도의 마련과 운영을 결정하는 법은 없다. 그러니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열거하고서 거기에 ‘노’의 협력을 끼워 넣는 협정이 노동자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사회적 차별과 멸시의 대상이 아니라 당당히 사회적 주체로서 참여해서 노사정 협약을 체결하게 됐다고 선언하는 것 말고는 무엇이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2장 기업 살리기 및 산업생태계 보전을 보면, 정부는 적극적 거시정책 기조로 실효성 있는 유동성 지원을 하고(2-2), 기간산업안정기금 등 자금 조달을 지원하며(2-3), 내수 진작을 통한 경기 회복 및 투자여건 개선을 하고(2-4), 영세 자영업자 및 소상공인 생존을 지원한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모두 정부가 할 수가 있고 해야 하는 일인 것이지, 그 무엇도 노동자측이 할 수 있고 하도록 정하고 있는 것은 없다. 이 나라에서, 이 세상에서 그것은 노동자가 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지 않고, 만약 그걸 하고자 노총과 산별노조 등이 정부를 상대로 교섭하자고 해도 불법이라며 법적으로 용인하지 않을 것이 뻔하다. 그런데도 노사정 협약이라 해서 ‘노’측을 끼워 넣기 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1장에는 이번 노사정 협약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인 고용유지를 위한 정부 역할 및 노사 협력이 담겨 있다. 여기서도 주된 것은 모두 정부의 일이다. 고용유지지원금 등 고용유지 지원제도를 확충하고(1-2), 특별고용지원업종 기간을 연장하고 추가 지정을 하며(1-3), 특수형태근로종사자·영세자영업자·무급휴직자 등 고용유지지원제도 사각지대를 축소하고(1-4), 고용정책 및 고용유지 등에 관한 중앙정부 및 지방자치단체 간 협업을 강화하는 것(1-5) 등이 그렇다. 이런 일에 관해서도 앞에서 말한 것처럼 노동자대표가 그 제도의 마련과 운영에 참여해서 결정하도록 이 나라의 관련 법·제도가 시행되고 있지 못하다. 이상과 같이 노사정 협약은 정부가 할 일을 열거해 놓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굳이 분란을 일으키면서까지 ‘노’측의 참여를 종용할 필요가 있었을까. 아마도 그 필요는 1장의 마지막에 포함한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의 역할’(1-6) 부분에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4. 이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의 역할’ 부분에서 ‘노’측이 해야 할 일로 협약한 것들을 보자. 먼저 상생 협력 확산을 위해, 대기업 ‘노’는 중소 협력업체가 위기를 극복하고 고용을 유지할 수 있도록 상생의 관점에서 적극 노력하고(2.가.), 사내근로복지기금 또는 공동근로복지기금을 활용해 협력업체 근로자 지원 등에 노력하며(2.나.), 취약계층 지원 및 실업대책을 위해 근로복지진흥기금 등에 자발적으로 기부하는 등 사회적 협력의 분위기가 확산되도록 노력한다(2.다.)는 것인데, 협력업체 위기 극복과 그 소속 노동자의 고용유지 등은 무엇보다도 원청업체 대기업과 정부가 할 일임에도 대기업 노사가 협력해서 할 일인 양 접근해서 열거해 놓았다. 중소 협력업체 노동자의 고용 등 권리를 위해 대기업 노동자가 소속한 노조가 지원할 일을 찾는 것은 당연히 연대를 생명으로 해야 하는 노조의 사업으로 포함해 추진할 일이지, 노사정 합의문에 포함해서 할 일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 다음으로 노사정 협약에는 고용유지를 위한 노사의 고통분담을 위해서 노측은, “코로나19에 따른 매출 급감 등 경영위기에 직면한 기업에서 근로시간 단축, 휴업 등 고용유지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경우 이에 적극 협력”하고(1.나.), “원만한 교섭 타결에 최대한 노력”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바로 이 부분이야 말로, 이번 노사정 합의에서 노측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로 유의미하게 규정해 놓은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사업장에서 근로시간 단축, 휴업을 할 때 단체협약에서 정하고 있는 경우에는 그 사항을 변경하는 것이 요구되는 등 노조와의 합의를 통해서 사용자가 그 조치를 할 수가 있다. 특히 사용자가 노동자의 기존 급여를 삭감하거나 지급치 않으려 할 경우에는 노측과의 합의가 있어야 법적 논란을 피할 수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코로나19에 따른 매출 급감 등 경영위기에 직면한 기업에서 근로시간 단축, 휴업 등 고용유지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경우 이에 적극 협력”하기로 합의한 것이니 사측이 적극 협력을 내세워 합의를 종용하게 될 일이 발생할 수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로 고용 불안 및 임금 등 근로조건 삭감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사용자와의 “원만한 교섭 타결에 최대한 노력”하기로 노사정 협약으로 약속한 것이니 아무리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것이라도 간단히 보고서 체결할 것은 아닌 것이다.

5. 6월29일 노사정 최종안 합의가 있기 직전까지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표자회의’에서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재난기간 해고금지 등 고용유지, 5인 미만 사업장 내 노동자 생계소득 보장, 특수고용직(특고) 종사자 등 전 국민 고용보험제 도입, 아프면 쉴 수 있는 권리로 상병수당 도입을 요구해 왔다고 알려졌다. 분명히 이러한 노측의 요구에 비해 위에서 살펴본 노사정 협약 내용은 노동자 권리와 자유로 볼 때 한참 미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대의원대회 다수가 부결을 선택한 것이겠다. 이에 대해서 문재인 정부 관계자 등이 아쉬움을 표시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렇지만, 위에서 읽은 것처럼 노사정 협약의 대부분은 정부가 고용유지 등을 위해 할 일을 밝히고 있는 것이고 노측이 할 일은 노동자의 권리와 자유를 삭감하는데 적극 협력하거나 최대한 노력하기로 하는 것이 고작이라서 노동자측이 덩달아 아쉬움을 표할 일은 아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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